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것을 잠식하고 대체할 새로운 세계종교와 문명이 필요하다면
어떤 민족에서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민족을 넘어서는 것
공짜로 되는 것은 없고
한민족이 모든 인류를 위해 새로운 세계종교 문명을 위해 희생과 댓가 감수해야
댓가없이 희생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시대에 낡은 착오적인 것을 새로운 것으로
인간의 삶과 행동 생각 그 원리와 법칙 옳고 그른것 좋은 것과 나쁜 것 이득되는 것과 손해되는 것 바람직한 미래상
범죄와 테러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과 타협도 없고 그저 무지막지한 진압과 징벌만이 가해질 뿐이라는 불변의 철칙이 범죄자들에 대한 교훈으로써 그들의 범죄를 그나마 억제하고 제압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고 더욱이 장애를 악용하는 잔인하고 교활한 범죄에 대해서는 어떠한 용서도 없이
끝장을 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기 마련이지만 나로서는 이승너머 저 멀리 안드로메다의 가닿을 수 없는 저승객같은 그런 얼토당토 않은 애딸린 닳고 닳은 년들이 그들의 사악한 욕망으로 나름대로 힘이 있는 금력과 학력 권력으로 나를 더럽히고 죽임으로써 그들의 범죄적 탐욕을 위해서 모두를 죽이고 전세계인류를 위한 지구문명에 필요한 순결하고 깨끗한 처녀들을 없애고 분탕질 침으로써 그런여자들이 선택되고 중심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런 섹스녀들이 섹스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침해된다고 나를 강간 두뇌수술 살인고문공작 나를 죽이고 타격을 가해 망친데서 시대에 맞는 지구문명이 좌절되고 죽은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힘을 합쳐 만들어 가야 할
그것이 비록 기존의 해묵은 잘못된 관념과 청산해야 할 악습을 바로 잡아 인류공동체가 속박당했던 억압된 굴레에서 놓여나는 인류가 바라는 미래를 개척하는 소극적인 개선이라고 해도 전세계 지금과 앞으로의 지구미래세대의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삶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떠한 희생과 댓가를 거치더라도 인류를 나락에서 헤매게 하는 잘못된 사상 종교 제도 관념 악습 행동양식의 인류를 옭아매고 빠뜨리는 인류역사의 구렁텅이에서 탈출하고 놓여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비록 그들은 선한 것으로 오랜 세월의 습성으로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조차 논할 수 없는 절대적 신념체계로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그들의 생활을 좌우한다고 해도 그것이 거짓과 허위 야만과 무지몽매에 기한 미개인들의 허위일 뿐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고 굳어진 오랜 세월의 인간사회의 습관이라고 해도 마땅히 인류미래를 위해 바로잡고 고쳐나가야 할 모든 인류의 지상과제이고 모든 인류에게 내려진 지상명령인 것이다
전세계 인류의 세계종교와 문명이 시대에 맞는 적합한 것으로 바뀌어 인류의 삶과 생활이 앞으로 영원히 변화되어 나아질 수 있다면
전세계의 반대자 적대자 살인자들의 책임과 희생은 당연하고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언젠가는 이룩해야 할 전세계 인류의 긴요하고 필요한 과제해결을 위한 앞으로도 영원할 전세계의 직간접으로 관련된 미래세대를 위한 장애물의 제거이며 전세계 인류는 그럴수 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
불법과 불의는 아무리 악랄하고 그 위세와 위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타협이나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관용없이 응징되어야 할 죄악에 불과하며
죄악의 기세가 가열찰 수록 그 종말의 끝을 재촉하고 앞 당겨지는 것이며
더 큰 파열음을 내며 끝내는 붕괴되고 잦아들 허상과도 같은
그러니 괜한 헛수고는 그만두고 얼토당토 하지 않은 뻘짓은 그만 두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지구문명 한단의 적들의 한단에 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나로 인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타격을 염려하는 방어적 역공이건 그들이 공격무기 살상무기로 삼는 살인녀 자객녀들은 그저 나를 죽이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건 아니면 적대관계에 있어서의 공격의 일환이든 그들은 그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의 일에 상관없이 무관심한 평화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앞당기기 위해서 자주 민족 정통 민주세력의 확장 확대 강화를 위해서 국토의 고른 개발과 서울집중 완화와 대체적 개발지로서의 휴전선 부근의 경기도 북쪽이나 그 인근에 자랑스런 고구려역사를 계승하는 대학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고려대학등의 민족대학의 위상강화와 세력확대등도 필요하고 고구려표방명칭대학은 지역적 근거가 있는 북한지역에서 통일이후에 활발히 설립될것이 예상되지만 유사대학의 설립을 이유로 자신들의 위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로 설립을 반대한다해도 오히려 자주 민족 정통세력의 집단적 세력강력화와 시너지 상승효과 서울이외지역이라서 경쟁의 