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0월 18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 15절~17절)
이영훈 목사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예배를 못 드렸는데 오늘부터 30% 좌석에 앉아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편안함 속에서 주님을 열심히 섬기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첫사랑을 회복하는 귀한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성전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136개 기도처와 15개 지성전,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에게도 놀라운 은혜가 함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일본 순복음 동경교회를 비롯해서 일본 전역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라고 또 이 예배에 함께하는 모든 제자교회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내외분에게 하나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귀한 사명 감당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 앞에 간절히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복음성가 :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크고 넓으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주셔서 오늘 이 시간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크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 뜻과 내 고집대로 살았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알게 모르게 습관적으로,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겼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첫사랑의 감격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고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사랑하는 조용기 원로 목사님 내외분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 건강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귀한 사명 감당하시게 은혜 내려주옵소서. 주님께서 예배를 통하여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요한복음 21장 15절~17절의 말씀 가지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코로나-19 전염병 바이러스로 인해서 벌써 9개월째 우리 모두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속에 다가온 두려움, 절망, 공포가 큰 문제입니다. 이제 어떻게 사나. 어떻게 사나. 많은 소상인들이 탄식합니다.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절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절망으로 가득 차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고통 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정신적인 병이 되어서 평생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대부분의 상처, 고통, 정신적인 병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 것입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하거나 버림받은 상처가 일생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우리 구세주 예수님이 가장 믿고 신뢰했던 제자로부터 배신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지녔던 수제자 베드로가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품으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그를 무조건 품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한 가지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우리 모두에게 우리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은 위대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마음의 상처와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마음 가운데 기쁨과 평안함을 가져다줍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 사랑이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을 배반한 수제자 베드로
먼저 예수님을 배반한 수제자 베드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끌려가시자 수제자 베드로가 멀리서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때 가야바의 뜰에서 대제사장의 여종이 그를 알아보고 “당신 예수님과 같이 있던 사람이 아니냐”고 질문합니다. 마가복음 14장 66절~68절입니다.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누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의 여종이 “당신 오늘 붙잡혀온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 예수의 제자지?” 하고 물어보니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그 사람 누군지 모른다!”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랫뜰에 있다가 윗뜰로 자리를 옮겼는데 또 그 여종이 “당신은 예수의 도당이다, 예수와 한패다.” 말하니까 아니라고 또 부인하고 곁에 있는 사람이 또 물어볼 때 또다시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마가복음 14장 69절~71절은 설명합니다.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과 관계없다고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째 가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그때 닭이 웁니다.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심히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수제자입니다. 늘 그를 가까이 두시고 그를 신임하시고 그에게 많은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신임받던 베드로가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입니다.
‘참 베드로 나쁜 사람이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베드로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내게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거나 불이익이 다가오거나 피해입을 일이 다가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에게 조차까지도 등을 돌리고 배신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를 믿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내가 때때로 믿지 않는 사람과 어울려 지낼 때 피해를 입게 되고 손해 되는 일이 생겨나면 수시로 우리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주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님을 배반하며 살았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우리의 죄를 주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남은 여생 우리 주님 한 분만 위하여 살기 원하오니 내 삶을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고백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용서와 베드로의 회복
두번째로 예수님의 용서와 베드로의 회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고 그 다음 부활의 날 저녁에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주님을 위해 살아갈까 그렇게 결단하고 그가 나아갈 길을 정해야 되는 데도 불구하고 그는 옛날 고기 잡던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저 멀리 갈릴리까지 올라가서 다시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곳까지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실 때 베드로와 함께한 제자들이 밤새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의 고기도 못잡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자랐던 경험이 많은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쯤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밤에 나가 그물을 던진 것입니다. 낮에는 물이 너무 맑아서 고기들이 다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기 때문에 고기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지고 또 던져도 한 마리 고기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인생은 아무리 그물을 던져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 없는 헛되고 헛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만이 삶에 의미가 있고 예수님이 계실 때만이 삶에 기쁨이 있고 예수님이 계실 때만이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의 그물을 건지고 있는 저들을 보시고 빈 그물을 건지고 있는 저들을 보시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고기를 많이 잡았느냐.” “아닙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래서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밤새 그렇게 던져도 한 마리 고기도 잡히지 않았던 그 그물에 너무나 고기가 가득 잡혀서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고기가 가득 잡혔습니다.
