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페이스북 그룹 ‘하나님의 창고’(창고지기 김주선 목사)에 올라온 물건들은 3초 컷으로 불린다. 온라인이지만 하나님의 무한 공급을 경험할 수 있다. 창고는 페이스북에 ‘지구를 위해 나눠쓰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교회가 가진 것을 천천히 버리자는 책임 있는 행동을 이어간다’고 소개돼 있다. 물건 나눔은 간단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회원들이 쓰지 않는 새것 수준의 물건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리면 가장 먼저 댓글을 단 회원이 물건을 받을 수 있다. 550여명의 회원은 대부분 그룹 게시물을 알림 상태로 설정했기에 1분 이내에 물건 나눔이 마감되곤 한다.
경기도 용인 수원영은교회에서 지난 14일 만난 김주선 부목사는 스스로 ‘창고지기’라 소개했다. 2012년부터 창고 사역을 한 김 목사는 “창고 사역을 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 다른 분들의 기도가 응답받는 걸 목격하며 저의 기도도 응답받았다”고 말했다. 또 “평생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목표인데 창고 사역은 제가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선교사의 삶인 것 같다”고 전했다.
성가대 가운 나누며 창고 사역 시작
창고 사역은 2012년 우연히 시작됐다. 당시 김 목사가 섬기던 교회가 성가대 가운을 바꾸기로 했다. 기존 가운 중에 새것 같은 가운이 10벌 있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다며 서울장신대 신학대학원 동기생 카카오톡 단체방에 글을 올렸다. 한 동기생으로부터 바로 반응이 왔다. 이후 김 목사는 교회학교 달란트 시장에서 남은 새 물건들을 동기생들과 맞교환하며 교회의 달란트 시장에서 활용했다.
“2017년까지 제가 속한 여러 개의 카카오톡 방에서 글을 올리고 필요한 분들에게 보내는 일을 했어요. 건수가 적지 않아 할만했죠. 그런데 통용하는 건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제가 아는 사람으로만 한정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페이스북 그룹 ‘하나님의 창고’의 창고지기인 김주선 수원영은교회 부목사가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 교회 카페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용인=강민석 선임기자
김 목사는 이후 페이스북 그룹을 개설했다. 사도행전 4장 32절에 나온 초대교회처럼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곳을 꿈꿨다. 대신 운영 원칙은 명확하게 세웠다.
모든 회원은 실명으로 가입한다. 흘려보낼 물품이 있으면 상품의 질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구 전자제품 등을 제외하곤 새것 혹은 새것 수준의 중고만 올릴 수 있다. 창고에서 무료 나눔을 받은 물건을 다른 곳에서 현금거래를 해선 안 된다. 그럴 땐 실명을 공개하기로 했다. 회원은 무료로 물건을 받는 대신 택배비를 지급해야 한다. 페이스북에선 가입 및 감사 인사를 일절 할 수 없다. 물건을 통용하는 게시물만 올릴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룹의 게시물에 알림 설정을 했기에 잠시라도 누군가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있어서’ 나눈다
김 목사는 “창고는 초대교회처럼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곳으로, 어려워서 나누는 것이 아닌 ‘있어서’ 나누는 곳”이라고 밝혔다. 회원의 80%는 목회자, 20%는 나눔 사역에 관심 있는 크리스천들이다.
회원들이 직거래할 때도 있지만, 물건의 상태를 확인해야 할 때면 김 목사가 직접 물건을 받아 검수한다. 중고 피아노를 받으면 받은 이가 바로 쓸 수 있도록 조율을 하고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것도 김 목사의 몫이다. 기업이나 교회 등에서 새 물건을 받으면 사진을 찍어 올리는 일도 한다. 사역 중에도 짬을 내 물건을 일일이 확인하고 택배를 보내는 게 김 목사의 일상이다. 김 목사의 집에선 물품들이 쌓였다 빠지는 게 반복된다. 김 목사는 “몇 년간 창고 사역을 지켜본 가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막지 말라’며 물건을 빨리 보내라고 재촉한다”며 빙그레 웃었다.
페이스북 그룹 ‘하나님의 창고’ 페이지.
김 목사는 창고를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다. 농촌 교회에서 사역하는 한 사모는 수개월간 심방을 위한 경차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창고를 통해 기도 응답을 받았다. 20세가 돼 보육원에서 퇴소하는 청년 이야기를 들은 한 크리스천은 창고를 소개해줘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물품을 얻게 했다. 한 개척교회 목사는 교회 내에 있는 절반 이상의 물건을 창고를 통해 얻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는 창고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한 이들이 다른 이를 위해 물건을 다시 나누는 선순환 과정도 지켜봤다.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합니다. 물건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으로 보고 힘을 얻는 목회자들이 많거든요. 목회자들이 교회를 접을까 고민하다 창고를 통해 응답받고 격려를 받아 사역을 이어가겠다고 하는 모습에 저도 은혜를 받습니다.”
김 목사의 기도 제목은 창고 사역이 각 지역에서 활성화되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런 역할을 지역연합회에서 감당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창고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자원을 잘 관리하게 됐고 나보다 더 물건이 필요한 이를 위해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인=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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