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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 갈등의 뿌리를 찾아서
등록일
2020년05월07일 20시29분
[뉴서울타임스]
오늘날 전 세계적 갈등의 가장 큰 원천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립이다. 영국 요크대 교수이자 중세사 전문가였던 리처드 플레처(1944~2005)의 '십자가와 초승달, 천년의 공존'(21세기북스)은 그 갈등의 뿌리를 파헤친 책이다.
2003년 저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책의 원제목은
'The
Cross
And
The
Crescent
(십자가와 초승달)'이지만 한글판 제목에는 '공존'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공존'에는 단순히 함께 존재한다는 뜻 이외에 '서로 도와서'라거나 '평화롭게'라는 뜻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역자는 그에 관해 별도로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한글판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책은 두 문명권이 중세 동안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보고 그 이유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은 이슬람교가 탄생한 7세기부터 십자군 전쟁의 마무리, 스페인의 이슬람 점령지역 재정복(
Reconquista
), 오스만 튀르크에 의한 비잔틴 제국 멸망 등 사건과 함께 유럽의 중세가 끝나는 15세기까지 천 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두 문명이 얽히고설킨 역사를 시대순으로 살핀다. 저자는 갈등의 뿌리로서 두 종교의 차이에 우선 주목한다. 이슬람은 단일한 경전 꾸란만을 믿고 예수의 신격을 부정한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는 여러 경전을 묶은 '성서'를 신앙의 근거로 삼고 삼위일체 등 핵심적인 교리에 관해 자체적으로 논쟁을 벌여 왔다. 이슬람은 기독교와는 달리 교회나 성직자가 없고 성과 속의 분리도 없다. 이 같은 근본적인 차이가 상호 이해와 화합에 도움이 되는 대화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2019년 교황이 집전한 성탄절 미사[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기독교가 배태된 곳 역시 이슬람과 같은 중동 지역이지만 뿌리를 내린 곳은 주로 농경 지역이었기에 이슬람이 탄생하기 전부터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유목민인 아랍인들을 불쾌한 타자로 정형화하고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아랍인들이 부정한 혈통의 소산이라는 성서 속 이야기도 이런 편견을 부추겼다.
두 문명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뒤섞이게 된 것은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고 그의 후계자들이 아랍 세계를 통일한 후 지중해와 중동 일대로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면서부터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 논쟁을 마무리 지은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삼위일체와 예수의 신격을 부정하는 이슬람 세력은 성서를 흉내 낸 가짜 경전을 믿고 사이비 예언자를 찬미하며 기독교인들과 전쟁을 벌여 기독교의 성지를 차지한 무뢰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슬람은 상대적으로 기독교에 대해 포용적이었다. 꾸란은 '성서의 백성'인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존중이 항상 유지된 것은 아니지만,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종교의식을 자유롭게 거행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매년 인두세를 내야 했고 신원을 나타내는 띠를 둘러야 하는 등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이런 불이익 때문에 이슬람 정복지에서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같은 개종은 많은 경우 자발적이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기독교인들은 행정 관료로서, 또 고대 지식의 전달자로서 이슬람 세계의 탄생에 협력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랍인의 주교'로 불리던 게오르게와 동방 출신 후나인 이븐 이샤크 등 기독교인들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포크라테스 등의 저서들을 시리아어 또는 아랍어로 번역했다. 훗날 고대의 지식이 아랍에서 다시 유럽으로 전승돼 르네상스의 씨앗이 된 것은 이 같은 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8년 메카 성지 순례에 참가한 무슬림들[EPA 자료사진·재판매 및 DB 금지]
이슬람의 팽창이 일단락된 후에도 카롤루스대제의 서로마제국 황제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가 코끼리를 보내는 등 양측의 교류는 이어졌다. '그리스의 불'로 불렸던 화염 무기나 밑창에 코르크를 댄 샌들, 동물이 회전반을 돌려 수조에 물을 채우는 장치인 '싸끼야', 계산을 돕는 수판, 종이와 같은 발명품과 기술들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수되기도 했다. 이처럼 750년에서 1000년 사이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은 서로 왕성하게 접촉했다. 그러나 꽤 의아스러운 것은 양측 모두에게 상대 문명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결여돼 있었던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불신을 바탕에 깐 접촉은 계기만 있다면 폭력적 대결로 비화할 수 있었다. 십자군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십자군 전쟁은 많은 역사서에서 유럽의 정치 지형과 경제·사회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중세를 붕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기술된다. 나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 갈등의 근원이 십자군 전쟁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당대 이슬람의 입장에서 십자군 원정은 이슬람 세계의 주변부를 성가시게 한 소규모 접전에 지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이슬람권에는 십자군 전쟁과 관련된 사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의 방증이다. 양측의 장수였던 살라딘과 '사자심왕' 리처드는 상대편에서도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
이처럼 오랜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류 역사를 분석한 저자는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함께 살았어도 서로 섞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방식처럼 '통합'을 기반으로 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교도 이성과의 결혼 또는 성관계에 대한 태도이다. 기독교 세계에서 무슬림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기독교인 여성은 사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기독교인 남성과 성관계한 무슬림 여성도 사형 또는 노예가 되는 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교도와 성관계를 맺은 무슬림 여성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이슬람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중세의 끝 무렵에 도달해서도 양측의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마찬가지였지만 구체적인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이슬람 식자층은 기독교에 관해 여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가 모세나 예수와 같은 이전 시기 예언자들에게 주어진 계시를 넘어선다고 봤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기술과 문명 측면에서도 이슬람이 기독교 세계를 탐구할 유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슬람 세계의 가장 위대한 여행자였던 이븐 바투타는 23세부터 30여년간 중동은 물론 인도와 중국에서 아프리카, 크림반도에 이르기까지 당시 알려진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을 방문했지만, 유럽을 방문했다는 흔적은 없다. 아랍의 위대한 역사가 이븐 할둔도 그의 역사서에서 유럽에 관해서는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철학과 과학이 번성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거기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하느님께서 제일 잘 아실 것"이라는 언급 이외에 아무런 기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비잔틴제국의 멸망을 지켜본 식자들 사이에서 이슬람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풍조가 일기 시작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통치력과 군사력은 화가 젠틸레 벨리니나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 인문주의자 조반니 필렐포와 같은 일부 기독교 세계 인사들에게는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유럽은 이 시기에 이슬람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관심을 돌리고 다가올 대항해시대와 정복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이후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는 책에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풍부한 사료에 근거해 새롭고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면서 독자들이 현대 세계에까지 이어지는 문명 간 갈등의 복잡한 양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박흥식·구자섭 옮김. 29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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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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