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8월 22일 주일예배와 설교, 이영훈 목사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마가복음 10장 46~52절)
포토샵 / 조현상 기자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해도, 주님을 향한 우리의 간절한 사랑을 막을 그 어떤 사람도 없고 어떤 세력도 없고 어떤 어려운 문제도 없습니다. 이럴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기도하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때 주여,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여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주신 은혜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특별히 은혜에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붙들어주시고 건강을 지켜주셔서 귀한 사명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병상에서 고통당하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시간 건강의 회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간다 박문례 선교사님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 치료받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또 미주지역에 델타 변이로 다시 재확산이 일어나고 있는데 오늘 많은 미국에 있는 우리 순복음선교사나 교회들이 예배 참여하고 있는데, 모든 교회에 제2의 부흥이 있게 하여 주시고 코로나 19의 확산이 멈춰지고 일상이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통성기도)
<찬송가 382장 (통432)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교만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술은 얘기하면서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코로나19가 갑자기 시작되어 1년 반이 넘어가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을 깨닫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재점검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여 주님 보시기에 우리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그런 믿음의 모습으로 변화 되어지게 하여 주시며 말씀으로 재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우리에게 맡겨진 귀한 사명 감당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영상으로 함께 드리는 모든 처소 위에 놀라운 은혜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미주 전역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전 세계 함께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함께하는 모든 주님의 백성들에게. 교회, 지성전, 기도처, 또 집에서, 있는 곳에서 예배드리는 모든 처소 위에 주의 성령으로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로 52절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홀로 살아갈 수가 없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때 홀로 거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아담을 통해서 하와를 창조하셔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고 그 가정을 통해서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셨고 그 자녀들이 자라나면서 하나님의 영광 아래 살도록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 삶 가운데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생은 만남의 일생입니다. 태어나면서 부모님과 만나고 자라나면서 친구와 선생님과 만나고 또 장성하여서 한평생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고 또 자녀가 태어나면 그 자녀를 만나고. 이렇게 일생동안 만남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그 삶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나쁜 사람과의 만남 문제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삶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부모님을 잘못 만났다. 나는 친구를 잘못 만났다. 나는 누구를 잘못 만나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 그렇게 자기의 문제와 어려움의 원인을 잘못된 만남에다가 다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어떤 만남보다도 가장 귀하고 우리 일생을 뒤바꿔 놓을만한 가장 중요한 만남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내 삶이 어떻게 망가졌든지 내 삶이 어떤 문제 가운데에 빠졌던지 내가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인생을 살았던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그 일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 일생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 절망이 절대 희망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일생일대의 축복이요, 기적이요, 은혜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삶이 완전히 드라마틱하게 바뀌어진 한 사람의 이야기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1. 맹인 거지 바디매오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오늘 말씀에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입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지나가시는데 거기 거지 맹인 바디매오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이름에 ‘바’자가 붙은 것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디매오’하면 디매오의 아들이고 ‘바요한’하면은 요한의 아들이고 ‘바요나’하면은 요나의 아들인 것입니다.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는 맹인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까 무엇하나 자기 스스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옆에서 도와주어야되고 또 맹인으로서 특별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구걸하며 거지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절망적인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즘이야 장애인들을 위한 많은 혜택이 있고, 복지가 사회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되어서 그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지만 그 당시 2천 년 전, 이 맹인 바디매오의 삶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앞은 보지 못하지만, 청각은 발달되어서 남보다 더 말을, 소리를 자세히 듣고 또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까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사렛에서 오셨는데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다 병 고침 받는다. 나병 환자들이 10명이나 예수님 만나서 다 고침을 받았다. 죽었던 사람도 예수님이 살리셨고,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로 벳세다 광야에서 남자 어른 5천 명이나 먹고 12바구니나 남았다.” 그런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에게 전해져 왔을 때 그의 마음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흥분되었습니다. “나도 예수님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할렐루야! 꿈과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요, 우리의 축복이요, 기적이요, 생명이요, 능력이요, 모든 것 되십니다. 할렐루야!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희망이 되십니다.
