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고대성 기자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추진하여 왕릉급 고분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무덤 입구를 폐쇄하는데 사용한 벽돌을 전량 수습하여 정리한 결과,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이 중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에서는 글자가 새겨진 명문 벽돌이 이미 출토된 바 있어 당시 대외교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비교 평가되고 있다.
이번 29호분 벽돌에서 처음 확인된 명문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다른 것으로서 당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기록된 매우 중요한 자료다.
29호분에서 확인된 명문은 반으로 잘려진 연꽃무늬 벽돌의 옆면에 새겨져 있으며, 글자는 ‘조차시건업인야(造此是建業人也)’로 판독된다.
그 내용은 ‘이것을 만든 사람은 건업인이다’로 해석되며 이 명문은 다음과 같은 학술적 가치가 있다.
첫째, 건업인(建業人)은 중국 남조의 남경 출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를 통해 제작자의 출신지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출신의 명시는 제작자가 외부인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당시 벽돌과 무덤의 축조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았음을 더욱 분명하게 알려준다.
셋째, 명문의 서체 및 내용이 6호분 명문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되어, 당시 제작과정에서 상호 연관성이 주목됨에 따라 추가적으로 관련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6호분 명문의 경우 ‘양관와위사의(梁官瓦爲師矣)’ 또는 ‘양선이위사의(梁宣以爲師矣)’ 등으로 판독된다.
명문에서 표기된 ‘양(梁)’은 중국 양나라(502~557년)를 가리키는데, 이번 29호분 명문 역시 제작자의 출신지가 남조의 도성인 ‘건업(建業)’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두 고분의 명문을 통해 벽돌무덤이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제작에서도 중국 남조의 기술자들이 직접 참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고대사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명문 벽돌은 백제 웅진기의 대외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명문에 대한 3차원 입체(3D) 정밀 분석 등을 시행하여 글자를 보다 명확히 판독하여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토대로 백제시대 서체 복원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29호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잊혀진 고분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백제 웅진기 왕릉원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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