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정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민주적이라 호도하는 건 역사인식이 모지라기 때문이다.
일찌기 턱개는 공화정은 귀족정치로 규정짓고 민주주의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치부해 왔다.
공화정이 최초로 시작되는 싯점이 기원전 841년 서주의 여왕厲王 姬胡 시대다.
여왕이 탐욕스럽고 잔인무도하며 대신들의 간언을 뿌리치고 독재정치를 추구하면서 폭정을 일삼는가 하면
제후/왕 국인들에게 배분하였던 관리권을 회수하는 등 나라안의 이익이란 이익을 독점하자
국인들이 연합하여 여왕을 죽이려는 국인폭동을 일으킨다.
이 낌새를 알아 챈 여왕은 주 호경을 버리고 체 읍으로 도주하였는데
현자 현신인 주 정공과 소 목공 등이 조정의 정사를 대신 맡아 처리하는 이른 바 "공화제" 가 실시되었다.
나라에 천자가 없다보니 천자의 재가를 요청할 필요가 앖게되자 군대를 동원하고 무력을 행사하는 일들이 횡행하였다.
왕실의 명분을 빌려 앞다투어 오랑캐 땅을 침범하여 맹주가 되려는 야심가들이 넘쳐났으며 춘추오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왕이 없이 부재중에서 신하들에 의해 농단되는 "공화정"은 이때부터 고전적인 왕권의 품성이 훼손된다.
이로써 전제봉건적이란 퇴행적이고 비관적인 풍조가 시작되었던 바.....
공화정 이전과 이후의 본질적인 퐁조는 이렇게 훼손되었다.
공화정을 즐겨 애용하는 무리들에게 삼가 경각심을 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