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
이영훈목사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이고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아직 우리는 죄와 절망 가운데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웬일인지 웬 은혜인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이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일어난 그 한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삶 가운데 우리 주님께서 부활의 주님으로 다가오셔서 역사하고 계시고 우리 다가오는 날들 가운데도 주님께서 부활의 주님으로 오셔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1. 어제의 부활
먼저 어제의 부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은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실제로 죄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그 부활의 놀라운 사건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절로 6절은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안식 후 첫날, 이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누가복음에 의하면 요안나라고 하는 여인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이 무덤 문을 막고 있다가, 굴러서 열리고 흰 옷 입은 천사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전해주었을 때, 저들이 크게 놀라 기뻐하며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뛰어갔습니다.
마태복음 28장 8절과 9절은 설명합니다.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예수님이 그날 저녁, 제자들이 문을 닫고 무서워 숨어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21절입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음의 평안을 선물로 은혜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찰나적인 것입니다. 잠깐 내게 기쁨과 만족을 주고 떠나 가버립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 평안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평안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속에 있는 염려, 걱정, 근심은 다 내던져버리고 “주여, 주님의 평안함이, 주님의 기쁨이 내 마음에 넘쳐나게 하여주옵소서! 이 평안함을 가지고 우리가 하루하루 주님의 은혜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 더 이상 죄와 절망에 낙심하지 않게 하여주시고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과 상처에 눌려서 절망적인 삶을 살지 않게 하여주시고, 주님이 주신 이 기쁨과 평안함을 가지고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 평안을 전하실 때 제자들의 마음에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0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할렐루야! 주님의 평안함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속상하고, 기쁨이 없으면 주님의 평안함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세상 생각이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이 우리를 자꾸 낙심시키고 주저앉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염려, 근심, 걱정은 물러갈지어다! 주님의 평안함이 임할지어다! 담대하게 믿음으로 선포해야 됩니다. 본회퍼 목사님께서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입술에서 나온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인사말은 ‘너희의 모든 두려움은 끝났다. 너희를 지배하던 죄와 죽음의 세력은 끝났다. 너희는 이제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고 인간들과 더불어, 너희 자신과도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친히 이런 평화가 되시는 분, 곧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부활의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염려, 근심, 걱정, 내 마음의 상처, 슬픔, 괴로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내 마음속에 주님의 넘치는 평안으로 채워주시옵소서. 그 평안함을 가지고, 주님 주신 기쁨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나를 인도하여주시옵소서! 주여, 이 평화가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게 하여주시고, 우리 모든 성도에게 임하게 하여주옵시고, 우리 대한민국에 임하게 하여주옵시고, 저 북녘 땅에도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휴전선이 열리고,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주의 복음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2. 오늘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어제의 부활일 뿐 아니라 바로 오늘의 부활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제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부활의 예수님으로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에 ‘잠자는 자’라고 하는 것은, 성경에 ‘주님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들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시 깨어날 것이기 때문에, 다시 부활의 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잠자는 자’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잠깐 우리가 육신이 잠을 자고 영이 깨어서 영으로, 영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그 시작이 바로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말 중에 굉장히 성서적인 말이 ‘돌아가셨다’ 내 본향으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에 돌아갔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는 본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원한 본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부활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면 죽음도, 절망도, 고통도, 괴로움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부활의 열매로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 가운데 주님 오셔서 우리가 부활에 참여했기 때문에 어떠한 고통도, 괴로움도, 절망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가 없습니다. “죄와 사망은 나에게서 묶음을 놓고 떠나갈지어다! 나는 주님의 은혜로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이 다가오면 몸부림치면서 그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어떡하든지 피해보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그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죽음으로 그의 모든 희망은 끝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원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을 열면 우리에겐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있고, 주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로 오라.” 주님이 우리를 기쁨으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은 설명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살리시리라!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그런데 성경을 보면 제일 처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누구냐? 막달라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입니다. 무덤에 여인들 셋이 같이 갔는데, 다른 여인들은 너무 놀래갖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러 뛰어가는 동안 막달라 마리아는 그 무덤을 떠나지 않고 곁을 돌면서 ‘예수님 시신이 어디 갔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그 마음 가운데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반신반의했던 거 같아요. 천사들이 부활했다고 했는데 진짜 부활했는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으니까 울면서 예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뒤에서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를 부르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찌하여 울면서 고통 가운데 있느냐? 너의 문제가 무엇이냐? 너의 슬픔이 무엇이냐? 너의 고통이 무엇이냐?”고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슬픔에 처한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시고 부활의 기쁨을 주신 주님께서 오늘 절망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슬픔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처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십니다. 병상에 누워서 울고 있는 우리를 주님이 지금 만나기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다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디서, 어떤 고통의 자리에 있든지 간에 이 방송을 듣는 분들이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만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난 장면을 그리며 지은 찬송이 442장입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찬송가: 저 장미꽃 위에 이슬 (442장)>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 고통 가운데서 “‘와서 나를 도우라’ 손짓하고 있으니 가라! 은혜 받은 이 자리에 머물러있기만 원하지 말고 이제는 절망에 처한 사람, 슬픔에 처한 사람, 고통에 처한 사람,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들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부활절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만 복 받고, 우리만 잘되고, 우리만 기쁘고, 우리만 행복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참으로 이기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우린 받은바 은혜를 나눠야 합니다. 절망에 처한 이웃에게 나눠야 합니다. 슬픔에 처한 이웃에게 나눠야 됩니다. 우리들은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지 못한 자, 없는 자들에게 이 사랑을 나누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내일의 부활
