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아이들이 성경을 쓰고 암송해 받은 달란트가 시장에서 화폐로 쓰이면서 무너졌던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선교의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필리핀 퀘존 지역의 한 주민이 지난 5월 벤떼레알레스 파랑케시장에서 달란트로 식료품을 구입하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지난 25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김성식(45) 희망친구 기아대책(회장 유원식) 필리핀 지부장의 목소리에선 막막한 상황 속에서 발견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필리핀의 코로나19 확진자는 31만명(29일 기준)에 달한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수치다. 한때 주춤하던 확진자 수가 다시 급증하며 지난 8월엔 하루 7000여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방역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김 지부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시장과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서민들이 암흑 같은 일상을 버텨야 했다”고 말했다.
수도 마닐라에서 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퀘존 지역에서 사역하던 김 지부장은 함께 동역하는 선교사(기대봉사단)들과 지역주민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평소 교회에서 진행하던 ‘달란트 시장’을 떠올렸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교회처럼 매주 달란트를 활용해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독려해왔습니다. 예전처럼 교회에서 ‘달란트 시장’을 할 수 없게 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문득 우리나라의 전통시장 상품권처럼 지역 시장과 연계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즉시 바랑가이(한국의 동(洞)에 해당하는 필리핀의 지방자치 단위)와의 협력을 추진했죠.”
김 지부장과 선교사들은 지난 3월 지역 시장과 첫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인근 골목상점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아이들이 가족과 성경을 읽으며 받은 달란트로 시장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달란트를 모아 기아대책 아동개발사업(CDP)센터로 가져오면 페소로 바꿔주는 방식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영업을 재개한 상점들이 점점 많아졌고 몇몇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6개월여간 약 55만 페소(한화 약 1350만원)어치의 달란트가 주민들의 지역 화폐가 돼줬다. 달란트는 자연스레 복음의 지경을 넓히는 도구가 됐다.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기아대책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 긴급지원은 보건, 생계, 교육 부문에서도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지난 3월 정부 지원이 닿지 않아 지역 사회가 방역에 대응하지 못하자 마을과 가정에 방역 소독을 지원하며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전했고, 결연아동의 부모 대부분이 일자리를 잃었을 땐 쌀과 식료품이 담긴 긴급지원품을 전달했다. 등교가 중단된 상황에서 온라인 영상교육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도 CDP센터였다.
“교회를 향한 지역 주민들의 인식도 좋아졌어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이 땅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날 때 우리가 희망의 빛줄기로 여겨질 것이란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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