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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려갈 길. 9월 12일 주일예배와 설교. 이영훈 목사

등록일 2021년09월17일 16시43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내가 달려갈 길. 9월 12일 주일예배와 설교. 이영훈 목사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3~24절)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기뻐 받으시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자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기도해야됩니다. 백신이 전 국민에게 다 보급되어서 코로나-19가 속히 종식 되어지게 하여주시옵소서. 동성애와 관련된 어떤 입법도 상정되지 않게 하여주옵소서. 30만 명 밖에 안되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법, 평등법, 차별금지법이라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게 하여주시고 이것이 통과되면 기독교적인 모든 가치관이 무너지고 한국 전통문화 가치관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걸 지켜내야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건강을 붙들어주시고. 박문례 선교사님 폐 기능이 회복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오늘 이 예배를 전 세계에서 함께 드리는 모든 처소 위에 함께 동일한 은혜를 주시도록 우리 주님 앞에 한 번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통성기도)

<찬송가 382장 (통432)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예배를 주님 기뻐하시고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운행하여주셔서 그 마음에 기쁨과 평안함이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드리는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주시고 코로나가 종식되고 이 땅에 동성애 문화가 사라지게 하여주시고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게 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사도행전 20장 23절, 24절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내가 달려갈 길”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큰 소리로 따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달려갈 길.”

누구나 예외 없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 각자 각자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을 깨달아 알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차 우리 주님 앞에 서게 될 터인데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내 삶이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에 속한 고통과 괴로움의 삶이었다고 할지라도 과거는 과거입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별 설교의 일부입니다. 그는 그가 걸어왔던 고난과 영광의 길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1. 고난과 영광이 길

그의 일생은 고난과 영광이 길이었습니다. 우리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었고 때때로 우리에게 기쁨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순간들은 늘 기억되고 기쁨과 영광의 순간은 쉬이 잊어버리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더 이상 과거의 고난, 상처에 묶여있지 말고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만을 기억하면서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저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3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사도 바울은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담대하게 앞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보수적인 바리새인이었고 당시 최고의 학자였던 가멜리엘의 밑에서 공부한 제자요, 또 모든 면으로 부족함이 없는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장차 차세대 지도자로 그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흠은 너무나 자기가 좋은 가문, 좋은 학벌을 가지고 또 자기 신앙이 가장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었다고 하는 그 생각 때문에 자기 의에 사로잡혀가지고.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이단이다. 그리고 예수는 이단의 괴수다. 그래서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도 거기에 증인으로 서서 “참 저 사람 죽어서 마땅하다.” 이렇게 생각하며 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아 감옥에 잡아넣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서서 그가 예수 믿는 사람이 모여있다고 하면 그곳에 달려갔습니다.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는 얘기를 듣고 대제사장에게서 공문을 받아서 그들을 잡으러 가다가 빛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나서 그가 고꾸라졌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 순간 사울은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음성을 들려주신 저분은 보통 분이 아니라 주님이시다.’ “주여! 누구시나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그 순간 그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자기의 생각에 옳다고 자기의 생각에 붙잡혀서 살던 그가 ‘내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잘못 판단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3일간 금식하고 기도 받고 성령충만 받은 다음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꿔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붙잡는데 앞장섰던 그러한 핍박자에서 예수님을 열심히 증거하는 복음 증거자로 그의 삶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이 사울이라고 하는 일을 박수치면서 뒤에서 격려해주었던 이 유대교 지도자들과 강성 유대교인들이 사도 바울을 배신자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항상 이 극우, 극좌에 있는 사람이 문제인 것처럼 이 강성주의자들이 문제인데. 강성주의자들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그를 괴롭히고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고 결사대까지 조직을 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전 지역과 유럽에 복음을 전하며 선교사역을 전개해나가는 동안 말할 수 없는 환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6절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최고형이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때리는 것입니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입니다.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이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이 모든 고난을 주님을 위한 고난이기에 그는 묵묵히 잘 참고 견디며 감당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원망과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조금 주님 일하다가 힘든 일이 다가오면 원망, 불평하고 남 탓하고 또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님 만난 이후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앞만 바라보고 십자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갔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묵묵히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전진해 나아갈 때 주님이 함께하여주셔서 그에게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동시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영광의 길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그에게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환난을 통과한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이 계시록 2장 10절에 나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님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면 장차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다 모두가 면류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모든 대가가 이 세상에서 때때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 상급을 받지 못하고 할지라도 하늘나라에서는 그 하나도 빠뜨린 것 없이 다 주님 기억하셔서 면류관 씌워주시고 우리에게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이며 제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낼 때 그는 이와 같은 고백을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8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편지를 보내고 나서 A.D. 66에서 67년 그 사이에 로마 황제 대 박해 시대에 붙잡혀서 참수형을 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네로 황제가 모든 기독교인들을 붙잡아서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불에 태워 죽이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고 로마 시민권자들은 그래도 은혜를 베풀어준다고 사형 중에 가장 그 형벌이 약한 참수형으로 죽였습니다. 참수형은 죽는 고통이 제일 짧으니까. 많은 경우에 기독교인들은 아주 악질분자라 그래서 불에 태워서 오랫동안 고통을 당하다 죽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이틀, 삼일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갑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로마 시민권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거꾸로 달려 순교하셨고, 사도 바울은 참수형으로 순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서 순교했을 때 그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되고 주님은 환한 표정으로 기쁜 모습으로 두 팔을 벌리고 계시다가 그를 꼭 안아주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면류관을 쓰고 주님을 찬양하시며 지금 우리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그는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2.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