촉진이라기 보다는 다른 영역 지역에서의 전체적인 국토의 균등개발 자주 민족 크게 봐서 지금은 그 기반조차 확실하지 않은 한단정통세력의 세력강화라는 의미에서 경기도 지역의 개발을 위해서도 국토의 중심인 충청도 지역의 한국 Global 지구대학 고조선 준왕이 남하했다는 전라도의 조선대학의 확장대학인 대조선대학등의 설립을 통한 균형발전과 연계하여 서울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지역거점별 대표대학과 산업을 중심축으로 하는 방자형의 국토개발을 위해서도 장차 세계적 위상을 가질 대국 고구려의 화려한 부활과 북한의 개방과 통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서울시의 특별시에서의 일반시로의 위상재조정과 집중완화를 통한 다른 지역의 발전정책이 긴요하고 그에 따라 서울이외의 지역에 경기도뿐 아니라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도 서울지역에 있는 대학들 못지 않은 장차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대학들을 설립하거나 기존대학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위상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릴 필요가 있다 (경기도 고등연구원 강원도 고등연구원 전라도고등연구원 경상도고등연구원등과 같은 세계적 연구능력과 성과를 거두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기업들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지역중심명문대학 연구원 연구대학)
그 연장선상에 있는 민족의 위상을 전세계에 떨친 역사의 지평을 세계적으로 넓힌다는 의미에서 통일이후에 북한지역이나 적당한 남한지역에 한단민족계통의 원나라와 청나라를 상징하는 대원대학 세원대학 원세대학 대청대학 신청대학 청단대학 천단대학 한단세계연구원 한단인류문명원 한단인류문명연구원 한단세계문명연구원등도 민족의 위상강화와 한단세계문명화를위해 장기적으로 설립을 검토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전세계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명으로 아직 그 실체가 확립되지도 않은 한단이 새로 생기는 것도 기존의 문명들의 생성이 그러하듯 지난한 과업이지만 그리스교 이슬람 불교의 변화나 이것 이외의 새로운 다른 것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세대를 이어
진지한 문명조성의 통찰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학은 양이 많을 뿐이지 새로운 아이디어나 연구를 하는 것은 그런 생각이 떠올라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리고 나로서는 살인적인 방해상해공작의 그 파괴나 손상정도가 나름의 연구가 아니라 학습자체가 중단될 정도로 장애와 지장이 극심하고 피로현상으로 몸에 병이 걸린듯 아프고 지탱하기 힘들지만 학습은 똑같은 format의 천편일률적인 어떻게 보면 단순반복의 지난한 작업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뇌가 파괴되고 부랄에 손상이 가해져서 두렵고 걱정스럽고 어느 정도나 회복되고 복구되는 지는 알수없고 손상과 복구과정에서 능력과 기능이 하항곡선을 그리며 계속 추락하여 두뇌의 기본적 기능마저 상실되고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심장병으로 수십년간 호흡조차 곤란한 적도 있을 정도로 고통받은 심장병환자에게 고통을 극대화하고 고문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심장을 쥐어 짜는듯이 날카로운 쇠붙이로 찌르는 듯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심장통증으로 심장을 조여들게 하여 몇년간 계속되는 지옥의 고문같은 하루종일 듣고 있을 수 조차 없는 정보원들의 거센 욕설과 조롱에 시달리고 음식료품을 통한 상해공작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폭력을 넘어선 살인공작으로 전세계적인 엄청난 인명상실을 초래했던 인류사적 범죄행위로서 반드시 정보담당자와 공작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과 징벌이 가해져야 한다
서시(序詩)
윤동주 / 시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징기스칸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如獅子聲不驚(여사자성불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如風不繫於網(여풍불계어망)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如蓮花不染塵(여연화불염진)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如犀角獨步行(여서각독보행)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원시불교의 경전인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시구(詩句)
바람이 나를 부른다
서늘한 기분좋은 바람이 나의 머리위로 불어와 잠들어 있던 나를 깨워서는 한없는 저 세상 너머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땅으로 나를 이끈다
서러움과 서글픔도 없는 하늘이 내려주시는 축복과 복락만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약속된 언제나 설레이게 그렸던 우리의 고향땅으로 우리는 지금 가고 있다
어떠한 장애물도 우리를 좌절치 못하며 어떠한 방해세력도 우리를 저지하게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떠한 시련과 역경도 이겨내고 장벽을 넘어서 우리는 우리의 세상 우리가 소망하는 우리의 이상향으로 우리의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끝없이 본래 우리를 되찾을 뿐이다
