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만리장성은 오랑캐의 야만으로부터 중화의 문명을 수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중화의 문명을 오랑캐의 야만과 구분하는 것이 바로 ‘화이론(華夷論)’이다. 장성은 중화를 지키는 데 그다지 견고한 것이 되지 못했다. 줄곧 오랑캐에게 중원을 내주었다.
조선은 중화를 흠모했다. 문명의식의 발로였다. 조선은 일본에게 침탈 당한 후에, 외교적·군사적 대책도 없이 척화론을 펴다가, 장차 중원을 차지할 청나라에게 항복했다. 치욕이었다. 현실은 비참했지만 정신승리법으로 버텼다. 중화의 주인이던 명나라가 멸망했으니, 이제 소중화였던 조선이 중화의 정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조선중화주의의 근본적 문제는 외부에서 권위를 찾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화이론 자체, 즉 화이론적 관점이었다.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발상은 문명을 추구하는 순기능을 갖지만, 문화우월주의에 입각한 분별과 배제의 역기능을 낳았다. 저쪽에도 문명이 있을 수 있고, 이쪽에도 야만이 있을 수 있을 터인데, 저쪽은 모두 야만이고, 이쪽은 모두 문명이란 생각. 이처럼 야만스런 생각이 또 있겠는가. 그것은 밖으로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자행하거나 안으로 구분의 논리를 억압의 기제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의산문답〉에서 아예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부정했다. 화이일야론(華夷一也論)이다.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요, 주나라의 습속이건 오랑캐의 습속이건 다 같은 자기네 습속인 것이다. 하늘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각각 제 나라 사람을 친하고 제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를 지키고 제 풍속을 편하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가 한가지다.”
화이일야론의 근저에는 인물균(人物均) 사상이 있었다. “사람[人]의 관점에서 물[物]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이 천하지만, 물의 관점에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이 천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보면 사람과 물이 다 균등한 것이다(自天而視之 人與物均也).” 사람의 관점, 물의 관점을 넘어 하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과 물이 귀천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편협한 주관을 넘어 각 주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세계관이요, 그 가운데 나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주체 인식법이었다.
□ 글쓴이 : 김 태 희 (다산연구소 소장) 중국 만리장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