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KTX 대전역 대합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들의 중심에는 정돈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에 허름한 옷을 입은 노숙인이 있었다. 짧지만 진심을 담은 기도가 이어졌다. 위로와 격려, 애틋한 간구의 기도였다. 거칠고 거뭇거뭇한 노숙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기도하는 청년들 옆에는 이런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저희는 행하는 믿음 청년들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식사하지 못하고 계시는 노숙인 분들께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대전역 대합실에서 만난 노숙인의 손에 자신들의 손을 얹고 함께 기도하고 있다.
‘행하는 믿음’은 구세군 한국군국 충청지방 교회의 청년 연합봉사단이다.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될 때 취약계층이 마스크가 없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데서 출범했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대전역 노숙인들에게 직접 만든 일회용 마스크와 간식을 나눠주며 기도를 해오고 있다.
대전역에서 최근 만난 청년들은 “교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란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현장에 와서야 비로소 이 말씀이 실제가 됐다”고 고백했다.
길은혜(33)씨는 “영원히 세상을 살 것처럼, 죽음을 먼 이야기로만 느끼며 살아왔다. 코로나19로 내 가족, 이웃의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믿음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예배로 대체 중이던 구세군 동대전 영문(문형기 사관)이 청년들의 취지에 공감해 교회의 공간을 내줬다. 청년들은 구세군 자선냄비 지원과 십시일반 모은 후원금으로 마스크의 원재료인 부직포 원단을 구매했다. 직장에서 퇴근한 후 교회에 모여 일회용 마스크를 제작했다. 처음 다뤄보는 재봉틀에 마스크 제작법도 몰라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마스크를 들고 대전역으로 향했다.
거리의 노숙인들에게 직접 만들어 온 주먹밥과 일회용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는 모습.
현장에서 만난 노숙인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이들은 “코로나19보다 배고픔이 더 두렵다”고 호소했다. 코로나19로 무료 급식소마저 크게 줄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청년들은 예산을 쪼개 마스크와 함께 빵과 떡, 감자, 주먹밥 등을 준비해 나눠줬다. 간혹 음식을 더 달라며 물병을 던지거나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나오는 노숙인도 있었다.
진소연(26)씨는 “상처도 됐지만, 그분들 내면에 상처와 아픔이 가시 돋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인으로 그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섰다. 넉살 좋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소통에 능숙해졌다. 노숙인들도 먼저 다가와 장난을 쳤고, 친분이 생기니 속 얘기도 털어놨다. 동정과 연민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며 교제해 나가자 신앙을 갖게 된 이들도 생겨났다.
사역이 중단될 뻔한 적도 있었다. 지난 5월 예배가 정상화된 뒤 청년들은 각자의 교회로 돌아가 맡겨진 사역을 담당해야 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많은 노숙인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몰려들었다.
박태환(31)씨는 “퇴근 후에 마스크를 만들고 간식을 준비하는 일이 때로는 힘들었지만, 거리에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서 도무지 사역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청년들은 각자 교회에서 맡겨진 사역을 마친 뒤 주일 저녁에 모여 대전역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이튿날 출근이 부담될 법한데도 불평 없이 즐겁게 봉사활동에 임한다.
문형기 사관은 “거리 사역을 통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아는 건강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기쁘다. ‘이 일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이 하신다’는 살아 있는 고백을 들으면서 내가 더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행하는 믿음’ 청년들은 겨울옷을 모으며 노숙인의 겨울나기 채비에 나섰다. 노숙인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길은혜씨는 “하나님이 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채워가실지 설렘뿐이다.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에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드러나시길 원한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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