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지난 22일 오후 프랑스 파리 8구에 있는 프랑스 개혁교회. 예배당에 들어서자 파리선한장로교회(성원용 목사) 교인들이 예배 준비로 분주했다. 보통 200명 넘게 참석하지만 이날은 부활절 휴가 기간이라 여행을 떠난 이들이 많아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 한국어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당은 기둥 없이 세운 높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오른쪽 벽면 위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어우러져 경건하면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성악 전공자들이 주축이 된 성가대가 파이프오르간에 맞춰 찬양을 부르자 화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예배를 마친 뒤 성원용 목사를 만났다. 그는 교회 공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교회가 참 아름답지요. 1865년 나폴레옹 3세 시절 파리 시장이던 오스만 남작이 세웠어요. 오랫동안 개신교를 박해하던 프랑스에서 정부가 공인한 첫 번째 개신교회였습니다. 개혁교단의 첫 총회가 열리기도 했던 유서 깊은 건물입니다.”
교회를 개척한 성 목사는 1996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의 파송 선교사로 파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선교사로 6년간 지내다 2002년 9월 어른 10명, 어린이 4명과 함께 개척했다. 교회는 어느덧 한인 디아스포라 가운데 20~30대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동시에 유럽과 아프리카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로 성장했다. 성 목사는 지난 17년간의 프랑스에서의 사역 경험과 고백을 담아 ‘본질을 붙들면 후회하지 않는다’(국민북스)를 펴냈다.
최첨단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교회가 부흥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언가 문화적 접근이나 트렌드에 맞춘 프로그램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하지만 책에 담긴 성 목사의 방법은 단순했다. 그는 “문화적으로 접근하면 잠시 효과는 볼지 몰라도 오래 못 간다”며 “그럴수록 본질인 말씀을 붙잡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는 “말씀이 본질이고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가 본질”이라며 “경건한 예배와 차분히 말씀을 전하는 전통적인 목회를 펼쳤더니 부흥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파리선한장로교회 성원용 목사가 지난 22일 프랑스 파리 8구에 위치한 개혁교회 앞에서 교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혁교회 간판 아래 파리선한장로교회 예배 안내 포스터가 보인다.
현재 파리 교민은 1만 6000여명으로 교민 중 기독교인의 비중이 높지 않다. 정착한 교민 수는 적고 유학생 비중이 높다보니 상대적으로 복음화율이 적은 편이다. 유럽 전역으로 여행을 다니기 좋다보니 주일 성수를 하기도 쉽지 않다. 3개월, 6개월, 1년, 3년 단기간 머물다 떠나는 이들도 많다.
“이 곳의 목회는 나룻터 목회 같아요. 짧은 기간 신앙생활을 잘 안하던 사람들이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불신자가 예수 믿는 경우도 많지요. 항상 떠나보내는 건 어렵지만, 그들이 떠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떠나보낸다고, 그들의 회복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비싸서 대부분 파리의 한인교회들은 기존의 현지 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린다. 파리선한장로교회도 처음부터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은 아니다. “3개월 정도 빌려 쓰다 쫓겨나길 반복했어요. 날씨는 춥고 비는 오고 파리의 모든 교회를 찾아다녔는데 빌려준다는 곳은 없었죠. 우리는 항상 벼랑 끝에 서 있었고,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에 항상 해주셨습니다. 갑자기 재정 상황이 어려워진 영국 성공회 교회가 건물을 빌려줬고, 6년간 그 곳에서 많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 안에서 프랑스 교회와 늘 협력하기를 꿈꿨던 성 목사와 교인들은 계속 이곳에 마음을 두었다.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까다로운 관리인은 담임목사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단칼에 교회 임대 제안을 거절했다. 어렵게 만난 담임목사도 미온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프랑스 리옹 지역의 목회자가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리옹 지역 교회들이 신도시에 새 교회를 건축하면서 부족한 예산 때문에 중단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성 목사는 한국교회들에게 이런 사정을 알리고 예장 통합과 프랑스 개혁교회과 협력관계를 맺고 이를 도와줄 수 있도록 중간에서 연결했다. 성 목사는 “그 일을 계기로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에서 우리가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했다”며 “그뿐 아니라 우리를 협력 파트너로 인정하고 다양한 교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4월부터 파리 8구의 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묻는다. 도대체 왜 파리에, 유럽에 선교사가 필요하냐고. 그 역시 ‘내가 정말 선교사가 맞나’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하지만 파리에 살면 살수록 프랑스가 세계 최대 선교지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사람들은 파리를 최첨단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생각하지만 유럽 어느 곳보다 개신교도가 박해받은, 피 흘린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현재 인구의 2.6%가 개신교인이고 그 가운데 8%만 주일에 교회에 출석해요. 이런 수치는 미전도종족이라 해도 될 정도에요. 자유로운 문화로 세속화된 데다 이슬람교도는 10%에 달합니다. 유럽 어느 국가보다 많은 비율입니다. 파리에 한 번 다녀가신 분들은 이곳이 선교지라는 말을 인정하게 됩니다.”
교회는 줄곧 프랑스뿐만 아니라 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 지역으로 선교를 다녔다. 2013년엔 프랑스 서부 낭트 지역에 낭트선한교회를 개척했다. 현재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도 꾸준히 찾아가 선교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그와 만난 프랑스 개신교 목회자들은 간절히 부흥을 원하지만 자력으로는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성 목사는 역동적인 한국교회가 그들을 지원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늙고 약해진 프랑스 교회를 한국의 교회들이 도와줄 때 프랑스 선교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프랑스 교회와 협력의 끈을 놓지 않고 가급적 그들의 친구가 돼주기 위해 노력해온 이유다.
지난 22일 파리선한장로교회 성원용 목사가 예배를 마친 뒤 프랑스 개혁교회 목사와 만나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위그노’라 불렸던 프랑스 개신교인들은 워낙 박해를 받아 많이 위축돼 있습니다. 20세기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이 제국주의 선교를 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과 타문화에 대한 지나친 존중 때문인지 ‘전도’라는 말을 쓰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프랑스 개혁교회도 전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어요.”
그는 실제로 경험한 프랑스 교회와 독일 등 유럽 교회의 처지를 알리고, 이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이번에 책을 쓴 것도 후배들이 유럽에 와서 자신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자료를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은퇴 후에도 다음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하드웨어를 구축하고자 한다.
“안정적인 선교센터를 세워 다음세대가 유럽과 아프리카 선교를 이어가도록 하고 싶습니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들어가는 대신 이 곳에서 쉬면서 재충전하고 언어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복음의 전사로 쓸 수 있는 리더를 키워나가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파리=글·사진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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