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통일은 하나님의 응답하에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주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채드 해먼드(61) 목사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에 필요한 부분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부친을 둔 그는 현재 빌리그래함전도협회 아시아총괄 디렉터로서 한반도 복음화를 위한 사역에 매진 중이다. 그를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났다.
해먼드 목사의 부친 존 C 해먼드씨의 6·25 참전 당시 모습. 해먼드 목사 제공
그의 부친 존 C 해먼드(1928~1995)씨는 1950년부터 51년까지 미 제3보병사단 소속 장교로 ‘철의 삼각지대 전투’에 참가한 참전 용사다. 철의 삼각지대는 강원도 평강군, 철원군, 김화군을 잇는 삼각지대로 남북 간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 곳이다. 해먼드씨는 1995년 별세할 때까지 아들인 해먼드 목사에게 종종 한국전쟁 때 겪은 일화를 소개해주곤 했다. 해먼드씨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징집됐다. 한창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때 전장에 나와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 투입됐다. 해먼드씨는 자신이 속한 보병대에 단 한 명뿐인 군의관을 도왔는데, 군의관으로부터 상처 꿰매는 법도 배웠다. 한국군과 미군 병사만 치료해주던 때였지만, 해먼드씨는 북한군 포로들도 치료해줬다.
해먼드 목사는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자주 해주셔서 아버지가 의사인 줄 알았다”면서 “아버지께 물려받은 한국 전통문양이 담긴 목제 상자를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먼드 목사는 침례교인이었던 부친을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로 기억했다. 부친은 해먼드 목사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성경 속 가르침에 따라 그를 이끌었다. 해먼드 목사는 “아버지는 성경 지식도 많으셨다”면서 “성경 말씀에 따라 항상 가족을 아끼셨으며, 넘어지더라도 전진하는 믿음, 절대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가르쳐 주셨다”고 회고했다.
해먼드 목사는 부친이 작고한 뒤 2007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추도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어머니, 4살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인들에게 받았던 환대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라 해외에선 미군에 적대감을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아들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서 전사자들의 기념비를 보고 있을 때 일이다. 그의 옆을 지나던 한 노병이 악수를 청하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해먼드 목사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올해 초엔 사단법인 우리민족교류협회로부터 부친의 헌신을 기려 한반도 평화 메달을 수여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해먼드 목사는 “온 가족에게 축복과도 같은 소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참전한 미군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생각해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은 제게 더 감사한 일이었다”면서 “한국에 대한 각별하고 강한 유대감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해먼드 목사와 한국의 인연은 지난해 7월 그가 ‘2020코리아페스티벌’ 디렉터를 맡으며 다시 이어졌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전도사역을 잇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한국인이 가진 독창성과 국가에 대한 헌신, 근면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최근 코로나19 상황 속 국민이 정부지침을 잘 따르는 것이 인상 깊었다”면서 “그런 국민성이 연합을 이루고 변화를 잘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와 한국 성도는 어떨까. 해먼드 목사에게 ‘한국 성도’ 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선교’다. 그는 “주님은 한국에 특별히 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신 듯하다”면서 “한국교회와 협력하면서 한국인의 선교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먼드 목사는 빌리그래함전도협회와 한국교회의 연합을 추진해 한반도의 다음세대를 복음으로 섬기고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기도뿐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며 “한반도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를 돕고 섬기겠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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