그가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는 주 예수님께 받은 사명에 대해서 20장 2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이 주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그의 삶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각자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각자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아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사명을 준 의사는 의사로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병자를 고쳐야 됩니다. 전문직 예술인은 자신에게 주신 그 재능을 가지고 그 예술의 주신 그 모든 재능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귀하게 쓰여야 될 것이며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은 정말 공명정대하게 하나님 앞에 바른 양심을 가지고 법을 집행해야 될 것이고 직장인은 직장인 그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정말 인정받고 칭찬받고 그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직장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데모나 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아니하고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는 직장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을 잘해서 자기가 회사를 잘 경영해서 그 받은 수입으로 얻은 수입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좋은 일에 많이 써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을 보니까 밤낮 자식들끼리 재산 때문에 싸우고 장례식장 때부터 장례식 할 때부터 집안에 문제가 생겨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돈은 잘 쓰라고 주신 것이지 움켜쥐고 있다 그냥 자식들 싸우라고 남겨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직장인은 직장인, 사업인은 사업인으로서 정말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됩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가르치는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 배우는 학생은 학생으로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나를 인정해주시고 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한국 개화기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한국에 와서 순교한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선교사님들과 그 자녀들의 무덤이 지금 양화진에 가면 저렇게 많은 선교사님들이 묻혀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조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조선 사람들이 그냥 복음 듣지 못하고 질병과 가난과 저주 속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만 듣고 무작정 한국으로 왔습니다. 멀고 먼 한국까지 배를 타고 40일, 50일 걸려서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 땅에서 쓸쓸히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희생을 기꺼이 기쁨으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감당했던 것입니다.

내게 생명이 천 개가 있으면 다 조선 사람 위해서 바치겠다고 했던 루비 캔드릭이라고 하는 여선교사가 있습니다. 25살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와서 선교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8개월 만에 급성 맹장염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만약 제게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것들 모두를 한국을 위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If I had a thousand lives to give Korea should have them all.

“내게 만약에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을 다 우리 한국 사람, 조선 사람을 위해서 주겠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주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이 교회를 위해서 충성, 헌신, 봉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교회를 사랑하는 삶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우리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보금자리입니다. 영생의 터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야 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을 불러서 교회를 잘 보살펴달라고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20장 28장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지금 마지막 길을 떠나면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교회를 부탁합니다. 교회를 잘 보살펴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지금 이곳에서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5절입니다.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의 말대로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붙잡혀서 결국은 로마로 가서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길을 가면서 사랑하는 동역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서 교회를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잘 보살펴주시오.” 우리가 일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꼭 지켜야 될 신앙이 교회 중심의 신앙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 왜?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교회를 사랑해야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고 교회 성도를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충만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 23절은 설명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이 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일이라고 하면 모든 것 다 뒤로 제쳐놓고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일을 해야 됩니다. 교회 일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됩니다. 교회 일을 하는 것이 내 삶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 해를 입히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몸 된 교회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고 오히려 상처 입은 영혼을 품고 위로하고 치료해주고 우리가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부흥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패가 나누어져서 다퉈도 안 됩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할까 조심하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꿈과 희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힘을 합하여 하나되어 주님의 영광 위해서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내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20장 27절입니다.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그러면서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와 같이 권면합니다. 28절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앞으로 교회를 돌볼 때 이와 같이 교회를 돌보라. 첫째로 늘 자신을 잘 살펴라.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은, 재직들은 먼저 자신을 잘 살펴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앞에서 잘못된 점이 없는가. 내가 부족한 점이 없는가. 늘 자신을 살펴보고 부족한 점은 기도하면서 보충하고 잘못된 점은 바로잡고 그래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됩니다.

