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3월 7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포토샵 / 조현상 기자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믿음의 고백대로 될 것입니다.
주여 이 시간 우리에게 성령이 임해서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고 병이 고침 받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하여주옵소서.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귀한 사명 감당케 하여주시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82장(통43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거룩한 주일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립니다. 성전에서, 지성전에서, 기도처에서, 집에서, 여러 곳에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고 주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로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채워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날마다 건강을 더하여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고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복음성가 :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설교말씀>
오늘 갈라디아서 2장 20절 본문으로 하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제목을 큰 소리로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지금 교회력으로 사순절이라고 하는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40일 동안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는 그러한 기간을 말하고 영어로 ‘Lent’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정해서 주님의 고난을 기점으로 해서 40일 전에는 우리가 세상 오락을 끊고 경건하게 보내면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자 해서 정해놓은 기간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1,700년 전부터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에 늘 감사, 감격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다음 한평생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내 삶의 첫째도 십자가요 둘째도 십자가요 마지막도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해서 한평생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내가 죽는 삶
이 십자가 신앙이 사도 바울의 일생의 고백이었고 이 십자가 신앙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녹아 들어있어서 그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본인의 가장 귀중한 신앙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먼저 내가 죽는 신앙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죽는 삶.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서 새사람이 되었는데 내 안의 또 다른 옛 사람이 거하고 있어서 자꾸 나를 옛날의 모습으로 이끌어 갑니다. 죄의 습관으로 이끌어 갑니다. 내가 새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옛 사람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예수 믿은 그 날부터 하늘나라 가는 그날까지 끊임없는 갈등과 영적 전쟁이 그 삶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옛 사람이 죽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성령충만이 떠나가면 옛 사람이 다시 나를 점령해서 미워하고 분노하게 하고 상처받게 하고 절망에 처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옛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모습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18절, 19절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안타깝게 그는 이 육에 속한 그 죄의 모습을 보고 탄식합니다. 24절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옛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내가 죽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는 자기의 의에 사로잡혀 가지고 예수님을 이단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교회를 훼파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감옥에 집어넣고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 “아 참 잘 죽는다.” 하고 증인으로 서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를 받고 나서 그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자기의 모든 자랑거리를 다 배설물처럼 내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8절에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렇게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자랑거리를 다 배설물처럼 내던져 버렸습니다. 여러분 옛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입니까. 교만합니다. 이기주의적이고 탐욕이 가득하고 자기밖에 모릅니다. 남이 어떻게 되던 나만 잘되면 되고 나만 더 높아지면 되고 나만 더 가지면 되고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았던 것이 우리 옛 사람입니다.
이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옛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늘 문제투성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내 안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는 것이 곧 사는 길이고 죽는 것이 복 받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고백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할렐루야. 여러분, 죽은 사람은 욕을 퍼부어대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걷어차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송곳으로 찔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왜?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은요 자존심도 없어요. 누가 나를 무시했다고 해서 왜 날 무시했냐 그러지 않습니다. 왜냐? 죽었으니까. 죽은 사람은 미워할 일도 없고 분노할 일도 없고 소리 지를 일도 없고 다툴 일도 없습니다.
왜 우리 삶 속에 문제가 많으냐 내가 살아서 그렇습니다. 살아서. 살았으니까 기분이 나쁘고 살았으니까 감정이 격해지고 살았으니까 소리도 지르고 살았으니까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축복은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문제를 우리가 다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미움도 원망도 불평도 다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죽으면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참 연약해서 아무것도 아닌 누가 뭐라고 했다. 그러면 확인도 안 해보고 막 분노하고 상처받고 잠 못 자고 그럽니다. 또 누가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주면 우쭐해져서 “내가 잘났지.” 하고 한없이 교만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누구냐, 나 자신입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어, 그거 아닙니다. 내가 부모님을 잘못 만나서, 그것 아닙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아내를 잘못 만나서, 자식이 속 썩여서, 그것 아닙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한테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낙심할 것도 없고 잘된다고 박수쳐 줄 때 우쭐댈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 세상 권세, 인기, 명예는 쉬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한없이 높아질 줄만 아십니까. 높아지면 낮아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한없이 다 가지고 살 줄 아십니까. 가졌다가 또 내놓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오늘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 다 놓고 가야 됩니다. 다 놓고 가야 해요.
어저께 밤에 한 11시쯤 되어서 미국하고 아프리카하고 한국하고 우리 가족들이 다 줌으로 저희 어머님 3주기 추모 예배를 드렸습니다. 추모 예배를 드리면서 어머님의 영상을 보는데 많은 생각이 제 마음을 스쳐 갔습니다.
천국에서 우리 예수님 곁에서 우리 어머님이 나를 보고 계실 텐데 내가 지금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어머님처럼 저렇게 숨을 거두실 때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기는 그러한 모습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가. 부끄러웠습니다.