이 부활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의 부활이요, 영원의 부활이 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것은 미래뿐입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 순간에도 이 말이 과거로 흘러가버립니다. 과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를 않을 과거를 돌아보면서 늘 한숨을 쉬며 절망에 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그 삶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시길 바랍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상처를 자꾸 끄집어내보면서,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되새기면서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있지 말고, 이제는 모든 과거를 다 털어내 버리고, 가슴을 펴고 굳건히 서서, 믿음의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48편 14절에 놀라운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우리를 영원토록 주님이 인도해주십니다. 우리가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이 인도해주실 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뒤는 이미 지나간 과거인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기억할 것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내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과거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팠던 기억, 슬펐던 기억, 괴로웠던 기억, 상처를 입었던 기억들을 더 이상 기억하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미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믿고 나서 미래지향적으로 늘 거룩한 꿈을 꾸며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꿈꾸고 믿고 바라는 것이 지금 내게 이루어진 것처럼 믿고 나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현재에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미래입니다. 안 된다는 것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믿음인 것이고, 축복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주여, 우리가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절대로 과거회기형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마음에 응어리진 것, 상처입은 것을 품고 살지 않게 하여주시옵시고, 다 털어내버리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앞만 보고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히브리서 11장 6절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이 세상은 잠깐 ‘우리가 무언가 했다’ 생각을 하는 동안에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옛 중국말에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느냐? 네 마리 마차가 막 질주해 달려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그랬습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말은 더 빨리 간다는 겁니다. 쏜살은 확 빨리 나가는 것처럼 그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몰라요.
이 빨리 가는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참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장차 먼 훗날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모두 다 들림받고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고 모든 믿는 자들이 바라고 있는 내일에 대한 꿈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로 17절은 설명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부활할 신앙을 갖고 있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절망도 이깁니다. 죽음조차도 이깁니다. 왜? 부활의 생명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 충동 속에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 독실한 크리스천이 된 한 분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장사를 해서 본인은 늘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TV를 보고, 그 영화를 빌려다 보았는데, 끔찍하게 사람을 죽이고 막 그런 영화들을 주로 보았다고 합니다. 공포 영화. 왜 어린 애가 그런 것을 즐겨 봤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보니까 밤에 잘 때 자꾸 흉측한 그런 모습이 떠오르고, 그 영화를 봤을 때 끔찍한 장면이 떠올라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무당인데, 어느 날 이 자매를 쳐다보더니만 “너는 굿하지 않으면 자살할 필자야.” 그때부터 무슨 어려운 일만 생기면 ‘난 자살할 팔자인가보다.’ ‘죽어야 되겠다.’ ‘죽어야 되겠다.’
여러분, 무당이 좋은 소리 하는 법이 없어요. 늘 우리에게 불안과 염려를 가져다주고 그래야 뭐가 많이 나오니까. 그래서 자꾸 협박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성령의 음성은 살리는 음성입니다. 치료하는 음성입니다. 회복하는 음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우울증에 빠져서 ‘이젠 난 죽어야 되겠다.’ 일이 안될 때,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자꾸 자포자기하고 나중에는 그가 친구를 다 끊어버리고 혼자 외롭게 그냥 자살을 시도하면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밤잠도 자지 못하고, 얼굴은 초췌해지고 삐쩍 말라서 죽어가는 그 때에, 어머니께서 이웃에 예수 잘 믿는 언니를 데려와서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 언니가 오자마자 성경책을 펼쳐서 말씀을 하나 찾아 읽으면서 따라 읽으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천천히 이 말씀을 따라 읽다가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생각을 넣어준다’는 말에 ‘아! 지금까지 내가 죽고 싶어했던 이 자살충동이 마귀가 넣어준 것이구나.’ 그때 보니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깨달음이 와서 언니를 따라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말씀을 읽어주시면서 부활의 소망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되니까 얼마나 그것이 은혜가 되는지, 그는 눈물 콧물 쏟으며 예수 믿고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춘천 한마음교회를 다니는 이경아 성도의 간증입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TV와 많은 영상물을 다 끊고 오직 말씀 읽고 예배드리는 일에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전능자 앞에서 저는 먼지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제 인생이 제 것 인줄 알고 날마다 죽기를 바라며 사는 악한 자였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 속에 빠져 우울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생각이라는 무서운 수렁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더럽고 추악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대로 살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할렐루야!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희망을 발견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한평생 여러분과 함께해주셔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차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사랑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죄와 절망에 처해서 고통당하는 저들에게 가야 하는 것입니다. 병사에 누워있는 저들에게 가야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그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 소년소녀가정들, 미혼모들, 노숙자들에게 우리가 주의 사랑을 들고 가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가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 한평생 부활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매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부활의 은혜, 기쁨, 감사, 감격을 쉬 잃어버리고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오늘 이후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게 하시고, 앞만 바라보고 나가는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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