이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죄와 절망 가운데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떴다고 하나 영적인 맹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죄를 밥 먹듯이 지으면서 죄 가운데 살다가 죽어가는 그러한 인생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밤낮 무언가 얻기 위해서 몸부림쳐야 되기 때문에 거지와 다를 바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처럼 맹인이고 거지 된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오셨고 가난과 저주에서 자유함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39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함이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보지 못하는 자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시고 영적으로 교만하여서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 영적인 맹인같이 된 사람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주님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과 저주 속에서 살고 있는 저들을 구원하여 풍요로움의 은혜를 주기 위해서 주님 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 영적인 맹인에서 눈을 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만나 이 가난과 저주에서 벗어나, 풍요함의 축복을 누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소리가 들려오는데, “예수님이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이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너무나 그는 감사하고 기뻐서 주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히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2. 간절히 예수님을 부른 바디매오
간절히 예수님을 부른 바디매오에 대해서 10장 47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자기의 눈을 뜨게 해주실 분임을 확실히 믿고 그는 간절히 외쳤습니다. 여러분 예배가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마음에 믿음이 생겨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로 기적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충만이고 믿음충만입니다. 성령충만, 믿음충만만 가지면 우리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고 승리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슨 소리를 듣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세상의 소리, 사람의 소리는 늘 우리에게 염려, 근심, 걱정만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뉴스를 보시기 바랍니다. 뉴스를 듣고 보는 것 다 부정적인 얘기뿐입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는 사람들이 여당 내에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야당 내에서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정말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됩니다. 국민들이 살아날 수 있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는 그러한 비전을 제시해야 되는데 서로 물고 뜯고 있으니 우리나라 정치자들, 지도자들은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섬길 줄 알아야 되고 국민들에게 진정 꿈과 희망을 주는 그러한 지도자가 되어야 되는데 지금 우리에게 들린 소리는 너무나 부정적인 얘기, 남 물고 뜯는 얘기, 험담하는 얘기만 들려옵니다.
주님, 주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저들이 변화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1천만 크리스천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똑같이 주님의 음성을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회개하라. 주님께 돌아와라. 믿음으로 바로 서라.”고 외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이고, 우리 민족의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 받아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고백을 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간절히 예수님을 부르자 주위 사람들이 야단쳤습니다. 꾸짖었습니다. 10장 48절입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시끄럽다 조용하라. 거지 주제에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이냐. 조용히하라!”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때때로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꾸짖기도 하고, 그래봐야 소용없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만 우리의 문제와 소원을 아뢰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 그러던 날 갖고 뭐 무슨 비난을 하고, 그것에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문제 해결의 답인 것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시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불쌍히 보시는 그 순간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소리를 듣자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3. 바디매오를 부르시는 예수님
바디매오를 부르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10장 49절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주님이 발걸음을 멈출 때까지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또 부르짖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응답이 다가올 때까지 기도하는 그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중간에 멈춘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한두 번 기도해보고 안 되면 말지. 그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응답이 다가올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주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내게로 오게하라” 그 얘기를 듣자마자 바디매오는 감격해서 자기가 두르고 있던 겉옷을 내던져버리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마가복음 10장 50절입니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이 겉옷은 바디매오의 전 재산입니다.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입니다. 비가 올 때는 우비가 되고 추울 때는 외투가 되고 밤에 잘 때는 이불이 되고 또 구걸할 때는 그것이 방석이 되고 깔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르시니까 자기의 전 재산이었던 겉옷을 내던져버리고 예수님께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입고 있는 이 거지의 겉옷을 내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거지의 겉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과 원망과 불평의 겉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겉옷을 과감히 내던져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던져버리고 주님 앞에 믿음의 결단을 보일 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죄의 겉옷을 내던져 버려야 됩니다. 미움, 분노, 탐욕, 부정적인 생각의 겉옷을 다 내던져 버려야되는 것입니다. 그 더럽고 냄새나고 퀴퀴한 그 겉옷이 뭐가 좋다고 거지의 겉옷을 그걸 늘 입고 그걸 벗어버리지 못하고 문제 속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 주님 앞에서 그 과거의 겉옷을 다 내던져 버리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그 겉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 삶에 아무런 변화가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런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으로 바뀌기 위해서 이 겉옷을 내던져 버려야 됩니다. 