여러분, 죽음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그저 우리가 잠시 있다가 가는 나그넷길 인생이요, 아침 안개처럼 쉬이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큰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우리 가정이 살고 내가 죽어야 이 교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이 사회가 살고 내가 죽어야 이 나라가 사는 것입니다.
안 죽은 사람들이 “나, 나, 나” 하다 보니까 이 나라가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안 죽은 사람들이 막 땅을 사들여가지고 이번에 신도시 발표가 나니까 온 나라가 다 뒤집혔습니다.
자기밖에 몰라요. 어렵고 힘들고 고통당하는 이웃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만 알고 자기만 많은 것을 가지고 그것 다 움켜쥐려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경고의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 것을 너무 움켜쥐려고 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내가 죽고 주님 말씀, 그 은혜를 베풀고 나누면서 살아가라.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날마다 죽으십시오.
어떻게 내가 죽을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늘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치료받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
내가 죽고 나면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20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내 안에서 주님이 부활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살아주시고 내 삶에 주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내가 나의 주인이었지만 예수를 믿고 나서는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내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나는 새롭게 변화된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옛날에 늘 상처 입고 절망 속에 탄식하던 그러한 옛 사람이 아닙니다. 변화된 새로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충만 받으면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거룩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을 믿고 붙잡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와 같은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업을 해도 사업장의 사장은 내가 아니고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 사업장의 사장이시고 우리 보스이시고 나는 그 밑의 심부름꾼입니다. 내가 집을 사도 등기부등본에는 내 이름이 있을지 몰라도 실제 집주인은 우리 주님이시고 내가 주님의 은혜로 그 집에 사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해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도 다 주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안 됩니다.
왜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그렇게 교회가 뭇매를 맞느냐, 우리가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르게 살고 우리가 사랑을 베풀며 살고 저들에게 감동을 주었더라면 그렇게 우리를 핍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 와서야 교회라는 이름 대신 종교시설로 바뀌었지마는 처음에 신천지가 교회라는 이름을 갖고 나왔기 때문에 얼마나 뭇매를 맞았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신천지가 교회가 아니라고 해도 왜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그래서 우리가 도매급으로 두들겨 맞은 것입니다.
교회 내에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와도 교회발, 교회발, 몇 명 나왔다, 그렇게 우리가 두들겨 맞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교회라는 이름은 쓰윽 사라지고 종교시설로 바뀌었지만 어쨌건 우리가 잘못해서 그런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배드릴 때만 크리스천이고 나가서는 똑같이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싸우고 욕하고 분노하고 다투니까 이것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야지 내 모습으로 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면 한평생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셔야 나를 다스려주시고 나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주님의 일을 하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의로우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속에도 평화가 흘러넘쳐야 되는 것입니다. 기쁨의 근원 되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내 마음에 기쁨이 샘솟듯이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주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주님의 은혜가 풍성히 넘쳐나야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이 내 마음 가운데 계셔서 우리가 영생을, 생명을 가지고 기쁨으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으로 바뀌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믿음으로 사는 삶
셋째로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 2장 20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우리가 무엇 안에 사느냐,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한평생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 성령충만과 믿음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능력을 받는 것이요, 믿음 충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성령충만 받은 사람이 믿음으로 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2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주여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거룩한 꿈을 꾸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행해서 우리 삶이 기적의 삶으로 바뀌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흑암의 권세가 물러가고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믿음의 역사의 기초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보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 감격하며 우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랑의 빚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온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주위의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난 당하는 이웃에게 예수의 사랑을 베풀 때 주님의 사랑을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1년 넘어가면서 너무 힘드시죠, 얼마나 힘드십니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우리가 보내고 있는데 그러나 우리 주변을 보면 우리와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
2018년도 서울시 통계를 보니까 노숙인들, 길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노숙인들이 약 3,200명인데 노숙인 시설에도 못 들어가고 거리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이 약 29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숙인보다 조금 낫지만 정말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계신 분들, 1.25평의 쪽방에서 사는 분들 그분들이 몇 명이냐, 3,296명. 서울역 쪽방촌에만 700명 넘게 삽니다.
그런데요. 그 앞에 갔더니 다 한 칸, 한 칸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냉방시설도 없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난방시설이 없어서 겨울에는 너무 춥고 냉방시설이 없으니까 여름에는 너무 덥고 수도시설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 방 하나, 하나가 한 층에 20, 30개가 붙어있는데 복도도 조그마해가지고 비켜서 들어갈 수 있는데 저 구석에 공동 화장실 하나 있어서 아침에 줄을 서야 하고 평균 한 달 월세가 18만 2천 550원인데 서울시에서 주거 급료로 나오는 돈이 21만 3천 원입니다.
그러니까 21만 원 받아서 18만 원 내면 3만 원 가지고 살아야 되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살고 있는 분들이 평균 그 쪽방 1.25평, 한 평짜리 집에서 사는 평균 기간이 11.7년. 약 12년 가까이 사는 거예요. 거기에.
