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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화암사, -잘 늙어서 포근한 천년고찰...꽃따라, 전설따라 찾아간 소규모 여행지

등록일 2021년03월10일 02시47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화암사를 오르는 산속길가에는 복수초를 비롯해서 각종 희귀 야생화 서식지로 유명하다보니 전국의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진인들로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다(사진=하성인기자)

[뉴서울타임스] 기자 = 어디 그 만큼 오래된 절이 없으랴마는 세월만 수수히 보내면서 오래되었다하여 그렇게 부르진 않았으리라 본다.

'잘 늙은 절이라고...' 어느 혜안(慧眼)이 밝은 시인이 저리도 딱부러지게 노래했을까 싶은 화암사.

바위 위에 핀 꽃이라고 풀이 할라치면 절 이름 조차도 예사롭지 않게 화암사를 오르는 산속 길가엔 맨 먼저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복수초를 비롯해서 엘레지가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리곤 또 며칠뒤에는 더 많은 야생화들이 하루가 다르게 고개를 내밀어 화암사라는 절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것같다는 생각과 함께 전라북도 완주의 화암사(花巖寺)를 올랐다.

지난해 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영향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해지다보니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이 여행업인데 지금까지 사스나 메르스가 그랫듯이 쉬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1년을 휠씬 넘긴 지금은 5인이상 집합금지라는 어쩌구니 없는 결과에 더하여 앞으로 일년은 족히 더 기다려야만 예전과 비슷한 일상을 되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하니, 이에 전라북도 종합관광마켓팅센터(센터장 선윤숙)는 코로나블루로 지친 사람들이 소규모로 여행을 할수 있는 관광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한 팸투어를 실시,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 화암사를 찾았다.

▲어느 시인이 잘 늙은 절이라 읊은 대로 천년고찰 화암사는 사라진 단청만큼이나 위엄을 가진 채 불망산 산속에 자리잡고 있었다(사진=하성인기자)

천년 고찰을 안고 있는 불명산은 42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비가 내린 탓인지 화암사가는 길이 예사롭지가 않다. 하지만 몇년전에는 이보다 더 심한 산길을 걸어야만 오를 수 있는 곳이 였다고 하나, 더 이상 시멘트나 여타의 것들로 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가파른 계곡을 따라 올랐다.

거친 숨결이 다할 즈음 가파른 언덕길에 놓인 철제 계단을 잡고 운치있는 돌계단을 오르고 나니 여느 절간에 있을 법한 일주문 비슷한 것은 없고 대신 곧장 절간(우화루)이 보이고 그 사이로 조그만 대문이 보인다.

우화루 앞 작은 계곡 앞에서 울려다보니 그야말로 늙은 절 하나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듯한데, 오른쪽 마당에 매화가 봄비 속에 드문 드문 한 두송이 튀긴 강냉이처럼 메달려 있다.

작은 대문을 따라 들어서니 '극락전'이 묵묵히 버티고 선 채, 우화정을 마주한 채 4각형의 맞배 구조가 반기고 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하앙식 구조를 한 처마와 여의주를 문 용(龍)은 단청이라곤 찾아 볼수없을 정도로 바랜 자연색을 입은 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극락전을 천천히 둘러 보니, 공포(栱包)를 가리지 않고 한자 한자 띄어 쓴 '극', '락', '전', 현판이 새롭고, 앞 처마에는 용의 머리가, 뒷 처마에는 용의 꼬리가 조각되어 있는 모습도 생소하면서 재미있다. 여기 화엄사에만 그런걸까?

중국과 일본의 건축물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하앙식 구조는 처마 밑에 또 하나의 처마를 덧붙여 지렛대 원리를 이용 일반 절간의 처마보다 휠씬 길게 해서 빗물이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줄수 있게 한 구조이다.

이는 모든 문화가 그러했듯이 일본의 문화가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를 거쳐 지나 갔음을 증명한다고나 해야 할까? 곧장 역사 날조에 혈안이 된 일본은 한때 일본의 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얼토당토 학설을 내세웠지만, 화암사는 1425년쯤에 성달생(成達生)이 중창한 뒤 기념하여 쓴 '화암사중창비'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 걸로 보아 완주의 화암사 극락전은 일본의 그 어떤 절보다도 오래되었음을 증명하기도 하지며 우리나라엔 유일한 하앙식 구조를 한 목조 건축물로 귀중한 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1981년 해체.수리할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유재란 떄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 구조를 하고 있다.

봄비속에서 그려진 풍경이여서 그런지 잘 늙은 절 화암사의 극락전에서 바라보는 우화정, 마치 흑백사진 한장을 보는 듯이 무채색으로 그려진 창문 사이로 저 멀리 불망산의 초록잎들이 액자속의 그림들 처럼 칸칸이 와 닿는다.
그리고 언제부터 걸려 있었을까 싶은 목어도 화암사와 같이 한탓인지 단청하나 없이 우화정 한켠에 메달려 예불시간이면 어김없이 울릴것같다.

모노톤에서 풍겨오는 천년 고찰의 무게감을 뒤로 한 채 내려오는 길-화암사는 그 옛날 용이 내려와 물을 주고 키운 꽃을 먹은 공주가 살아나 왕의 명으로 지었다는 전설을 입증이나 하듯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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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애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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