그것은 다른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디 우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 버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강요당하는 삶은 이제 탈피하고 오리인줄 알았던 백조가 마침내 자신을 깨닫고는 저 끝없는 하늘을 향해 찬란하고 눈부신 날개를 펼치듯이
우리는 잠든 거인을 깨워 하늘의 제왕 세상의 주인으로 당당히 등극하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고 우리민족에게 내리신 하늘의 부르심이다
아무런 거리낄 것도 주저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없다
세상을 이기고 극복하는자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타를 질축배척하고 나자신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위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주어진 하늘의 부르심이고 인류역사가 우리에게 부여한 우리가 감당하고 해결해야 할
앞으로도 영원할 하늘의 소명과 인류역사의 요구를 당당히 그것이 비록 쉬운일은 아니라 하더라도 사소한 어려움쯤은 이겨내고 우리를 위하고 세상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인류역사의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에겐 성공의 미래만이 영원히 펼쳐질 것이다
우리민족의 인류역사가 부여한 소명을 향하여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할 인류역사에 다시 없을 영광된 성공을 어느새 찬란한 인류역사의 금자탑으로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목적하고 뜻하는 그것이 하늘이 부여한 모든 사람을 위하는 인류역사적인 일이라면 그러한 하늘의 뜻 하늘의 부르심이 모든 것을 이끌고 이루고
그러한 부족한 능력을 채워주어 그에게 부여한 그를 통해서 펼치려고 하는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그러한 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감당하여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능력된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하늘의 필요 전세계 인류의 요구가 그러한 능력이 되어 불가능한 일조차 해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전적인 존재와 동일시 하여 어렵고 힘든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류전체가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존재를 결정짓고 평가하는 과업이 우상이 되어 절대적과업 자체의 힘이 부족한 것을 채워서 그런 하늘이 하려는 인류사업을 그 담당자로 하여금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감추어 뒀던 우리를 되찾고 바람을 가르며 하늘위로 찬란하게 날아 오를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부흥시키는 세상이 우리에게 부여한 소명인 것이다
하늘이 부여한 뜻을 거슬리는 자는 쇠하고 따르는 자는 하늘의 부름을 받고 뜻을 이루는 하늘의 영광스러운 부르심을 받은자가 되는 것이다
고구려는 가우리였다
<우리말로 풀어보는 우리역사> 그리고 <고구려는 ‘가우리’였다>
<본문목차>
1) 고구려는 가우리이다.
2) <대진국(大震國)> 는 <대신국(大神國)>으로 표기되어야 한다,
3) <三韓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卞韓)>은 <三桓의 마리桓, 신한(神桓), 부여桓으>로 표기하는것이 옳으며, 후에 제시(祭市) 육시(陸市), 해시(海市)의 기능별 삼경(三京)으로 구분되었으며, 평양(平陽 혹은 平壤)이 바로 장당경(藏唐京)이다.
4) <부여(夫餘)>는 중천에 걸린 해, 즉 <뿌연 해>할 때의 <뿌연>의 명사 <뿌여>를 의미하며, <벌판>은 <불판>에서 유래되었다.
5) <발해(渤海)>는 <밝은 해>이다 : 이두문의 묘미
6) 우리<나라>에서 <나>는 <땅>을, <라>는 <물>을 의미한다.
7) <임나(任那)>와 <지나(支那)>는 그리운 <님의 땅>과 <곁가지 땅>이라는 차이나(China)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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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최근에 이르러 한국과 중국사이에 고구려史 문제를 놓고 갈등과 시비가 증폭되고 있다. 중국 측의 입장은 장수왕이 지금의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 만주지역을 무대로 펼쳐진 고구려 역사는 자국의 영토 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집합이므로 자국사의 일부라 주장하는 반면 우리는 신라 삼국통일 이후 비록 고구려의 옛 영토인 만주를 상실하기는 하였으나 신라 백제와 더불어 삼국시기를 형성했던 고구려 및 고구려 역사는 엄연한 우리 역사의 일부라 주장한다. 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역사논쟁은 가까운 시일 내에 매듭지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이 기회에 고구려사뿐만 아니라 고구려 이전 이후에 있었던 우리나라 역사 전체와 중국역사와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다.