과감하게 과거의 나를 괴롭히고 나를 붙잡고 있던 옛사람 모습의 겉옷을 내던져 버리고, 주님 앞에 달려나갈 때,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달려나온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51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디매오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우리의 기도는 분명해야 됩니다. 정확해야 됩니다. 나의 소원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주님께 아뢸 때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10장 52절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할렐루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절대긍정의 믿음입니다. 눈에는 보이는 것 없고, 귀에는 들리는 것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여 믿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때 기적이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축복이 임합니다. 치료가 임합니다. 회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때 바디매오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말은 하면서도, 마음에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적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믿고 구하면 그 믿음 위에 기적을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의심과 불신앙은 기적을 가로막는 우리들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는 약속의 말씀만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그 순간 눈이 떠졌습니다. 기뻐뛰고 즐거워하며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내가 맹인이었는데 예수님 만나서 내가 눈이 떠졌습니다. 나는 거지로 살았는데, 이제 나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의 역사로 기적을 체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그 은혜를 간증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목사님 말씀 듣고 내가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목사님 성회 갔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주님 나와 함께하십니다. 나를 만나주신 주님으로 인해서 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내 삶이 새로워졌고 내 사업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됩니다. “주여! 주님께서 이와 같은 역사를 나에게 베풀어주시옵소서. 우리 자녀를 주님께서 복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나의 사업을 일으켜주셔서 하나님의 영광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큰 복이 임합니다. 그 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죄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달려나아가 영의 눈이 떠서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날마다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셔서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믿음이 없는 사람하고 일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좀 부족하고 못나고 성격이 좀 못됐어도, 믿음을 갖기만 하면 그 믿음 위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큰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지만 영의 눈을 떠서 한평생 찬송가를 9,000편이나 지은 화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이 계십니다. 1820년 3월 24일 뉴욕주의 풋남 카운티에 브루스터라고 하는 아주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굉장히 가난한 집이었는데 생후 6주 만에 눈에 병이 났습니다. 근데 그 동네에 의사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돌팔이 의사인 동네 누가 병원을 한다는 분이 옛날에 한국 사람들이 어디 데이면 된장 발라주듯이, 뭘 갖다 민간요법으로 발라주었는데 그만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눈을 뜨게 하려고 막 이리 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니고 했는데, 결국 아이의 눈을 뜰 수 없고,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그 아버님이 또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까 엄마 혼자서 이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하느라 파출부를 하며 온 고생을 합니다. 너무너무나 가난해서 가난 가운데 또 자녀를 돌보는 엄마로써 힘든 나날을 보내는데 이 아이를 돌본 것은 그의 할머니입니다. 할머님이 늘 품에 안고 기도해주면서 신앙으로 양육했는데, 11살이 될 때 그 할머니도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인생을 돌아보면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 어느 한때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늦게 결혼을 했어요. 38살 때 결혼을 했는데, 그때 태어난 아이가 또 죽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마 정신이 돌아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마음 가운데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 가운데에 계셔서 그분을 붙들어주었습니다. 주님이 늘 함께하시니까 성령의 은혜가 임해서 본인에게 주신 재능을 가지고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며 찬송을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또 짓고 해서 무려 9,000편을 지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그분이 지은 찬송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까 불렀던 “나의 영원하신 기업”도 그분이 지은 찬송이고, “인애하신 구세주여”도 그분이 지은 찬송이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다 그분이 고난 가운데에 성령의 은혜로 감동받아 지은 찬송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인생을 장수의 복을 주셔서 그러니까 1820년에 태어나서 1915년 2월 10일 날 돌아가셨으니까. 95세를 살면서 많은 찬송을 짓고 칸타타도 5개나 작곡을 하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고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단 한 번도 그의 입술에서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결코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세요. 당신을 위한 아침이 밝을 것입니다. 당신은 머지않아 빛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언제나 불평 대신 감사를 드렸고 그에게 주신 시를 쓰는 재주를 통하여 많은 찬송을 지었습니다. 그의 일생의 여정을 생각하면서 지은 찬송 중에 하나가 찬송가 391장입니다.
<찬송가 391장 (통446) : 오 놀라운 구세주>
1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 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후렴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손으로 덮으시네
2절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내 모든 짐 벗기시네 죄악에서 날 끌어 올리시며 또 나에게 힘주시네
3절 측량 못 할 은혜로 채우시며 늘 성령의 감화주사 큰 기쁨 중 주님을 찬양토록 내 믿음을 도우시네
4절 주 예수 공중에 임하실 때 나 일어나 맞이하리 그 구원의 은총을 노래하리 저 천군과 천사와 함께
지금 여러분 어떠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어떤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에 살고 계십니까? 아직도 거지의 겉옷을 입고 구걸하며 살고 계십니까? 이 시간 예수님을 만나 이 모든 거지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하고 성령충만 받아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인생보다 앞으로 남은 인생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짧게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영의 눈을 떴사오니 이제는 남은 여생 하나님 영광 위해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아서 절대로 시간 낭비하지 아니하고 세월을 허송되이 보내지 아니하고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뉴서울타임스] 조현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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