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포도’는 대홍수 이후 인류에게 희망을 심어준 성서 식물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노아의 대홍수’ 후 노아는 포도나무를 심었다. 홍수가 땅의 모든 것을 휩쓸고 간 후 노아가 처음 시작한 일이 포도나무를 심은 것이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창 9:20) 포도나무는 기름진 땅에 심는 작물이 아니다. 조금은 척박하고 건조한 석회질 토양에서, 겨울이 춥지 않으면 잘 자란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터키 아라라트산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이 있으며 노아의 포도원으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2010년 9월 아라라트산에서 96㎞ 떨어진 곳에서 BC 4100~4000년으로 추정되는 포도원 시설이 있는 동굴이 발견된 바 있다.(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심판의 상징, 포도 밟기
이스라엘 민족과 오랜 역사를 함께해 온 포도는 땅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성서 식물이다. 포도만큼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도 드물다. ‘포도나무’는 ‘포도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으로 때론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를 상징한다.(시 80:8, 사 63:3)
포도를 짜서 포도주를 만드는 것처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피 흘려 죽어야 하는 포도나무에 비유될 수 있다.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것 역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예표한다는 해석도 있다.
성서 시대에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틀에 넣고 밟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를 밟으면서 시편의 노래를 불렀다. 시편 81, 84편엔 ‘깃딧에 맞춘 노래’란 말이 붙어있다. ‘깃딧’은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을 짜는 틀을 뜻하는 ‘가트’에서 나온 말이다. 역설적으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포도 밟기로 묘사돼 있다. 발로 밟아서 으깬 포도즙의 붉은색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보여준다.(사 63:3) 심판의 날에 이르러 세상의 악인들을 진노의 포도주 틀에 넣고 벌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구절도 있다.(계 14:18~20)
공생애 처음과 마지막
신약 시대에 포도주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포도주로 시작해 포도주로 끝맺음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이었다.(요 2:7~11)
가나의 혼인 잔치 기적을 이해하려면 성서 시대 유대인들의 결혼 문화를 알아야 한다. 한 총각이 결혼하려면 마음에 둔 여인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어야 한다. 잔치는 일주일간 계속되고 마지막 날 총각은 처녀 앞에 포도주를 놓는다. 이 포도주를 처녀가 마시면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대답이었다. 당시 이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었고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이 기적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재림하신다는 예표였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1485년 작품 ‘가나의 혼인잔치’.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소장.
또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빵(떡)과 포도주로 축복하고 자신의 희생에 대해 암시한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또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해면에 적신 신 포도주를 입에 대신 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후 돌아가셨다.(요 19:29~30)
참 포도나무
예수님은 자신을 ‘참 포도나무’, 하나님을 ‘농부’에 비유하셨다. 이 비유의 핵심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열매를 맺으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잘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여기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와 성도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영적 관계와 연합의 원리를 묘사한다. 만일 가지가 잘려나간다면 잠깐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시들어 버린다.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참된 신앙고백이 없고,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사귐이 없다면 그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포도나무에 맺히는 튼실한 포도송이는 그 가지의 힘이 아니다. 그야말로 포도나무 자체의 힘이다.
서울 100주년기념교회를 담임했던 이재철 목사는 그의 저서 ‘참으로 신실하게’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란 말씀을 “너희가 포도나무인 내 속에 붙여진 가지이고 나의 진액이 너희 속에 흐르고 있다면”으로 해석하며 이렇게 당부한다. “포도나무에 붙어 포도나무의 진액이 흐르고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장미꽃을 피우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는가. 혹은 사과나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는가. 정말 포도나무 가지라면 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밖에 없다. 포도나무 가지다운 가지로 포도나무에 계속 붙어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때 그의 기도는 모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한 포도나무가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줄 것이요, 농부가 온 정성과 사랑과 능력을 다해 지키고 또 가꿔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기도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한 그 이외의 것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류는 고립에 직면해 있다. 성도들은 흩어져 예배드리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리스도와의 접붙임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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