그 순간 저들이 알았습니다. 아 예수님이시구나! 누가 말합니다. “예수님이시다!” 그 말을 듣자 베드로는 너무 놀라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쁘고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해서 그 자리에서 그냥 있을 수 없어서 겉옷을 두르고 물에 풍덩 몸을 던져서 헤엄쳐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밤새 수고하고 그물을 던지고 또 그물을 던져도 고기를 못 잡고 있다가 마지막에 고기를 잡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돌아올 때에 맞춰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2절~1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예수님은 실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제자를 찾아오셔서 꾸짖고 야단쳐도 부족할 터인데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침 식사까지 준비해놓고 그들을 맞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와 동료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눈물로 아침 식사를 대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우리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배반할 것을 알고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이 차려준 아침 식사를 대하면서, 눈물의 아침 식사를 대하면서 그 마음 가운데 누르고 있던 배반의 죄책감과 그 상처가 치료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 우리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상처를 치료함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요한일서 1장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주님 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하면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용서해 주옵소서.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나가서 적당히 죄와 타협하며 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손해 볼까 봐 예수 믿는 것을 감췄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거짓말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나와 우리의 죄를 회개하면 주님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사랑의 품에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이와 같은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한 우리들도 상처 입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 나를 망가지게 만든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 살아온 분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가까웠던 친구가 지금 원수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의 상처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힐 뿐인 것입니다. 모닥불 앞에서 예수님께 용서받은 베드로처럼 값없이 용서받은 우리들이 이제 이웃을 용서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3번 물으셨는데 그 내용은 이것 하나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우리 모두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15절입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다른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물으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느냐. 네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네 물질, 네 가족, 네 명예, 네 권세, 네 자신 보다도 네가 그렇게 끔찍이 아끼는 네 자신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이 물으십니다. 이 물음 앞에 네,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리고 다시 물으십니다. 요한복음 21장 16절~17절입니다.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우리 주님의 관심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 주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님의 백성을 잘 섬기라고, 사랑으로 돌보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천국 갈 때까지 믿음 생활 잘 할 수 있도록 잘 돌보아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던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수제자 베드로에게 맡기신 사명,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를 잘 돌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잘 믿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말씀에 굳건히 서서 믿음이 자라고 주님이 기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었는데도 아직도 초보적인 신앙에서 사소한 일에 늘 시험들고 원망, 불평하고 남 얘기나 하고 부정적인 얘기나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면 오늘 이 시간 잘못된 모든 것 내려놓고 돌이켜 이제는 성장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온 제자들에게,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절대 지상명령이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입니다. 승천하기 전에 주신 이 귀한 말씀 다시 한번 우리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남은 여생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구원하여 주님의 제자로 삼는 일을 나에게 주신 사명으로 알고 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불교의 스님이었다가 성령 받고 이제는 선교사가 된 이민교 선교사님의 책 『복음에 빚진 사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 원불교 법당에서 목탁을 두드리면서 원불교의 도를 전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뿌리 깊은 원불교 가정에서 태어나서 고아와 장애인들을 돌보기로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님도 원불교 교무 우리로 말하면 교역자인데, 원불교 정교라고 하는데, 여성 교무는 정교라고 부르고 남성 교역자는 또 교무라고 부르는데 이 원불교 교무였던 누님의 권면을 받아서 소록도로 가서 거기서 원불교를 포교합니다.
거기 한센병 환자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가서 열심히 부처를 믿으라고 전하는데 어느 날 법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던 그 입에서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장례식에 많이 가서 그 찬송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갑자기 찬송이 터져 나오면서 방언이 터져 나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막 뒹굴면서 통곡하고 회개하고 그날 이후 그가 원불교 스님으로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예수 믿고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때의 경험을 그는 고백하기를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목탁을 내려놓고 법당을 뒹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얼굴이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이 일은 온전히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성령님이 나를 찾아와주신 사건이었다. 어떤 말이나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체험이었다!“
원불교를 포교하던 그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이 자기를 오히려 전도하더랍니다. 예수님 믿으면 나병 환자도 회복합니다. 자기는 열심을 다해서 그들에게 부처를 전했는데 자기가 불쌍하다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주면서 예수 믿으라고 그런 거예요.
그를 위해서 기도해준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어느 날 목탁 치다가 성령의 불이 떨어져가지고 뒤집어져가지고 예수님 영접해서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지금은 카자흐스탄에서 농아를 섬기는 선교사로서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자기 스스로 예수를 믿을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원불교의 스님도 변화시켜서 이와 같은 하나님이 쓰시는 선교사로 만드셔서 그 귀한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지 아예 미리 택함 받고 이렇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님을 섬기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각자, 각자 깨달아 알아서 주님 내가 죽기까지 나의 남은 여생 충성을 다해 봉사하며 주님을 섬기며 이 귀한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많은 영혼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우리가 해야될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 찬송가 519장 찬송을 하면서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찬송가 461장(통:519) : 십자가를 질 수 있나>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 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2절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 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 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4절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고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나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살았던 저희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남은 여생 오직 주님의 영광만 위하여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뉴서울타임스] 조현상 기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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