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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복음의 문’으로만 열리는 영적 세계

김영우 목사의 진정한 교회개혁 <2> 개혁과 세상의 희망 사항

등록일 2020년01월13일 19시51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북로에 자리잡은 지하 4층, 지상 4층 규모의 혜림교회 전경. 혜림교회 제공

[뉴서울타임스] “자식하고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고 한 어느 국내 대기업 회장의 말이 인구에 회자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기업도 치열하게 변해야 한다는 뜻이 그 말에 담겨 있다고 해서 주요 언론들이 의미를 담아 기사화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면 기업이 그렇게 가족 빼고 다 바꿔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업의 설립 목적인 ‘이윤추구’ 때문입니다. ‘돈을 버는 것’ 그것이 어떻게 말하든 기업 개혁의 이유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왜 개혁을 해야 합니까. 그것 역시 설립 목적 때문입니다. 교회의 설립 목적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전파’입니다.(마 28:19~20, 막 16:15) 로마가톨릭 신학자든 개신교 신학자든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교회가 전해야 할 복음이 ‘예수가 전한 복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바른 교회 개혁은 ‘복음을 잘 전파하는 일’을 위한 개혁이요, 예수의 뜻인 복음 전파를 가시화하기 위한 개혁입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회 개혁을 논하는 사람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묻게 합니다. 마르틴 루터 종교개혁의 시작인 복음이 무엇입니까. 감리교의 출발이 된 존 웨슬리를 바꾼 복음이 무엇입니까.

종교개혁의 여명이 밝기 전, 루터는 윤리와 도덕을 잘 지키면 구원의 기쁨이 생길 줄 알았습니다. 그의 고백에서 보듯이 육체적 죄를 짓지 않으려고 음식을 거르기도 하고 음란한 생각이 든다는 이유로 얼어 있는 호수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나눠주며 그들의 이웃이 되려고 힘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윤리적 몸부림에도 진정한 구원의 기쁨이나 마음의 만족은 요원했습니다. 구원은 윤리나 도덕적 행실로 얻어지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루터에게 종교개혁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어떤 일에 대한 개인적 이해의 변화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회심’이라 부르는 종교적 사건입니다. 그것이 모든 교회 개혁의 어머니가 되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웨슬리가 참담한 선교 사역의 실패를 뒤로하고 미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올 때 그의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설상가상 그가 탄 배가 풍랑으로 인해 파선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그나마 있던 믿음조차 흔들렸습니다. 그러던 그가 가장 뛰어난 기독교의 한 분파인 감리교의 시작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던 것은 영국 런던의 한 노상 설교자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설교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우 목사가 지난해 6월 혜림교회 노인대학에서 설교하는 모습. 혜림교회 제공

사실 그것은 설교라고 하기도 어려운 성경주석의 낭독이었는데 그 복음이 웨슬리의 심령에 새겨지자 부패한 영국 국교회에 환멸을 가진 사람들에게 빛을 선사하는 감리교가 이 땅에 나타난 것입니다.

감리교는 웨슬리 형제가 윤리적 봉사활동을 하다가 세상에 세워진 교단이 아닙니다. 교회가 착한 일을 하고 교인들이 모범적인 삶을 살기 위해 힘쓰면 그 모습을 본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리라는 것은, 멋있는 말이지만 희망 사항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바울이나 베드로, 나아가 예수님이 윤리적인 삶을 살지 않으셔서 사람들에게 순교하거나 돌을 맞은 게 아닙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중에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난과 순교를 당했습니까. 그분들이 윤리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난을 겪은 게 아닙니다. 

성경의 사람들과 믿음의 선조들이 세상에 전하려 한 것은 ‘예수가 구원자’라는 복음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구약성경과 메시아가 왔다는 신약성경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세상은 교회가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한다고 해서 예수와 교회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원색적 복음전파보다 그런 것을 강조하던 교회 역사를 찬찬히 돌아보다 보면 사단,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교회를 봉사단체처럼 되게 하다가 역사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로마제국 당시의 사회제도였던 주인과 종의 관계를 보면서 노예해방을 외치거나 그것이 교회개혁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주인과 종에게 모두 예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후로는 이전과는 다른 주인, 다른 종으로의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교회개혁은 성경의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라는 공통적 정의를 가집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개혁은 교회 구성원 개개인이 “성경의 주제요 주인공인 예수만이 구원자요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라고 고백하게 하는 것이며, 그 신앙고백으로 가정과 세상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윤리와 도덕 강좌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한국교회 강단은 교회개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일 수 있습니다. 교회개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인 회심 혹은 중생 같은, 루터에게서 보이는 개인적 영적 개혁이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웨슬리의 경험을 영적 개혁의 기초로 할 때만 올바르게 확산하는 특이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김영우 혜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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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상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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