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2월 21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포토샵 / 뉴서울타임즈 조현상 기자
귀한 은혜의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일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할 때 그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뿐인 인생을 살아갈 때 후회 없는 삶,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모습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이 시간도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절대긍정, 절대감사로 무장하게 하여 주시고 코로나19로 고통당하는 모든 우리 이웃들 주님께서 붙들어 주셔서 속히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시고 코로나19 퇴치를 위해서 수고하는 질병관리본부와 의료진들에게 하나님께서 긍휼함을 베풀어주시도록 우리가 기도하시고 우리 조용기 원로 목사님 건강 회복을 위해서 우리 다 함께 통성으로 한 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통성기도)
<찬송가 : 382장(통:432장)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예배드리는 모든 처소에 성령으로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염려, 근심, 걱정은 떠나가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 평안, 치료와 용서, 회복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말씀을 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 번 크게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짐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영세 소상인들은 생활고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삽니다.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계신 분들은 질병의 짐을 짊어지고 삽니다. 자녀가 계속 속을 썩이는 가장은 자녀의 짐을 짊어지고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누구도 이 무거운 짐을 대신 져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각자 각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준 것을 그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는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예수님만이 그 짐을 대신 짊어져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무거운 짐을 지었든지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첫째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외롭고 소외되고 상처 입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 슬픔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부르시고 주님의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에 대해서 마태복음 12장 20절은 설명합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주님이 되십니다. 그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 율법 교사들이 이 계명을 여러 가지로 세밀하게 시행 지침을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전통이라 하여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시행 세칙을 지키느라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그 잘못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4절입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누가복음 11장 46절입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그런데 바리새인, 율법교사들은 예수님 주위를 맴돌면서 예수님이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전통을 지키나 안 지키나 문제 삼을 거리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문제 삼았고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마가복음 3장 2절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마가복음 7장 5절입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 당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해서 지키게 한 것은 너무나 일반 사람들에게 큰 짐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에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복 거리 1km 이상을 걸어가면 그것은 죄를 짓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당시 회당이 마을 중심에 있어서 왕복 거리 1km 안에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습니다. 더 걸어가면 죄를 짓는 거니까.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무거운 종교의 짐을 진 자도 부르시고 삶의 무거운 짐을 진 자도 부르시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진 자도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통당하는 이웃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본인이 진 짐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약자들을 더 무시하고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연약한 사람들이 지고 있는 짐을 나눠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여서 수백 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희생되었을 때 완전히 안산시 전체가 장례식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든 경제가 마비되었습니다. 시장의 문을 열고 가게 문을 열고 있어도 하루 종일 한 사람도 오지 않습니다. 완전히 절망에 갇힌 도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희 교회에서 우리 어렵게 고통당하고 있는 안산의 저분들을 도와줘야 되겠다 그래서 13차례 그곳에 가서 안산 재래시장 살리기, 경제 회복하는 그러한 일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자 해서 우리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처음에는 한 번 이벤트성으로 왔다가 가는 줄 알았는데 계속 오고 또 오고 또 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의 마음이 감동되어서 한 번도 우리 교회를 소개한 적도 없고 예수 믿으라고 한 적도 없는데 많은 상인들이 참 교회에 감사한다고 그러고 어떤 분들은 우리도 교회에 나가겠다고 그러고 그렇게 예수의 사랑이 전해졌던 것을 기억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야 됩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인 것입니다. 매년 우리가 가서 돕고 있는 강화도에 있는 중증 장애인 센터 여기서는 온몸이 장애로 인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24시간 누군가가 옆에서 부축해주고 해야 움직일 수가 있고 생활할 수가 있는 분들을 우리 교회의 추신애 목사님이 가서 저들을 섬기는데 얼마나 귀한 사역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가서 은혜를 받고 옵니다.
