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언제부터인가 연말 거리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듣기 어려워졌다. 저작권 강화 탓에 카페는 물론 교회 안에서조차 캐럴 음원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 보다 못한 교계 문화사역 단체와 한국 대표 재즈 뮤지션들이 찬송가를 재즈로 편곡한 미니 앨범을 준비 중이다. 찬송가 편곡 캐럴 음원을 무상 공개해 원하는 사람 누구나 쉽고 편하게 캐럴을 감상하도록 도우려는 의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되면서 위축된 문화·예술계에서 보기 드문 프로젝트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의 예술 공간 반쥴(BANJUL)에서 한국 재즈 1세대 트럼펫 주자인 최선배(77·은평감리교회) 원로장로를 만났다. 최 장로는 강화도 출신이다. 120년 역사의 강화중앙감리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믿음 생활을 시작했다. 6·25전쟁 이후 주한미군이 주둔하며 한국에 AFKN 라디오가 송출됐고, 재즈 올드팝 라틴음악 등 이전엔 듣지 못하던 음악이 소개됐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성장한 교회 소년은 금관악기를 다루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1961년 해병대 군악대에 자원입대한다.
“해병대 사병으로는 118기, 군악대는 5기입니다. 한 부흥회에서 미국인 선교사가 불던 금관악기를 처음 접하고는 ‘천사의 나팔소리구나’라고 생각했죠. 입대 후 새벽 4시면 일어나 부대 뒤편 야산에 가서 입술이 터져 피가 날 정도로 트럼펫을 연습했습니다. 제대 후엔 가난 때문에 서독 광부 모집에 응할까 했다가 해병대 선배들 요청으로 미8군에서 ‘루비’라는 이름의 악단으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50년 넘게 트럼펫 연주를 직업으로 이어온 계기입니다.”
최 장로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80년대부터 재즈 팬덤이 두터운 일본을 오가며 즉흥 연주 중심의 프리재즈 공연을 해왔다. 오른손 손가락 골절이란 좌절을 딛고 왼손으로 다시 운지법을 익혀 트럼펫 연주를 이어왔다. 교회의 요청이 있으면 찾아가 서정적이고 단아하면서도 영성이 깃든 연주를 선보였다.
평생 술과 담배를 멀리한 최 장로는 지금도 연습실로 출근해 하루 3~4시간 연습을 한다. 심폐지구력 단련을 위해 단전호흡과 걷기 운동도 계속한다. 최 장로는 “연주는 다른 기술과 달리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제 잘되다가도 오늘 잘 안 되면 그만”이라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꾸준히 연습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달 중순 공개될 찬송가 편곡 캐럴 앨범의 제목은 ‘Jazz Hymns for Christmas’다. 영어 제목으로 정했는데, 우리말로 옮긴다면 ‘크리스마스를 위한 재즈 찬송가’란 의미다. 트럼펫 피아노 콘트라베이스가 참여하는 트리오 버전이다. 최 장로는 찬송가 123장 ‘저 들 밖에 한밤중에’와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에서 트럼펫을 연주했고, 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선 하모니카도 선보였다. 최 장로는 “저작권 문제로 캐럴을 연주할 기회 역시 줄어들어 아쉬웠던 차에 캐럴 공유라는 제안이 와서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해보자고 답했다”고 말했다.
구교진 콘트라베이시스트, 민세정 재즈 피아니스트(사진 왼쪽부터). 예장문화법인 허브 제공
이번 앨범엔 재즈피아니스트 민세정씨가 편곡에 참여했고 피아노도 직접 연주했다. 민씨는 찬송가 114장 ‘그 어린 주 예수’를 피아노 솔로로 들려준다. 찬송가 115장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콘트라베이스 위주로 편곡돼 구교진씨가 연주했다.
민씨는 “한국 재즈 1세대인 최 선생님과 40년 나이 차를 넘어 음반 작업을 하며 격의 없이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이어 “부드럽고 겸손한 모습 때문에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많아 커뮤니티가 생겨날 정도”라고 소개했다.
옆에 있던 최 장로는 “하나님께서 제게 좋은 사람을 많이 보내 주셔서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복을 주셨다”면서 “할아버지와 손자 세대가 나이를 뛰어넘어 함께 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재즈”라고 말했다.
앨범 작업에 함께한 예장문화법인 허브 관계자와 재즈 뮤지션들.
캐럴 앨범 음원 무상 공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문화법인(이사장 손신철 목사)의 기획에서 출발했다. 구체적으로는 총회 문화법인의 문화체육관광부 등록 예장문화법인 허브(사무국장 손은희 목사)의 주관으로 앨범이 제작됐다. 코로나19로 그동안 준비했던 공연이 어려워지자 재빨리 음원 공개용 앨범 제작을 떠올려 보다 많은 교회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사역을 전환한 것이다.
문화법인 박현철 목사는 “찬송가의 경우는 사후 70년 저작권이 끝났고, 원곡을 새롭게 편곡했기에 이 부분은 사용료를 내지 않지만, 찬송가 한글 제목을 이용할 경우는 별도의 사용료를 내야 해서 문화법인이 비용을 감당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들 모두와 음원을 나누고 싶다는 기획 의도에 재즈 뮤지션들도 흔쾌히 동참해 주셨다”면서 “유튜브 음원 공개와 더불어 비매품 CD도 제작해 교회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법인은 내년 사순절에도 한국교회와 공유할 수 있는 두 번째 음악 앨범을 낼 계획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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