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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행] 미래의 역사! 장수왕릉을 가다!

등록일 2017년08월28일 13시3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2] 평화를 위한 조공정책과 국토확장을 위한 남하정책을 펴다!





장수왕은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3~491)으로 80여 년의 재위 기간 동안 고구려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조에는 '조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조선시대 명나라에 '조공'하던 것과 같은 사대사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장수왕 시기에는 고구려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던 북중국과 몽고고원의 유목민족 사이에 전쟁이 아닌 평화가 지속되었다. 고구려는 406년 후연과의 전쟁이 있은 이후 598년 수나라와의 전쟁이 있기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 전쟁이 없었다. 평화를 위해 이웃 국가에 사신을 보내면서 남쪽으로의 영토 확장을 위해 남하정책을 추구하였다. 현재의 중국 길림성 집안의 국내성에서 평양의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정면에서 바라본 장수왕릉. 각 면마다 호분석 3개씩 있다.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장수왕릉은 중국에서 '장군총'으로 부르고 있다. 돌을 쌓아 올린 형태인 돌무지(적석) 무덤이다. 장수왕릉은 규모가 광개토태왕릉, 천추총 다음으로 큰 초대형 무덤인데다가, 돌무지무덤 중에서도 형체가 가장 잘 남아 있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알려진 이후 이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장수왕릉은 광개토태왕릉과 마친가지로 정사각형 피라미드 형식으로 모두 7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에는 무덤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었지만, 돌무지가 밖으로 밀리면서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어 지금은 올라가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다. 무덤 꼭대기는 4단이다. 현재 남아 있는 돌무지 석재 1,100여 개는 화강암을 규격에 맞게 자른 다음 표면을 정성스럽게 갈아서 만들었다. 또한 적석이 밖으로 밀려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높이 약 5m 가량의 거대한 호분석(護墳石)을 각 면에 3개씩 기대어 세웠다. 장수왕릉 우측에는 무덤이 하나 있는데, 장수왕의 후궁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좌측에서 바라본 장수왕릉의 정면 돌무지와 호분석.


 
 


좌측과 후면 모서리에서 바라본 좌측면과 후면의 돌무지와 호분석.

 






후면에서 바라본 장수왕릉의 후면 돌무지와 호분석. 호분석이 2개 뿐이다. 돌무지가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장수왕릉 정면 우측에서 바라본 장수왕릉의 우측면 돌무지와 호분석. 집안은 낮은 산들로 사방이 둘러싸인 분지이다. 장수왕릉 우측에는 후궁의 무덤으로 알려진 무덤이 있다.



 


장수왕의 후궁 무덤이라 알려진 무덤이다.
 


 

광개토태왕릉비는 장수왕 3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장수왕릉 건너편에 광개토태왕릉이 있다. 내부 촬영은 금지이다.





[방위산업전략포럼 권순삼 전쟁사위원장 kwonsanha@naver.com]


 



[뉴서울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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