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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서울타임즈] 해외에선 한국 선교와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볼 수 없을까. 이 같은 의문은 세계적인 선교전략가이자 선교동원가인 루이스 부시 박사의 한마디에서 출발했다. 부시 박사는 최근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선교 50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있다는 걸 깜빡했다”는 말을 꺼냈다. 한국이 빠졌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통역한 허보통 선교사다.
허 선교사는 “부시 박사가 수집한 자료들을 봤는데 한국이 아예 없어 말씀드렸더니 한국을 기억하지 못했다”며 “2000년 카자흐스탄을 말했더니 그제야 ‘아, 한국이 있었지’라고 말하더라”고 부연했다. 부시 박사는 2000년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시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교회연합집회에 강사로 나섰고 허 선교사가 그때도 통역을 맡았다.
부시 박사가 한국을 잊은 이유로 꼽은 건 ‘자료’였다. 그는 “한국의 선교 자료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선교 역량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미국의 해외선교연구센터(OMSC)에서 발행한 선교저널 IBMR(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는 43만명이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와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올 초 발표한 ‘2021 한국선교현황 통계조사’를 보면 같은 기간 한국교회는 2만221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두 통계를 단순 교차하면 해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중 5%는 한국교회에서 파송했다.
그래서 국내 선교사와 선교학자, 해외 선교단체 관계자들에게 한국 선교 자료를 해외에서 볼 수 없는 이유를 물었다.
첫 번째 난관은 언어
신석현 포토그래퍼
부시(사진) 박사는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영어로 된 선교 자료를 찾았다. 영어가 사실상 만국 공통어인 데다 선교의 역사가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에서 시작된 만큼 관련 자료 역시 대부분 영어이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와 관련해 영어로 출간된 자료를 찾지 못한 부시 박사는 “한국 선교는 국제화가 안 됐다”고 지적했다. 허 선교사는 “언어의 한계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 남침례교 국제선교위원회(IMB) 선교사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침례교는 단일 교단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 익명을 요청한 IMB 선교사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자기들만의 공동체 문화가 심해 선교지에서도 교류가 쉽지 않다”며 “언어적 한계도 있지만 한국의 선교 시스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이것이 해외 저술 활동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 선교 관련 자료를 해외에서 아예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최근 한국의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이 해외 선교 저널에 저술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카리스교차문화학연구원 문상철 원장은 “세계적인 선교 저널에 꾸준히 한국의 학자들이 논문을 싣고 있으며 비중도 꽤 커졌다”며 “제 이름만 검색해도 IBMR에 여러 편의 논문을 볼 수 있는데 한국 선교 자료를 볼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KRIM 홍현철 원장도 “학술지엔 아시아 권역의 선교학자나 선교사의 글이 한두 편씩 들어가는데 한국 비중이 크다”며 “특히 영국의 옥스퍼드선교연구센터(OCMS)에서 발간하는 저널 ‘트랜스포메이션’의 편집장은 한국 신학자였다”고 설명했다.
‘각자 따로’가 아닌 ‘함께’ 고민 필요
교단이나 선교단체별로 제각각인 자료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나왔다. 허 선교사는 “단체나 교단들이 같은 주제의 자료를 각자 내면서 이론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여기에 ‘우리만 보면 된다’는 인식도 있는데 ‘함께 보자’는 쪽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 선교를 위해 한국만의 고유한 선교 노하우를 공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노력의 첫 번째 과제가 영어로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IMB 선교사는 “영어가 최고라는 말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한국교회의 선교 역량을 알리려면 영어로 출판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 선교지에서 선교사 양성에 사용하는 교육 서적들은 대부분 영어로 돼 있다. 홍 원장은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영어로 교육하는 걸 봤다. 아시아 국가에선 선교사를 훈련할 때 영어로 된 책을 사용하며 영어로 강의한다는 걸 기억하고 한국교회가 힘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선교 자료를 전 세계 교회와 공유하기 위한 방법도 제안했다. 한국선교훈련원(GMTC) 변진석 원장은 “영어로 쓴 내용이 많지 않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해외에서 개인적으로 연락해 한국의 선교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KRIM 자료실에 연구 내용들이 올라와 있고 번역기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앞으로 접근이 용이하도록 한국교회가 함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나서야 하고 소논문, 저작물을 해외 수준에 맞게 번역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시각의 전환과 시선 확장
선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홍 원장은 “해외 선교단체나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선교 사안과 한국에서 관심을 두는 선교 사안에 시각차가 있는 듯하다”며 “관심사가 다르면 연구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해외에서 원하는 내용을 한국의 출판물에선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교한국’이 2018년 발간한 저널 내용을 제시했다. 선교한국은 ‘선교한국의 성과와 영향력 평가’라는 주제로 국제 선교단체의 간행물과 선교한국에서 발간한 간행물을 비교했다.
비교 대상은 선교한국 회보와 전 세계 구독자 1만명 이상의 IBMR, 미 세계선교센터가 발행하는 미션프론티어(MF)다. 세 간행물의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IBMR MF와 선교한국은 선교적 주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선교한국은 “IBMR이 세계 기독교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 주목할 때 선교한국은 그런 양상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건 선교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우리끼리 잘하고 있다’는 데 매몰돼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선교 주도하는 비전 제시
부시 박사의 질문에서 시작된 고민의 답은 선교한국이 2018년 키워드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선교한국은 “지금 세계의 많은 기독교 공동체는 영향을 주는 자와 영향을 받는 자라는 과거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탈피해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새로운 선교 이슈에 민첩하게 반응하면서 세계 선교계를 향해 한국 선교의 상황과 관심사를 소개해 세계 선교 이슈를 주도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세계교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한국 선교를 소개하려면 지도자도 육성해야 한다. 문상철 원장이 지도자 육성 과제로 꼽은 건 두 가지다. 연구 역량을 키우고 언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는 “연구 역량이란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연구 방법론에 입각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과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국제 학술 포럼 참여나 저술 활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한다”고 전했다.
문 원장이 제시한 과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기독교 선교사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세계 최대 국제단체인 세계선교학회(IAMS)가 7월 호주 시드니에서 진행하는 제15회 대회에선 석·박사학위를 마친 한국의 신진학자 18명이 논문을 발표한다. 올해 IAMS 회장직을 승계받는 장신대 선교학과 박보경 교수가 이들의 논문 발표에 큰 역할을 했다.
손영수 편집 /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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