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지난해 11월 강원도 춘천 인근 북한강변에서 목회자 A씨(83)의 시신이 떠올랐다. 부인 B씨(77)도 4개월 뒤인 지난 3월 근처 강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부의 사인은 익사였다. 목회자 부부의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자 교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올 초엔 지상파 TV의 유명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이 사건을 보도하며 궁금증을 더했다.
이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A씨가 시한부 종말론자 임모(64·여)씨의 꾐에 빠진 게 발단이었다. 부인뿐 아니라 장성한 자식들까지 임씨에게 세뇌됐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으로 이어지며 치열한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3일 교계와 의정부지법 등에 따르면 유명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 소속돼 사역했던 A씨는 2000년대 초반 가족과 함께 미국 뉴저지로 이주해 이민목회를 시작했다. 교회는 성장했다. 기독교한인세계선교협의회(KWMC)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을 정도로 A씨는 미국 한인 교계에서 명망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2010년 말 지인의 소개로 임씨를 만난 뒤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를 만나기 며칠 전 꿈에 붉은 용이 나왔던 A씨에게 임씨는 대뜸 “붉은 마귀에 씌었다”고 외쳤다. 묘한 우연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A씨와 가족들은 임씨에게 빠져들었다. 임씨는 A씨의 재산으로 2012년 자신의 교회를 세웠다.
2014년부터 임씨는 “미국에서 전쟁이 나니 한국의 가평 같은 산간지대로 피난 가자”고 했고 이들은 실제 가평으로 이사해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했던 날 아무 일도 없자 임씨를 따르던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임씨는 “기도 덕분에 전쟁을 피했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A씨 가족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의 주변에 남았다.
임씨가 A씨 부부의 영혼이 순수해져야 한다면서 유아용 애니메이션과 동화책만 보게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지난해 10월부터 임씨는 A씨에게 “하나님에게 가서 응답을 받으라”고 하면서 사실상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종용했다. 법원은 이를 자살 교사로 봤다.
실제 한 달 뒤 임씨는 A씨 부부를 차례로 북한강변에 내려놓고 떠났다. 이 일엔 A씨의 딸 C씨(44)도 합세했다. 이것이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결국 임씨와 C씨는 각각 자살교사와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고 최근 열린 1심에서 징역 5년과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현재 임씨와 검찰 모두 항소해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A씨가 이단들의 고전적 수법에 당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온 페스팅거 박사는 1957년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예언’과 달리 종말이 오지 않았는데도 “기도 덕에 미뤄졌다”고 주장하는 걸 보고 ‘인지부조화론’을 주창했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사람을 미혹한 뒤 극단적인 자기합리화로 계속 속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단 사이비들이 써온 방법 중 하나”라며 “설혹 이단에 빠졌더라도 돌아오는 걸 부끄러워해선 안 되고 잘못됐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주변에 공개해야 신앙의 자리로 회복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저작권자ⓒ뉴서울타임스.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