1) 고구려는 가우리이다.
먼저 문제가 되고 있는 ‘고구려’라는 나라이름에 관해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고 있거니와 나아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임한 왕건이 왜,나라이름을 ‘고구려’라 부르지 않고 ‘구’자를 생략한 ‘고려’라 했는지 의아해 하고 있다. 고구려의 정식명칭은 우리말로 ‘가우리’이다. ‘가우리’라는 우리 음을 그대로 살려 중국인들은 ‘가우우리’의 한문표기를 ‘高句麗’, ‘가우리’의 한문표기를 ‘高麗’라 쓴다. 즉 高(까우) 句(우) 麗(리), 高(까우) 麗(리)가 되는 것이다.
‘가우리’에서 ‘가’는 ‘한가위’, ‘한 가운데’에서 보듯 복판(中)이라는 의미이고 ‘우리’에는 세가지 뜻이 있다.
첫째, 하늘의 옛말은 ‘한울’이다. ‘한울’을 풀어 쓰면 ‘한우리’ 즉 ‘한울타리’로서 ‘천계(天界)’를 말하며 종교적 의미로 한울님이 계시는 ‘상계(上界)’를 말한다.
둘째, 말뚝을 쳐서 만든 돼지 집을 돼지우리라 하듯 ‘지계(地界)’인 지구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살아가는 ‘공동우리’이다.
셋째, 너와 나는 따로 분리되어 있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같이 합해지면 일인칭인 ‘나’와 이인칭인 ‘너’가 소멸되는 동인칭(同人稱)의 ‘우리’가 된다.
따라서 가우리는 한울의 중심 즉 천계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로 ‘천태극(天太極)’이고, 지구울타리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로서 지태극(地太極)이며, 너와 나를 합친 우리들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로서 ‘인태극(人太極)’이다. 천태극, 지태극, 인태극을 합하여 삼태극(三太極)이라 부르며, 이를 그림으로 표시하면, (한국관광공사에서 외국인들에게 나누어주는 부채나, 국악에서 사용하는 북 위에, 혹은 전통기와집의 대문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 저의 컴퓨터 실력으로는 그림으로 나타낼 수가 없어서 설명했습니다) 빨강 노랑 파랑으로 어우러진 삼태극 문양이다. 이 삼태극의 중앙에 있는 점 하나가 태극이다.
삼태극 문양은 우리민족뿐 아니라 몽고, 티뱉, 위그르족, 거란족, 만주족 등 우랄알타이계에 속하는 모든 민족들이 성물(聖物)로 받들어 사원이나 가옥, 자연석 등에 새겨져 있는 흔적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다. 그림에 나타난 삼태극(빨강, 노랑, 파랑이 어우러져 있고 그 중심에 태극점이 있는 그림) 사상은, 하늘, 땅, 사람의 삼재(三才)가 모여서 하나인 태극점으로 돌아오는 <회삼귀일(會三歸一)>사상이며, 천령(天靈), 지령(地靈), 인령(人靈)이 서로 감통하여 하나인 태극으로 수렴되는 사상이다.
<고구려>를 <가우리>라고 해석한 최초의 우리나라 사람은 단재 신채호이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가우리’를 한문으로 표시하면, ‘중국(中國)’이 되므로, 우리가 중국이고 저네들의 명칭은 ‘지나(支那)’라 불러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는 가우리의 뒤를 이어 일어난 ‘발해’는 그 뜻이 ‘태양이 뜨는 본고장’이라는 말이며, 이를 한문으로 표시하자면 곧 ‘일본(日本)’이 된다고 말하면서, 못난 우리 후손들의 잘못으로 <중국>과 <일본>이라는 나라이름을 다른 민족에게 다 빼앗기고, 우리는 반도에 쭈그리고 앉아 소중화(小中華)로 만족하는 정치적 앉은뱅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자탄했다.
2) <대진국(大震國)> 는 <대신국(大神國)>으로 표기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가우리>에 이어 발해(渤海)를 살펴보자.
