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는, 결국 미일이 중국내 한국경재기반 밀어내기였던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한중 관계를 겨냥한 것이었다.
우리 처리 문제 잘못과 한중 관계 오해 발생을 유발하는 역할자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중국의 고도의 전략 개입 문제
중국 경제 기반은 한국을 넘어서는 단계
이런 점에서 우리사회와 중국의 차이는 다르다.
모든 것의 이유에는 나라가 작고 힘이 없기 때문
글을 맺도록 하자!
지금, 보도에 따르면 중국내 한국 기업들이 이룩해 놓은 경제 기반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미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동차 배터리를 중국에 납품하던 삼성과 LG가 올 들어서 전혀 중국과 물류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그 자리를 미일이 계약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사드 한국 배치로부터 시작되었다. 솔직히 사드 배치는 한국에 꼭! 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미함대와 하와이 배경이면 충분하다. 한국에 북한 미사일을 막겠다고 굳이 배치하려고 밀어붙는 것은 하나의 구실이었다고 간주 된다.
한중 관계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우리가 이를 잘 받아서 처리를 잘 하지 못함으로 우리만 어려운 결과가 되었다.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고 간주 된다.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기본적인 부분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자리는 미일이 중국과 경제 기반들이 형성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어리석은 측면이 개입 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 할 수도 없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미일이란 우방관계에 치우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처리 문제 잘못과 한중 관계 오해 발생을 유발하는 역할자들
중국 배척과 경시하던 행보로 일관 한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인생에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방통행을 한 것이다. 결국은 속은 것이다.
만일 국가 중심의 정신을 갖춘 정상적인 나라 기반에서는 국가 실익중심의 정치행보를 하게 되어 있다. 미일의 외교와 관계를 잘 하면서도 자국 실용적인 자세로 잘 받아 넘기고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와 그 기반을 귀중히 여겨 잘 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일 관계, 더군다나 일본 비위 맞추는 행보들로 인해서 이들이 파는 함정에 끌려가기만 했던 것이다. 중국으로 하여금 옛날부터 조선인들과 관계에서 형성된 부정 된 시각이 매치되어 생각나게 했던 것이다.
무엇이 사드배치가 말이다. 우리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도 이전 중국 사람들 이미지, 즉 안 좋게 알려져 온 격언처럼 되어 있는 이미지가 있다. 살아가면서 어떤 계기로 인해서 그 이미지가 떠오르면,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전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그렀듯이 “사드 한국 배치”는 바로 중국 사회에 한국인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 사건으로 연결 된 것이다. 일본은 이 같은 아시아 국가 간의 사이에 깔려있는 오해의 소지 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금번에 미국과 함께 적용시킨 것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 안에는 이처럼 일본이 원하는 대로 중국 안에 들어와서 한중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이미지 실추시키려 행동하고, 한국 사람인데 일본 좋은 이미지 심기 등의 행보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확인이라도 했는가 이 말이다. 이러한 배경들은 지금의 한중 관계의 경제 규제가 틀어지는 현실에 한 몫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그 기반을 만들면서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하려는 노력들과 인간관리는 너무 소홀히 해 왔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금번 한국 사드배치 문제로 터진 것이다. 그 결과로 미일(美日)이 우리 한국 경제 기반을 차지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고, 한중관계는 더욱 오해가 깊어졌다. 우리 대기업들이 중국에서 사업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중국의 고도의 전략 개입 문제
중국은 우리 한국 경제 기반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약한 사회주의 기반 변혁을 꾀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아태지역의 미일은 자신들에게 경계 배경을 가동 했던 것이다.
그래서 문을 쉽게 열지 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쉬운 한국 경제와 기술, 자본주의 기반을 활용했던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책략은 중국 입장에서는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같은 의지가 결여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중국 입장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책을 갖고 정치 술을 부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과의 관계를 먼저 열었던 것이다.
