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강원도 춘천에서 북쪽으로 20㎞쯤 달려 화천군 하남면사무소를 지나자 울퉁불퉁한 시골길이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300m쯤 가다보니 흰색 십자가가 보였다. 120가구가 모여 사는 하남리 초입에 있는 원천감리교회(양세훈 목사)였다. 1921년 설립한 교회는 주민들과 99년간 회로애락을 나눴다. 내년 100주년이 되는 교회를 지난 10일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교인이 모이지 못하는 교회의 주일 오전 풍경은 고요하기만 했다. 도착 후 느꼈던 고요함도 잠시, 이내 공구를 든 교인들이 교회 마당을 분주히 오가기 시작했다. 1980년 지은 낡은 교회를 보수하기 위해서였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담임목사와 교인들이 직접 구슬땀을 흘렸다.
언젠가부터 100주년이 되는 교회들은 기념예배당을 짓거나 교회 역사를 편찬하는 게 공식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이 교회는 보통의 공식을 따르지 않고 다른 길을 택했다.
원천교회 교인들은 우리나라에서 9164㎞ 떨어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초등학교를 세웠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짐마주 넷켐테의 자와자코마 초등학교다. 330㎡(약 100평) 교사에는 다섯 개의 교실과 교무실, 화장실 등이 마련됐다. 교회가 건축비는 물론 교육예산도 일부 지원했다. 낡고 좁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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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은 한 교인이 ‘에티오피에 학교를 짓자’고 헌금하면서 시작됐다. 필요한 예산은 1억원이었다. 다른 교인들도 십시일반 정성을 보탰다. 이렇게 마련한 돈을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 강원본부에 전달했다. 모든 걸 월드비전에만 위탁한 건 아니었다. 교인들은 2018년부터 에티오피아를 수차례 방문하며 부지 선정과 건물설계 작업 등을 직접 살폈다. 모든 교인이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정기후원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자와자코마 초등학교는 지난 1월 완공됐다. 완공식에도 13명의 교인이 참석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교인들은 지난해 여름부터 800여명의 학생에게 줄 가방도 직접 만들어 건넸다.
화천군의 여러 단체도 거들었다. 화천군은 6·25전쟁에 참전해 큰 희생을 치른 에티오피아와 오랜 세월 교류해 왔다. 자와자코마 초등학교 학생을 위해 화천군체육회는 운동용품을, 화천군자원봉사센터는 겨울 외투를 선물했다.
교인들은 에티오피아의 미래에 투자한 것에 자부심이 컸다. 교회에서 만난 최선환 권사는 “시골 작은교회에 1억원은 거액이지만 설립 100주년을 맞아 너무 뜻깊은 일을 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박창식 권사도 “교인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돕자고 뜻을 모았다”면서 “먼 나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전했다.
최 권사는 1970년대 중반 별세한 지용근 장로가 교회의 정신을 건강하게 세웠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 장로님은 ‘강원도의 예수’로 불린 분으로 농사를 지으며 결핵에 걸린 주민을 간호하고 이들이 숨지면 가족 대신 장례까지 치러준 분이었다”면서 “여전히 기억하는 주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분이 남긴 정신이 지금의 교회를 세운 기둥”이라면서 “전 교인이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한 것도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화천=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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