<발해(渤海)>는 나라이름을 세 번이나 바꾸었는데, 초대 진국열황제(震國烈皇帝) 대걸걸중상(大乞乞仲象) 시절에는 <후가우리>라 했고, 2대 성무고황제(聖武高皇帝) 대조영(大祚榮) 시절에는 <대진국(大震國)>이라 불렀으며, 3대 대무예황제 (大武藝皇帝) 때 이르러 대장 장문휴(長文休)가 오늘의 산동성을 정벌하고 동서 육천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나라이름을 <발해(渤海)>로 바꾸었다.
후가우리 → 대진국(大震國) → 발해(渤海)
<대진국(大震國)>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큰 벼락나라’라는 뜻이고, 이병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진단학회(震檀學會)”란 뜻도 ‘벼락이 단 위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낳은 어린아이 이름도 ‘큰 벼락’이라고 짓지 않을텐데, 하물며 나라이름을 <큰 벼락>이라 지을 정신병자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진짜 나라이름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한웅(桓雄)의 신시개천(神市開天)이래로 우리민족은 조물주인 한인(桓因) 하느님을 신앙했는데, 부여에서는 이를 <대천교(大天敎)>, 가우리에서는 <경천교(擎天敎)>,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 백제에서는 <효천교(孝天敎)>, 발해에서는 <대신교(大神敎)>, 요, 금, 청에서는 <주신교(主神敎)>라 불렀다.
나라에 따라 명칭은 각기 다르나, 내용은 한결같이 창조주이며, 주재자인 하느님을(두 글자로 줄여서 한님이라고도 한다) 믿고 받드는 동일 종교였다. 따라서 <震, 辰, 眞>은 현재 우리발음으로는 <진>이라 읽지만, 그 옛날 우리조상들이나 지나사람들은 <신>으로 읽었다. 따라서 <대진국(大震國)>은 <대신국(大神國)>이고, <대신(大神)>은 우리말로 ‘하나의 신’ 즉 하느님이므로, 대신국(大神國)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래의 辰과 震은 神으로 바꾸어 표기해야 옳을 것이다 :
震檀學會 = 神壇學會
(진한)辰韓 = (신한)神桓 震域留記 = 神域留記
(삼경의 祭市에 해당) 摩震 = 머리神 (ex : 강화도 마니산)
3) <三韓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卞韓)>은 <三桓의 마리桓, 신한(神桓), 부여桓>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으며, 후에 제시(祭市) 육시(陸市), 해시(海市)의 기능별 삼경(三京)으로 구분되었으며, 평양(平陽 혹은 平壤)이 바로 장당경(藏唐京) 이다.
또한 마한(馬韓)도 머리桓 혹은 마리桓으로 육시(陸市 : 땅 시장)를 다스리는 임금의 명칭이며, 변한(卞韓)은 불桓,, 부루(또는 부르)桓 혹은 부여桓으로 해시(海市 : 물 시장)를 다스리는 임금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삼한은 <三韓>이 아닌 <三桓>으로써, 하늘이 주신나라 [주신(珠神) : 단군왕검께서 세우신 나라의 명칭도 단군조선(檀君朝鮮)이 아니라 단군주신(檀君珠神)이 옳바른 명칭이다], 즉 <주신(珠神)>의 첫 임금이신 단군왕검께서는 관경(管境)을 삼한(三桓)으로 나누면서, 삼한은 나라이름이 아니라, 세 임금을 가리키며, 관경을 관장하는 우두머리를 삼한이라 한다 하셨다. 이러한 삼한의 이름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卞韓)으로 우리 역사책은 기록하고 있으나,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표기로 마한은 마리한으로, 변한은 불한, 부루한 혹은 부여한으로, 진한은 신(神)한으로 불러야 한다. (…) 후에 삼한(三桓)은 중앙소도[中央蘇塗 : 제시(祭市)], 땅 시장(陸市), 물 시장(海市) 의 기능별 삼경(三京)으로 구분되어 제시(祭市)인 신한(神桓)은 단군들께서 직접 다스리셨고, 땅에서 나는 모든 물산(物産)이 모이는 집합처인 땅 시장(陸市)은 마리한(桓)이 다스리며, 물에서 나는 모든 물산이 모이는 곳은 해시(海市)로서 해시를 다스리는 임금이 부여桓이다. 따라서 삼한(三桓)은 제시(祭市), 육시(陸市), 해시(海市)의 기능별 삼경(三京)과 일치한다.