또 강화도의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콩나물 공장이 있는데 불이 났었습니다. 완전히 전소되었는데 우리가 조금 사랑을 보탰더니만 저렇게 아름답게 다시 공장이 세워져서 지난 구정 때 콩나물을 500명분 박스를 보내왔어요. 콩나물 잔치를 했습니다. 또 코로나19로 고통당하는 대구 시민, 우리가 의료지원을 위해서 적십자사를 통해서 우리가 10억을 지원하기도 하고 미자립 교회 2,000곳을 세 차례 우리가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저들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주의 사랑으로 가서 짐을 져주고 돌봄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 이렇게 어려운 때 오히려 예수의 사랑이 온 사회로 확산되어서 비난받는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2. 쉼을 주시는 주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둘째로 우리에게 쉼을 주십니다. 쉼을 주시는 주님에 대해서 11장 28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짐을 내려놓게 하시고 마음에 평안함과 안식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입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할렐루야.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문학가 톨스토이는 55세 때 예수님을 만나 참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기독교를 인류의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종교로 오해하고 신앙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습니다. 55세 되던 해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참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그의 ‘신앙론’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55년 나의 인생 동안 최초의 15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내 나이 18세 되던 해 나의 친구가 내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고 한 말에 설득되어 나는 어릴 적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떠났다. 나는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종교는 속박 그 이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 나이 55세 나는 내가 스스로 버린 어머니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왔다. 나는 단순히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의 구주인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참된 안식을 발견한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 안에 참된 평안과 참된 안식이 있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19장(통478) :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1절)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할렐루야.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함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십니까.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까.
어느 날 우연히 TV를 보니까 음식점을 하는 분이 있는데 하루 종일 손님이 한 사람도 없어요.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하는 일이 그냥 부엌 가서 또 닦고 또 닦고 또 닦고 젊은 가장인데 집에선 아빠만 바라보고 남편만 바라보고 있는 가장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루 종일 손님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 마음의 무거운 짐을 먼저 주님 앞에 내려놓고 마음에 평안함을 얻으면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반드시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
셋째로 주님과 함께 메는 멍에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멍에는 밭을 갈 때 2마리 소가 같이 어깨에 메고 지워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한쪽이 힘이 센 경우 옆에 있는 소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결국은 힘센 소가 밭을 다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져 주시고 우리 인생의 밭을 다 갈아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을 은혜의 길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이 날마다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시편 68편 19절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할렐루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짐, 육신의 짐, 생활의 짐, 가족의 짐, 질병의 짐, 사업의 짐을 다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야훼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주님께 다 맡기면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와 함께 멍에를 매고 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주님께 맡기시면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더 이상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이 힘든 인생의 밭을 갈아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 3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멍에를 메고 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 그 다음 쉼을 얻겠다 했습니다. 멍에를 같이 멜 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에서 대인관계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모습이 바로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그 온유와 겸손으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셨습니다.
