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한국의 현대사에서 이 날은 냉전의 최전선인 한반도의 일촉즉발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던 8.18 도끼 만행 사건이 있었던 날입니다. 그런데 그 냉전의 그림자를 깨려고 했던 한 거인이 세상을 떠난 날과도 겹칩니다.
김대중 토마스 모어. 이 분을 떠올릴 때는 많은 이미지들과 사건들이 떠오릅니다. 저에겐 그 분의 취임식이 가장 강하게 떠오릅니다. 실제로 이 분을 뵌 것은 1998년, 제가 오리건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와 그 전 이분이 야권 지도자였을 때 1990년 JPIC 세계 대회 때였습니다. 그때는 먼 발치에서 봤지만, 오리건 방문 때는 이 분과 직접 이야길 나누고 취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인상은 꽤 따뜻한 분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당시 제가 일하던 신문사의 사장님과 김대중 선생의 개인적 친분 관계때문이었기도 했지만.
이 분이 세상을 떠난 지 7년. 저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아니, 조선 시대 이후로 이뤄진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이 사람의 거대한 족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가 많습니다. 특히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한반도가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촉발되고 있는 이 국제적인 긴장상태 속에서, 만일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다면 이걸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습니다.
냉전을 살아내면서도 평화를 갈구했고, 최초의 남북 정상 대화를 이뤄냈고,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햇볕정책이라는 과감한 대북 지원 정책을 펼쳤고, IMF의 족쇄를 풀어낸 거인. 그리고 그의 업적에 비해 너무나 많은 비난을 받는 사람. 비주류 출신의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 그리고 한국의 평화통일에 대해 늘 생각해 온 철학있는 지도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고, 죽음의 벼랑에까지 몰렸지만 살아나온 사람. 늘 집안에 갇혀 있었던 사람.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사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나서서 구한 사람.
시대가 지금 이렇게 수상할 때, 그의 이름이 능력 없고 의지 없는 야당의 정치가들에게 팔리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편 그것은 얼마나 그가 위대한 인물이었는가를 반증하기도 합니다. 이명박근혜 시절 8년을 살아 온 많은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과연 김대중 집권기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떠냐고. 철학과 비전이 없는 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국가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를 지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의 세례명인 토마스 모어의 생애 역시 많은 면에서 김대중이란 인물과 겹칩니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었던 토마스 모어가 반역죄로 처형됐던 것처럼, 김대중 역시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고, 토마스 모어가 정치가들의 성인으로 시성된 것처럼 그의 이름은 한국 정치에 지워질 수 없는 족적으로 남았습니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때, 그리고 정권이 미국의 뜻에 무조건 부합해 국제 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중심없이 외교가 떠돌고 있는 지금 상태를 보면서, 그리고 세월호 문제 등에서 보듯 국가가 나서서 국민을 분열시켜 자기들의 위기를 국민들에게 떠넘기려 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저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어른을 너무 빨리 잃었는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분이 지금까지 살아만 계셨더라면, 지금의 한국 정치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야당이 저렇게 죽을 쑤고 있을까요? 벽에 낙서라도 하고 욕이라도 하라며 우리를 꾸짖고 등을 떠밀었던 그 분이 느꼈던 것,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겠지요.
큰 어른의 부재를 이렇게 느끼는 날입니다. 시민의 생각들과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꿈꾸며 이를 세상에 만들려 했던 이. 민족의 아픔인 분단을 극복하고자 애썼던 사람. 오늘 저는 김대중 토마스 모어를 기억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 그 분을 오롯이 추모하고 싶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