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최초 장로교 선교사로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 병원 세운 언더우드
- 훼손되지 않은 껍데기 때문에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부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 동상
조현상 기자 = 16일은 기독교 부활절이다. 이날 기독교인들은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하거나 색칠한 계란을 주고받으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었다.
부활절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교회력 절기로 개신교와 천주교를 통틀어 기독교 최대 축일이다.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이 계란 장수였다는 설과 십자군 전쟁 당시 부활절 계란 풍습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징병 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마을 사람들의 친절에 보답하고자 계란에 색을 칠하고 가훈을 적어 나눠 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독일 작가 페터 제발트가 쓴 '가톨릭에 관한 상식사전'에 따르면 10세기 이집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사이에는 부활절에 계란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계란은 거의 모든 문화와 종교에서 다산과 부활을 상징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상징성이 더 강화되었다. 계란은 훼손되지 않은 껍데기 때문에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부활을 가리킨다.
부활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의 세계를 이기고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계란을 주고받은 것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
우리나라 기독교의 꽃을 피운 것은 최초로 장로교 선교사로 들어와서 지금의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 병원을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이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그는 의식주 해결이 힘들어서 학교에 다닐 때나, 교회를 다닐 때나 늘 위축되었지 그럼에도 그는 공부는 열심히 했고, 믿음의 살에 충실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 신앙의 위기를 만난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배 때 마다 헌금을 내지 못해 예배 때 헌금 주머니가 돌아올 때마다 주변의 눈치가 보이고, 누군가 조롱하는 것 같고, 그래서 교회 다니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어린 언더우드의 고민을 알아챈 담당 교역자가 얼마의 돈을 주고 용기를 주면서 예배 때 마다 조금씩 나누어서 헌금을 하라고 했다. 교역자의 이끎으로 시험과 위기를 극복하고 결국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선교활동은 우리나라 기독교뿐만 아니라 의료와 학교 교육의 큰 장을 열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어더우드 선교사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모든 선교 일을 행하신 후에 우뚝 선교사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이 그의 선교활동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많은 후학들에게 그 분의 뜻을 기리고 있다.
1885년 4월5일 선교사 언더우드가 마침내 인천항에 내리면서 기도했다.
오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한 땅에 저를 옮겨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어 왔는지... 사실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떨어뜨려 놓으신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서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두움뿐입니다.
어둠과 가난,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의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사람들의 속셈을 알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정의 내심도 알 길이 없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은 영영 볼 길이 없으니 어찌할까 합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는 순종하겠습니다.
지금 은 우리가 서야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지만,
저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고,
하늘나라 한 백성인 것을 알고 기뻐할 날이 올 것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의원도 없고,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 있는 이 땅이
이제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아멘
<저작권자ⓒ뉴서울타임즈.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