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22일 북한 신의주에서 15㎞ 떨어진 용천의 기차역에서 화약을 실은 열차가 폭발, 1500여명의 사상자와 8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용천시가 폐허가 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우리 정부의 능동적이고 과감한 대북지원 결정으로 우리 국민들의 사랑의 마음을 전함으로써 북한주민을 감동시킨 일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통일부 현지 책임자로서 중국 단둥에 파견되어 한 달 가까이 매일 신의주를 드나들며 중장비, 시멘트, 철근, 수지창 등 많은 물자를 북에 보내면서 북한주민들의 반응을 직접 목격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북한 인수단장으로 나왔던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J선생은 남쪽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현실에 무척 자존심 상해하며 늘 삐딱하게 생각하던 자였으나 용천 사건에서 남측의 조건 없는 사랑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봄눈 녹듯이 변하는 그의 인식체계를 보면서 필자는 대북정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느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북한은 적이면서 미래에 함께 살아야 할 동포라는 사실, 우리 국민들 모두가 잘 안다. 안보와 대화협력이란 두 명제를 어떻게 균형적으로 해석하느냐의 문제는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여서 적실성 있는 방안을 찾기가 매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균형이란 단어가 의미하듯 하나만의 극단적 대처는 옳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북한도 지금의 남북간 극단의 대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왜냐? 핵무기 보유를 통한 남한의 적화통일이 그들의 본질적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식논리로 북한의 헌법, 당규약에 핵보유국을 자신들의 목적이라 적시하면서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지속하지만 속내를 보면 기실 자신들의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몸부림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간의 북한 핵 관련 역사, 그리고 그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늘 주장하는 행간을 읽어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다. 한마디로 아이가 젖을 달라고 할 때 울부짖는 그 행태와 다름없다.
또한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우리의 뜻대로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김정은 위원장 유고 등 북한의 변고로 북 정권이 무너진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새로운 대체 권력이 탄생할 것이고, 현재와 같은 남북 상황이라면 북한의 새 정권은 남한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이다. 서독정부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일관된 대동독 지원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동독인들의 마음을 사서 동독인들 스스로 서독정부를 선택하게 했던 귀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자.
하늘이 그래도 우리 민족을 사랑해서 기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함경도 지역의 수해를 지혜롭게 선용한다면 좋은 출구전략이 될 것이라 믿는다.
용천 사건에서 보듯 조건 없는 사랑, 지원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샀던 경험을 떠올리자. 적십자사를 통해 우리 탈북민들의 고향인 함경도 지역 이재민 14만명이 겨울나기에 충분한 식량, 생필품, 의약품 및 복구장비의 지원 의사를 표명하면서 회담을 제의해 보자. 순수한 마음으로 만남에 임하다 보면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 단초를 발견할 것이다. 먼저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손을 내밀자.
선제타격 등 군사행동을 언급하는 미국과 국내 강경세력들의 주장이 자칫 북한의 비이성적이고 극단적인 도발을 유발할까 심히 걱정된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사는 삼가자.
정말 북한 지도부를 ‘통제불능의 정서 상태’를 가진 집단으로 여긴다면 더욱더 대화의 끈을 잡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