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5∼56)" 예수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 로마총독에게 잡히기 전날 저녁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며 친히 '성찬(聖餐)'을 행했다. 도대체 이 성찬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그리스도인이 성찬의 의미를 알고 성례에 참여한다면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고난주간을 한 주 앞둔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소월로 중앙루터교회. 주일공동예배 성찬식에서 최주훈 목사는 제단 앞으로 나온 수찬자의 눈높이로 떡을 들고 "이것은 당신을 위한 주님의 몸입니다"고 말했다.
성찬의 신비 중 하나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것. 작은 떡 하나에 주님이 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불의한 것, 불가능한 것과 맞설 힘이 생긴다. 주님이 이 작은 것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절망적인 세상도 주님이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된다. 이는 세상에 꺾이지 않는 불멸의 힘이다.
대부분 교회는 회중석으로 떡과 잔을 돌리지만 루터교회는 집례자가 제단 앞에서 일일이 떡과 잔을 분배한다. 최 목사는 한 사람에게 떡이 머무는 시간은 몇 초 되지 않지만, 그 짧은 시간에 그를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한다. “200명이 채 안 되는 교인들이기 때문에 주일 성찬 때 눈빛만 봐도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어요. 한 주 동안 무언가 일이 있던 교우는 분명히 성찬 받는 태도와 눈빛이 달라요. 그럴 때면 상담을 하든 심방을 합니다. 대형교회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성찬을 하다가 스스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고난 중에 있는 분이 신실한 눈빛과 자세로 성찬을 받는 모습, 또는 아이들이 제단 위로 올라와 고사리손을 모으고 기도하며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을 통해 제가 받는 위로와 힘이 더욱 큽니다. 성찬의 시간은 교인과 목회자 모두에게 축복의 시간입니다.” 아이들도 성찬 때 제단 앞으로 나오게 한 뒤 머리에 손을 올려 축복기도를 해준다.
루터교회는 원칙적으로 매주 성찬을 한다. 루터교회가 성찬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성찬 자체를 ‘보이는 말씀’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예배 전반부는 ‘보이지 않는 말씀’인 ‘설교’, 후반부는 ‘보이는 말씀’인 성찬으로 진행된다. 중앙루터교회의 주일예배 참석 인원은 170∼180명 정도이다. 예배의 모든 순서는 1시간20분이면 마무리된다.
“나를 기념하라”
흔히 ‘성찬(The Lord’s Supper)’이라고 부르는 성만찬(聖晩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례(聖禮)다(마 26:26∼30, 막 14:22∼26, 눅 22:17∼20). 복음서 가운데 예수님의 명령으로 이 예식을 행하라는 기록은 누가복음 22장 19절에 나타난다. 즉, “또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다. 초대교회는 성찬 예식을 반복적으로 시행했다.
신도 수가 적었던 초대교회 초기에 행해지던 성찬은 저녁에 애찬이라고 부르는 친교식사 형식으로 행해졌다. 각자의 집에서 공동식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오고 성도들이 사랑의 만찬을 함께 나눴다(고전 11:21).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준비해 온 음식의 수준이 달라 가난한 성도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교회를 배부르게 먹고 취하는 곳으로 전락시킬 위험이 나타나자 사도 바울은 이를 경계하고 식사는 각자의 집에서 하도록 권면했다(22절). 교회가 성장해감에 따라 150년경에는 애찬과 성만찬이 분리돼 성찬은 아침에 행하고 애찬은 저녁에 했다. 그러나 4세기 말경부터는 교회에서 성찬만을 행하고, 애찬은 각 가정에서 행하다가 차츰 사라졌다.
중세에는 예배에서 성찬이 거행되기는 했지만 회중에겐 떡과 잔을 주지 않는 관습이 생겼다. 10세기경 그리스도의 임재 방식에 대한 논의가 격렬했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에선 떡과 잔 중에 떡만 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사제가 떡을 들어 올릴 때 회중이 떡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은 바로 이점을 비판했다. 성찬을 제정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떤 식으로도 훼손돼선 안 되며 타협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떡과 잔을 받으라”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떡과 잔, 두 가지를 회중에게 모두 분찬하는 이종 배찬을 실행했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사제설’의 실천이다. 칼뱅은 정규 예배에서 매주 반복해 시행하는 설교와 기도가 항상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되는 것처럼, 성찬을 매주 반복해 시행하는 것이 ‘성경적 예배의 회복’이라고 여겼다.
성찬으로 회복되는 예배
현재 한국교회에서 시행되는 성찬의 시행 빈도수는 교단에 따라 차이가 있고, 동일 교단이라도 담임목회자의 신학적·목회적 견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분기에 한 차례이거나 조금 많은 경우에는 매월 한 차례 행해지고 있다. 한국개혁주의연대가 201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을 비롯해 고신 합신 교단 산하 421개 교회 목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성찬의식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체 응답 교회의 60% 이상이 연 2회 이하로 성찬식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성찬을 거행하는 교회는 1%에 불과했다.
신학자들은 성찬을 통해 예배정신을 회복하면 양극화되고 침체한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현재 한국교회는 성찬에 담긴 구속사적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단편적 의미(십자가 죽으심을 기념하는 의식)만 알고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신학대학원 이성호 교수는 “성찬의 의미가 부활의 기쁨보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장 고신 교단의 경우 될 수 있는 한 자주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고 있지만 대부분 1년에 2차례 정도 한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성찬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예배는 설교와 성찬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설교 중심의 예배를 드린 결과 성도들이 설교 잘하는 목회자에게 몰린다. 성찬을 통한 예배정신을 회복하면 교회 양극화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설교와 성찬이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찬의 은혜는 예배에 참석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다.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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