화 잘 내고 고집이 세고 잘 다투고 교만한 사람은 절대 하나님이 크게 쓰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분은 아직 멍에를 멘 분이 아닙니다. 진짜 멍에를 멨다고 하면 온유와 겸손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성격이 성경보다 강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회를 오래 다녀도 성경의 가르침보다 자기 성격대로, 자기 고집대로 산다고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격이 성경보다 강하다는 거예요. 성경이 성격보다 강해야지 어떻게 성격이 성경보다 강하다는 표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온유와 겸손을 옷 입어야 됩니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강하고 고집스럽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졌기 때문에, 온유와 겸손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부흥사와 동역자였던 R. A. 토레이 박사님이 있습니다. 이 토레이 박사님은 시카고에 있는 무디 성경학교 창립자이고 학장이셨는데 그분의 손자인 대천덕 신부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918년 그 아버님이 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의 산동성에서 사역할 때 산동성 지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중국과 평양에서 보냈습니다. 1949년 장로교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1957년 한국에 들어와서 성공회 신학교 학장으로 7년 동안 섬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한국 가서 어렵고 힘든 사람 도우라고 했는데 너 학장 자리에 그냥 만족하고 있을 것이냐. 그 말씀 듣자마자 학장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게 좋은 자리에 있다가 내려놓고 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내려놓고 한국에서 가장 오지가 어디냐 찾았더니 당시 강원도 정선 땅 하사미리라는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거기는 그 당시 들어가는 버스가 없어서 내려서 삼 일 길을 걸어 들어가야 되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그 산골짜기에 예수원을 세웁니다. 예수원을 세우고 47년 동안 가장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산골짜기에 사는 그분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제가 1977년 7월 달에 이곳에 가서 한 3주간 예수원 본원과 분원에서 영성 훈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버스가 하루에 한 번밖에 안 들어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그 예수원 부원장이셨던 조병호 목사님의 간증이 기억이 납니다. 이 조병호 목사님은 우리 불광동 천막 교회 시절의 최초의 교인 중에 목사 된 1호 목사 된 분인데 매일 새벽마다 저 산소통을 친 우리 교회 역사에 이름이 남겨져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대천덕 신부님이 세계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구호물자를 얻어오고 또 국내 전국을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고 많은 구제 물자를 얻어와서 창고에 쟁여놓으면 그것을 잘 관리하고 나눠주는 일의 심부름을 했는데 하루는 대천덕 신부님이 도시로 말씀 전하러 간 동안에 창고가 그 당시 전기가 안 들어와서 대천덕 신부님이 미국에서 자가 모터 발전기를 빌려다가 모터 발전기를 켜면 밤새 돌면서 불이 깜빡 깜빡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모터 발전기 위에다 누가 코트를 걸어 놓은 것이 그만 불이 붙어서 그 안에 창고가 싹 다 타버렸습니다. 저 멀리 산 쪽에서 불이 나니까 소방차가 오는데 이미 소방차가 오기 전에 불이 다 나서 싹 타버렸습니다.
조병호 목사님이 뭐 하나 건지지도 못하고 그냥 쌓여있던 모든 구호물자들이 다 타버려서 망연자실하고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이제 곧 대천덕 신부님이 돌아오시는데 어떡하나. 어떡하나. 돌아오실 날이 되어서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합니다.
황지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네 시간 들어오는데 들어와서 한 시간 또 걸어 올라가야 됩니다. 그래서 내려가서 신부님 오기만 기다리는데 신부님이 활짝 웃으면서 내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차마 말도 못 하고 쭈뼛쭈뼛하면서 예수원을 올라갑니다.
한창 올라가다가 저 멀리 예수원이 보여가지고 이제는 말을 안 할 수가 없어가지고, 저, 저. 쭈뼛거리다가 이렇게 신부님에게 얘기를 합니다. “신부님, 너무나 죄송합니다. 신부님이 말씀 전하러 가신 동안에 그만 창고에 불이나 구호물자가 모두 타 버렸습니다. 다 제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 일어난 일입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니까 신부님이 하하 웃고 딱 쳐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애써서 모아놓았던 구호물자들을 싹 불태워버렸는데, 조심 좀 하지 그랬냐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자식이 사고치고 돌아왔는데 그래도 할렐루야. 할 분이 몇 사람 계십니까. 이 못된 녀석,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어? 팔 걷어붙이고 두들겨 패죠. 누가 여러분 사업장에 와서 몰래 가서 사고 쳐서 사업장에 손실을 일으켰다면 이 못된 사람, 하고 그 직원을 해고시키고 난리 칠 것이 우리들의 모습인데 그래도 할렐루야. 할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이 대천덕 신부님은 정말 주님의 사랑으로 무장하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도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당해도 그래도 할렐루야. 그래도 할렐루야. 그래도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대천덕 신부님이 황지역에서 내렸을 때 얘기를 다 들으셨답니다. 다 들으셔가지고 누가 다친 사람이 없냐고 사람 안 다치고 그 구호물자만 다 탔다는 얘기를 듣고 네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올라오시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올라오셨데요. 그러니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래도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인생 살아가는 동안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무거운 짐이 많습니까. 그래도 할렐루야입니다. 너무 슬프고 괴로워도 그래도 할렐루야입니다. 말 못 할 고민으로 잠 못 자고 슬퍼서 눈물로 베갯잎을 적셔도 그래도 할렐루야입니다. 주님께 다 맡기고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주님께 맡김으로 자유함을 얻는 이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37장(통363) :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 찬송의 고백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고 한 평생 주님과 동행하며 모든 어려움 이겨나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뉴서울타임스] 조현상 기자 jyoh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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