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신다.(요6;37, 44).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내게 올 것이며..........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고 파고드는 것은 그 안에 영원한 생명과 우리들의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원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느님의 인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도는 바로 우리 구원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하느님께서 나를 인도하셨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보통 교회에 나아가는 것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교회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도 하느님 앞에 있습니까?
그래서 나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시몬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묻는 예수님에게 주님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하고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하였는데 그러면 언제 시몬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밭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존재입니다. 이 영혼은 순수 의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의지를 구성하여 그 의지를 말이나 글이나 여러 작품들로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정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정신들의 순수 내면에는 우리의 창조주 하느님의 성품인
순수 양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시몬을 가르치셨고 또한 우리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이끄심은 바로 이 하느님의 성품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어떤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주셨나?
예수님시대에는 사람 예수님 앞으로 인도 하였지만 보지안고 믿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말씀 앞으로 인도하시고 게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앞에는 생명의 빛인 하느님의 말씀인 예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밝고 맑고 투명하여 우리의 영혼을 벌거벗은 것처럼 투과하여 비추어 내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의지 가운데는 양심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양심도 개인적인 양심과,
사회적인 양심, 그리고 순수 양심이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양심이나 사회적인 양심은 그 개인이나 사회가 자기들의 이익과 영광을 위해서는 다른 개인이나 사회가 어느 정도 피해가 있어도 좋다는 주장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순수 양심은 하느님의 성품으로서 그 누구에게도 나 때문에 피해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어떠한 원수라도 원수라는 개념이 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성품인 사랑과 용서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수 양심인 하느님의 성품이 나를 이끄시는 그 앞에는 영원한 생명의 빛인 우리 주 예수님이 게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앞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의 순수하고 깨끗한 양심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이며 예수님은
참 빛인 말씀이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성품이 이끄시는 대로 투명한 생명의 빛 앞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누가 이끌고 있으며, 누구 앞에 있습니까? 카페 연옥영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