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서울타임스] 레바논에서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패와 금융 위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참아 온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정부는 성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제안하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 등은 8일(현지시간) 5000여명의 시위대가 이날 수도 베이루트 도심의 순교자광장 등에 모여 지난 4일 베이루트항 폭발참사를 야기한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폭발 피해자들을 위해 복수하고 정의를 세워야 한다” “헤즈볼라는 테러리스트”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사퇴 아니면 교수형” “혁명의 수도 베이루트”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으며 외무부, 에너지부, 경제부, 환경부 등 정부 부처와 레바논 은행연합회 사무소를 급습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성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베이루트 시내는 전쟁터같은 모습이었다”면서 “공중에 돌과 막대기가 날아다니고 최루가스 연기가 구름처럼 깔렸다”고 전했다.
이번 폭발 참사로 운영하던 커피숍과 호텔을 잃고 한쪽 팔이 부러진 오마 제이르는 “폭발참사가 터닝포인트가 됐다”면서 “폭발 사고가 변화를 가져오기에 부족하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겠느냐”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순교자 광장에서 시위 중이던 10대 청소년은 “우리는 평화로운 시기에 정부에 (변화의) 기회를 줬다”면서 “이제 선택지에 평화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쏘면서 물리적 충돌도 발생했다. 레바논 적십자 등은 충돌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시위대 및 경찰 172명이 부상을 입어 5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다.
8일(현지시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시민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하산 디아브 총리는 시위가 과격해지자 이날 TV로 생중계된 연설을 통해 “10일 의회 선거를 조기에 치르자고 정부에 제안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디아브 총리는 구조개혁 법안들이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2개월간 한시적으로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NYT는 디아브 총리의 조기 총선 제안에 대해 “지난 4일의 폭발사고가 제기능을 상실한 레바논의 정치 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번째 신호”라고 풀이했다.
디아브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지난 1월 이슬람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의 지지를 받아 출범했다. 현재 헤즈볼라와 그 동맹이 전체 128석 중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앞서 이날 레바논의 기독교계 정당 카타이브당 소속 의원 3명을 포함해 5명의 의원들은 폭발 참사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다.
레바논 주재 미 대사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레바논 국민이 평화 시위를 할 권리를 지지하며 모든 관련자가 폭력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이들은 투명성과 책임성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 방향을 바꾸는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밝혔다.
레바논 보건부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폭발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158명, 부상자는 6000여명, 실종자는 6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9일엔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프랑스, 중국, 미국, 러시아, 이집트, 요르단, 영국 등이 화상 정상회담을 열고 폭발참사를 겪은 레바논에 대한 국제사회의 긴급 지원 방안을 논의한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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