중국 이전 시대의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드는 먼 친구를 잡으려면 그와 가까운 친구부터 잡으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중국의 문화는 모든 것에 뜻이 깊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말은 무슨 의미냐 하면, 우리말은 모든 사물과 의의를 걸림이 없을 정도로 다 표현해 낼 수 있는, 그래서 소리글자라 하지 않는가?
모든 사물을 표현이 가능하게 하는 소리글자이다. 이런 점에서 탁월하고 매우 뛰어난 과학적 언어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그런 반면 깊은 뜻이 없다. 게다가 너무 쉬운 것이다.
즉, 사물의 깊이, 인간의 심안의 세계를 끄집어내는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중국어는 다르다. 이는 언어와 그 언어가 담고 있는 경향성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언어적 문화성은 사물의 깊이를 추구하는 경향성이다.
본인이 중국 예찬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중국어를 공부하다보니 더욱 사고가 깊어지고, 짧은 글로 많은 의미를 쉽게 이해하고 수용 되는 사고의 폭이 깊어지다 보니 글 또한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중국의 눈은, 중국의 정치는 멀리 내다보고, 깊이 들어가고, 넓은 환경을 지향하는 성질이다. 우리를 통해서 미일의 기술과 경제 기반을 내다본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미일의 힘 아래서 미일이 원하는 대로 중국을 바라보고 대하려 한 것이다.
이러니 그 차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자국의 눈으로, 그것도 깊이를 들여다 보고자한 국가의 눈인 반면에, 우리는 다른 힘에 막히고, 가려 지고, 조절되는 눈으로 중국과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한국과 경제 교류 이면에 깊이를 보면서 발전을 지향하는 힘으로 만들어 오지 못한 것이다. 한국과 경제 규모 30%에 육박하는 27%까지의 경제 교류와 더욱 중요한 분야까지 한국 경제 기반과 교류를 통해서 몇 십 년 동안을 해 온 것이다.
중국 경제 기반은 한국을 넘어서는 단계
이제 한국과 대등한 수준, 어떤 분야는 이미 추월을 한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는 한국을 뛰어 넘는 단계로 나아가 일본을 잡아야 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데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공간적으로 충분히 한국과 좋은 거래 관계를 통해서 미일을 낚을 수 있는 충분한 미끼를 던지는 기간을 가져 온 것이다. 즉, 한국을 통해서 미일의 마음에 믿음을 주었던 것이고, 중국과 거래에 이득을 추구 할 수 있다는 차원의 신뢰 환경을 만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일은 한중 관계가 자신들이 원하는 한반도 관계에 나름대로 계산 된 배경을 만드는 것도 필요했다. 한중이 더 이상 가까워지는 것은, 한반도에 대한 미일의 계획이 무너지거나 수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던 중국은, 자국의 경제 수준과 기술력 확대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목적 하에서 기회를 기다리고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사드가 되어 준 것 뿐이다.
금번, 3월 30일 미중(美中) 두 정상의 회담은 이런 점에서 충분히 거론이 되었을 것이고, 중국 시진핑은 중국인들의 특유의 하오! 자세로 잘 처리 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사회와 중국의 차이는 다르다.
중국은, 자국에 대한 긍지와 자국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힘이 강력하게 가동되는 오르고 있는 기반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하부 구조의 눈이다.
더군다나 나라 안의 의존적인 눈은, 일본에 맞추어진 눈이라는 사실이다. 자국 긍지와 발전에 대한 현재와 미래로 연결시킬 눈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강대국 힘을 가지고 나라 패권만 잡으면 되는 눈이다.
이것이 금번 대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현대 우리 국민들 중에는 매우 보편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것이 자국의 중심을 하는 보편적인 눈이 아니라 자국을 초월하는 세계화적인 보편성이다.
다른 말로는, 전혀 자기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 된 유형이고, 이들은 바로 나라가 이렇게 강대국들에게 유린을 당해도 아무런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우리사회에서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그 강국들의 배경과 손과 다리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중국, 미일의 관계들이 이런 결과로 나타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