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2019년 4월 첫 주에 ‘바통 터치’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거룩한빛운정교회까지 분립 개척한 뒤 거룩한빛광성교회 담임목사로서 마지막 설교를 하는 날이었다. 시인 조병화는 자신의 시 ‘의자’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이 시를 마음에 품고 설교했다.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고백을 설교에 담았다. 때로는 흔들렸다. 심지가 다 된 촛불이 마지막 사그라들기까지 흔들리며 요동치듯 나도 그랬다. 하지만 검은 점 하나 남긴 채, 다 사라진 촛농을 보면 기분이 맑아지듯 그렇게 불태우고 떠나겠다 다짐했다. 그런 마음으로 교회를 떠났다.
조기 은퇴에 대한 생각은 1990년부터 했다.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한 뒤 83기 동기회장을 맡았을 때 ‘삶의 자리’라는 회지를 발행했다. 나는 당시 ‘목사의 신임 투표제 및 65세 은퇴’ ‘장로 65세 은퇴’ 등을 언급했다. 교육전도사이던 내 주장이 주목받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파격적인 주장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비슷한 시기 손병호 목사님도 이런 주장을 펼치다 부산장신대 학장에서 쫓겨나는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젊었을 때의 소신을 지켰다. 97년 일산에 개척하면서 교회 내규를 만들었고 파격적인 내용을 모두 녹여 담았다. 목사와 장로가 동시에 권한을 줄이자는 안에 대해 반대할 명분은 많지 않았다. 만약 내 권한을 그대로 두고 장로의 권한만 줄이자고 했다면 혼란만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부터 다 내려놓았다. 목회의 시작이 자기 비움이었다.
나를 죽여 교회를 세웠고 키웠다. 내가 살겠다고 고집부리면서 남을 살릴 수는 없다. 하나를 버려야 다른 걸 얻는 게 세상 이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나도 부족한 게 많고 거룩한빛광성교회와 이 교회를 통해 분립한 24개 교회 모두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뒤 보이는 문제와 부족함을 쉬지 않고 다듬고 개선하는 과정이 개혁인 것이다.
우리는 500여년 전 로마가톨릭의 부패에 항거하며 뛰쳐나온 개혁교회의 일원이다. 개혁교회는 쉬지 않고 개혁해야 한다. 개혁은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쉼 없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수백 년 전 개혁이 완성됐다고 착각하는 목사와 교인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나는 개혁의 작은 불씨를 놓았을 뿐이다. 이제 나의 빈 자리를 찾아온 후배들이 그 일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그저 후배들의 목회를 도울 뿐이다. 한국교회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상을 사는 것이다. 나를 녹여 후배들의 길을 밝히는 새 사명이 내게 주어졌다. 아사교회생(我死敎會生).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정리=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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