나아가서 성령과 동행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첫째도 성령충만이요 둘째도 성령충만이요 마지막도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은혜가 떠납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길 때 성령충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잘 보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이라면 내가 앞장서서 헌신하고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사 크게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큰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일이 기쁘고 감사한 자들은 하나님이 일생이 복되게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나 교회 일에 뒷짐지고 뒤로 물러난 자들은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우리 주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한국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는데 그중에 제임스 홀, 로제타 홀 선교사 부부를 소개하기 원합니다. 로제타 선교사가 먼저 한국에 들어왔는데 로제타 선교사는 세계 최초의 의과대학인 펜실베이니아 여자 의과대학을 졸업한 분입니다. 뉴욕 설리번 카운트에서 출생을 했는데 “조선이라는 땅에 여자 의사가 필요하다.” 그런 얘기를 듣고 조선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먼 길 배를 타고 뉴욕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때가 1890년 10월달입니다.

그런데 로제타 선교사와 함께 선교의 꿈을 가지고 뉴욕에서 의료선교할 생각으로 있던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도 그녀의 뒤를 따라서 1년 뒤에 한국 땅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1892년 6월 21일 결혼을 하는데 이 결혼식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입니다. 1892년 6월 21일 결혼식을 하고 윌리엄 홀 선교사는 평양선교 개척 책임자로 임명받아 평양선교를 시작합니다.

첫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나고 평양에 들어갔는데, 그 해 7월에 청일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평양이 전쟁터가 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그래서 막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는 환자들을 하루 종일 치료하느라 그는 쉴 틈도 없이 온몸에 과로하면서, 저들을 치료하다 그만 본인도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를 치료하기 위해 급히 서울로 호송했는데 서울로 오자마자 과로와 그 감염된 병으로 말미암아 부인 로제타와 아들 셔우드의 손을 잡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에 34살입니다. 34살에 한국에 와서 2년 동안 사역하다가 과로와 병의 감염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근데 그때 부인이 둘째 아이를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부인이 남편을 묻고 나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어여쁜 딸 에디스가 태어납니다.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이 에디스가 그 오빠랑 같이 남편이 섬기던 교회, 남편을 선교사로 보낸 교회로 갔을 때, 모든 교우들이 그 선교사를 기억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서 너무나 이 로제타 선교사와 두 아이를 반기니까, 그 모습에 감동된 로제타 선교사가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 남편 윌리암 제임스 홀이 이루지 못한 조선 사랑을 네가 이루어라

그래서 로제타 선교사가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다시 한국으로 건너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자 얼마 안 돼서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예쁜 에디스가 풍토병에 걸려 죽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딸을 남편이 묻힌 그 자리 옆에다 묻습니다. 묻으면서 이와 같은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내 아들 셔우드 홀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비록 남편과 딸을 잃었지만 내가 이 아들을 키우면서 이 조선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합니다. 그로부터 이 젊은 이 로제타 홀의 선교사역은 우리 역사 가운데 정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큰 업적을 이룹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병원도 만들고 또 여자 환자를 위한 병원도 만들고 또 맹인들에게 점자를 가르치면서 최초의 맹인학교도 만들고 또 맹인학교를 만들고 난 다음에 농아교육도 시작하고.

최초로 한국 여성을 미국에 유학시켜서 의사로도 만들고, 동대문 옆에 세운 병원이 이화여대부속병원이 되고 또 서울에 경성여자의자전문대학을 세웠는데 그것이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고 인천에 간호대학과 기독교 병원을 이분이 다 세웠습니다. 85세로 숨을 거두며 그는 “내 남편 곁에 가겠습니다.” 해서 평소의 유언대로 남편과 딸이 묻힌 양화진에 함께 안장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 일생이, 그 온 가족이 정말 하나님 앞에 드려진 참 감격의 일생, 감동의 일생이었던 것입니다. 그 아들이 대를 이어서 사역을 하고 평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온 가족이 엄마, 아빠, 딸, 아들이 한국에 와서 귀한 사역 감당하다가 이 땅에서 숨을 거두고 이 땅에 묻혔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 길이 어떤 고난의 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각자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각자에게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맡기신 사명 잘 감당하여서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우리 남은 여생이 중요합니다. 이 한 연약한 여인이 한국에 와서 이렇게 큰일을 이루어서 오늘날의 우리가 선교 대국을 이루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 나의 남은 여생 정말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와 같은 고백을 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고백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찬양합니다.

<찬송가 461장 (통 519장)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절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절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절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이 찬송의 고백대로 죽기까지 주님 앞에 맡기신 사명 감당하면서 사랑과 충성 다 바쳐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우리에게 주신 귀한 사명 깨달아 알아서, 그 사명 감당하기에, 충성과 헌신, 남은 여생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뉴서울타임스] 조현상 기자 disf@dis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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