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많은 공작원들이 수십년간 암약했어도 못했던 일을 불과 몇 년만에 이뤄낸 대학생 김영환은 북한의 ‘열사-영웅’이었다. 그는 이미 남한 전국 대학가에 열혈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했고, 북한 노동당에 가입했으며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창당 준비를 완료한 다음 김일성의 부름에 응한 터였다.
북한 공작금 40만달러를 바탕으로 민혁당을 출범시켰다. 하영옥, 이석기, 이상규, 이의엽, 정모, 박모...등과 함께였다.
△ 국가정보원은 1999년 9월 9일 민혁당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주체사상으로 똘똘 뭉친 민혁당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수사당국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존재는 1998년 12월 18일 여수 돌산도 앞바다에서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 속 문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우리 해군은 당시 수심 140미터에 침몰한 반잠수정을 인양하기 위해 심해구조대(SSU) 대원들을 동원해 ‘포화잠수’까지 시도하며 인양했다.
인양한 반잠수정 속에서는 북한 대외연락부(現225국. 간첩단 & #39;왕재산 사건& #39;도 연루) 소속 간첩이 ‘민혁당’을 지도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이때 공안당국은 반잠수정에서 찾은 전화번호 수첩 등을 추적해 사살된 간첩의 이름은 ‘진운방’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공안당국은 이후 자료 검증을 통해 ‘민혁당’ 연루자인 김영환 씨, 조유식 前 ‘말’지 기자, 하영옥 씨, 심재춘 씨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김경환 ‘말’지 기자와 달아난 박 모 변호사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했다.
이때 박 변호사와 함께 달아난 사람이 바로 이석기 의원이었다.
수사기관에 쫓긴 김영환은 중국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귀국, 국정원 조사를 받고 마침내 과거를 청산한다.
그는 국정원이 공개한 ‘전향서’에서 이렇게 썼다.
“젓가락처럼 앙상해진 팔다리를 힘없이 늘어뜨리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북한 어린이를 보면,
사소한 잘못에도 몽둥이로 사정없이 얻어맞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
사실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말조차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가닥 용기를 내어 잘못을 용서해주길 빌며 북한 동포 앞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1999.10.4)
그가 저술한 주체사상 교본 <강철서신> 때문에 인생을 망친 후배들과 국민들에게도 사과한다는 김영환은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주체사상 국가의 꿈’에는 한치의 변화도 없다고 한다.
다만 ‘남한 변혁’이 ‘북한 변혁’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북한의 주체 운운은 수령독재를 위장한 거대한 사기극입니다. 내가 구상해온 진정한 주체사상, 황장엽 선생이 못한 것을 내가 완성해보이고 싶습니다.”
‘종북 운동권의 원조’격인 김영환은 그 학자풍 외모처럼 사상가로 변신한 것인가.
“북한 민주화! 자신 있습니다. 수령세습독재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인민혁명 가능성요? 그것보다 북한에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장악, 민주화로 환골탈태시킬 핵심 세력이 중요하죠. 나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 #39;행동하는 사상가& #39; 김영환은 그래서 중국에 드나들다가 붙잡혀서 모진 전기고문까지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