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무엇이든 ‘처음’은 강렬하다. 그래서 예수를 소개하는 첫 복음서, 첫 단락은 특별히 중요하다.
신약성서의 첫 책 마태복음의 첫 단락에 등장하는 예수의 족보는 강렬하다 못해 몹시 충격적이다.(1:1~16) 여기에는 다섯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가부장적인 유대인의 족보에 여인이 등장한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들 대부분이 이방인이라는 것은 더 충격적이다. 이방인과 여인은 전통 유대인들의 정서 안에선 늘 변두리에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의 시작은 당시 유대사회에서 유대인의 담을 허무는 파격으로 시작한다.
파격적이고 강렬한 시작을 위해 여자를 포함하려 했다면 사라, 리브가와 같은 중요 인물이 언급되는 게 상식적이지만 마태는 네 명의 ‘수상한’ 여인을 포함시켰다. 구약성경에서 정통성을 갖기에는 다소 어색해 보이는 혈통의 여성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남의 여자’, 즉 우리야의 아내라고 소개하며 다윗의 불륜사건을 부각한 것도 외람되지만, 나머지 여인들도 사회적인 물의가 될 만한 인물들이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었고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이었다. 룻은 밤에 남자를 찾아가 곁에 누웠다. 비상식적인 조합의 반전은 다섯 번째 마리아다. 정반대로 마리아는 남자와 접촉한 일이 전혀 없이 성령으로 임신한 여인이다.
결국 예수의 족보는 혈통으로는 구약성경의 다윗 왕가를 계승하는 정통성 있는 족보이지만, ‘믿음’ 없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수는 특정 유대민족만의 왕이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계층의 왕이고 모든 인간적 결함마저 포용하는 ‘만왕의 왕’이라는 믿음의 족보다. 믿음의 필요성을 마태복음은 이렇게 증언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3)
마태복음은 유대사회에 종교적·민족적 포용성을 선포하는 파격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선생님처럼 친절하다. 가르침 뒤에 꼭 사역 보고가 따른다. 가령 5~7장 산상수훈에 이어 8~9장 기적 이야기가 나온다. 가르침-사역-가르침-사역…. 이론 뒤에는 실천이 따르는 구조적인 균형을 맞춰 집중력을 잃지 않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동시에 교육의 균형도 잡았다.
전체적으로는 소위 ‘교차대칭구조’로 형성돼 있다. 그 구조 속에서 마태복음 13장은 이 책의 핵심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을 담고 있다. 하나님 나라,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들이 일상에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도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면, 그래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5:3~10)
예수의 말씀은 당시 유대교 선생들도 놀랄 만한 큰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과의 대립과 갈등은 마태복음이 전개되는 동안 생생하게 드러난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23:13)
기독교 역사 초기에는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이 회당 예배를 같이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AD 90년쯤 얌니아 회의에서 유대인들이 회당 기도문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죄를 포함시켰다. 그리스도인들은 회당 예배에 참석하지 않게 됐다. 이 사건을 기독교와 유대교의 분리 정점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감이 증폭되고 이들과 예수님과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마태복음은 모든 사람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준다.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복음만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16:18, 18:17) 교회는 민족적·종교적 제한성을 가진 유대인 공동체와 구별되는 새로운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마태복음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대립과 갈등 구조로 복음을 펼치는데, 교회는 유대인들과의 갈등 속에서 존재의 정체를 정립해 갔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의 울타리를 넘어 다양한 민족과 계층을 포함하는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지 선언하면서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9~20)
마태복음은 또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다루지 않아 그가 어디에 계신지 의문을 품게 한다. 대신 그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확신을 준다. 마태복음 처음에 예고된 바 있는 ‘임마누엘’ 성취를 말한다.(1:23)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어디에 계시는지에 대한 해답 대신 초월적 존재였던 그분이 지금도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이처럼 마태복음은 포용의 복음서다. 마태의 교훈은 또 다른 시각의 복음서와 만날 준비를 해주었다. 이제 달리는 사자와도 비교되는 역동적인 복음서, 마가복음의 문을 두드려보자. 색다른 경이로움이 다음 올레길 여정에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김선배 침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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