제가 서울역 쪽방촌에 갔을 때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두 분이 계시더라고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데 몸은 아프고 그냥 그곳에서 누워 계신데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면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이 코로나19로 어렵다고 하지 말고 우리 가진 것들을 그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라면 한 박스씩 들고 가서 그들에게 나눠주고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고 겨울에는 우리가 입지 않는 옷 중에서 입을 만한 옷, 따뜻한 옷도 갖다주고 좀 그래서 우리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믿고 나서 너무나 복 받고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늘 나만 위해 살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의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우리 교회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많은데 코로나 때 예배도 못 드리는 것이 핸드폰이 폴더 폰이에요. 그러니까 인터넷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릴 수가 없어요.
많은 미혼모들, 보육원 시설에 살고 있는 많은 아이들, 18살이 되면 거기서 무조건 나와야 되는데 갈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영등포역에 청년 장학관을 만들어서 한 1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데 많은 숫자를 다 감당할 수가 없죠.
그런데 진짜로 그 사람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누구냐 보니까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 와서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들 작년 6월 현재 39만 8,518명. 약 40만 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있는데요, 이분들은 불법체류자가 되니까, 붙잡히면 추방당하게 되니까 아파도 병원에도 못 가고 문제가 터져도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정말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요번에 확진자가 한 200명 나온 남양주 플라스틱 공장에 있는 분도 거기에 불법체류자가 많았는데 공장 하나에서 200명이 넘게 나왔어요. 그런데 40만 명 다 조사하면 얼마나 많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중에서 더 힘든 사람들이 누구냐, 거기서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은 태어는 났는데 부모가 불법체류자니까 그 어디에도 아이들의 신분이 없어요. 분명히 한국에 살고 있는데 이 아이가 어디에도 흔적이 없어요.
미국처럼, 미국에서 태어만 나면 미국 시민권을 주는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제가 늘 얘기하는 것이 가영주권이라도 줘서 일단 태어만 나면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의료혜택과 교육 혜택이라도 받게 하자.
이 아이들이 8살, 10살이 되었다가 불법체류자로 있다가 한국에서 완전히 왕따 당하고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병듭니다. 아파도 병원에도 제대로 못 갑니다. 우리가 사랑의 눈을 떠야 됩니다. 사랑으로 저들을 섬겨야 됩니다.
또 선천적 장애인, 후천적 장애인, 몸에 장애를 입고 있는 분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분들을 우리가 사랑으로 품어야지 누가 품습니까. 이 세상에 그들을 돌볼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할 것입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은 휠체어 성악가 황영택 집사를 소개합니다. 25살 되던 해 꿈이 많던 젊은 시절 건설 현장에서 크레인 시공을 하다가 건설장비가 덮쳐서 하반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결혼한 지 5개월도 되지 않은 신혼이었고 아내의 뱃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닐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밤낮 술을 마시고 자살을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부인이 계속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납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나를 죄인이라고 하니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고난과 절망의 때를 만나 상황이 절실하니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장애로 끝날 인생을 주님을 바라보고 장애를 뛰어넘어서 내게 하나님께서 뭔가 일을 하고 계시다, 거룩한 꿈을 갖고 그가 다시 장애인 테니스 선수로 일어나서 휠체어 테니스를 시작했고 10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면서 장애인 아시아 대회에서 메달도 따고 대통령 표창도 받습니다.
2001년도 스위스에서 월드컵 대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어느 날 잠을 자는데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꿈을 꿨습니다. “제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데,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괴로운지, 내 죄를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하나님, 왜 저에게 이렇게 엄청난 꿈을 주십니까? 제가 십자가에 달린 건 어떤 의미입니까’ 하면서 눈물을 쏟으면서 주님 앞에 회개 기도를 드릴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전의 황영택은 죽고 이제는 그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라’ 하시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주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한국에 돌아와서 기도원에 들어가서 일주일간 금식기도하고 나서 37살인데 수능 시험을 봐가지고 성결대 성악과에 입학을 해서 6년 동안 공부를 해서 졸업하고 난 다음 그는 희망을 노래하는 휠체어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TV에서,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 가지 방송 채널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찬양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고 2018년에는 평창 패럴림픽에서 애국가를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는 무료 희망 콘서트와 간증을 통해 장애인들과 또 우리 모든 정상인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한 사역자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 있지만 오히려 장애를 통해 가장 크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더 값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소망이 끊긴 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주며, 호흡이 다하도록 주님께 찬양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탐욕과 죄로 얼룩진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이제 남은 여생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삶을 살다가 장차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주님 앞에 서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이제 남은 여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십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찬송가 461장(통519)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더 이상 옛 사람에 붙잡혀 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새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편집 조현상 기자 disf@dis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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