이 전통은 그 후 단군주신 나라의 민족 구성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후일 훈, 돌궐, 거란, 수신(여진), 몽골 부족들이 자기네들의 제국을 건설하게 되자 제시(祭市)를 관장하는 제천금인(祭天金人)들 가한(可汗)이라 부르며 육시(陸市)와 해시(海市)를 관장하는 우두머리를 좌현왕(左賢王), 우현왕(右賢王)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44세 구물(九勿) 단군께서 국호를 대부여로 고치고 수도를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을 때, 이때의 장당경도 장(藏)은 <장보러 간다>고 할 때의 순수 우리말이고, 당(唐)은 땅의 이두식 표기이고[그 역사적 사례로 요(堯)가 다스렸던 나라이름은 당(唐)이라 불리워졌는데 당(唐)은 정확히 말해 나라이름이 아니라, 단군 주신국의 천부소도(天符蘇塗)에 반대해 요가 임의로 차지한 <땅>의 한자표기가 <당(唐)>으로 되었을 뿐이다], 경(京)은 삼경(三京)의 하나이므로, 따라서 장당경은 땅에서 나는 모든 물산(物産)이 모이는 집합처인 시장으로 땅 시장, 즉 육시(陸市)이다. (…) 제시, 육시, 해시의 삼경은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치며, 신시와 청구, 주신 나라의 백성들이 각각 흩어져 여러 지방에 각각 다른 나라를 세우게 되자 삼경의 숫자도 수없이 많아져 갔다. 여기서 평양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장당경이 바로 평양이라는 사실이다.
평양을 한자로 平陽 혹은 平壤이라 쓰는데, 平陽은 햇빛이 골고루 쪼인다는 뜻으로 빛의 굴절현상이 생기는 절벽이나 높은 언덕이 없는 편편한 평야이고, 평양(平壤) 또한 흙이 고루고루 평평하게 있어 지형(地形)의 높고 낮음이 없는 평평한 벌판이라는 뜻이므로 평양은 땅에서 나는 모든 물산이 모이는 장당경이다.
그러므로 장당경이 한반도에 위치했었느니, 티베트에 위치했었느니, 평양이 지금의 북한 평양이니, 하북성에 있는 난하 근처의 평양이니, 산동성에 있었느니 하는 사가(史家)마다 다른 주장은 다 불필요한 논쟁거리다. 즉 육시(陸市)의 성격을 띤 모든 곳이 평양이자 장당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구의 치우 온밝누리한 시절에는 오늘날의 산동, 안휘, 강소성 일대를 말하는 회수(淮水)와 대산(岱山) 사이를 개척하여 그 후 주신나라의 백성들의 일부가 그곳에 옮겨 살았으므로 제시는 지금의 산동성 태산이 될 수 도 있고, 장당경은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이 될 수도 있으며, 해시(海市)는 산동성 청도나 하북성 천진이 될 수도 있다.
중원 대륙의 주신족(珠神族) 국가였던 은(殷)나라는 <삼경(三京)>을 <삼밝>이라고 표현하는데, 은허갑골문자의 유적지인 하남성 안양이 제시(祭市)가 될 수도 있고, 하남성 개봉이 해시가 될 수도 있으며, 하남성 낙양이 장당경이 될 수도 있다.
일붕 서경보 스님은 티베트 안에 장당경이 있어 천년 이상 지속했다고 그곳 현지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티베트는 한자로 지백특(地白特)이라 쓰며, <특별히 밝은 빛이 넘쳐 흐르는 땅>이라는 뜻이다. 한국 12개국 중 <지백특>은 구다(句茶)천국으로서 쑥과 마늘의 원산지라 했고, 탕구라 산맥의 천산과 천산남북 산맥, 흰두쿠시 산맥이 모여있어 천산(天山)인 기련산(祁連山)이나 지금의 랏사가 제시가 될 수도 있으며 장당경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평양>에 관해서도 이와 같은 이유로 지금의 전남 광주나, 요령성 조양(朝陽)이나 심양(審陽), 하북성의 열양(列陽)이나 악양(樂陽), 창려(昌黎)도 평양이며, 완달산 밑의 하얼빈도 장당경인 평양이며, 북한의 평양도 장당경이다. 우리말로 부르면, 광주는 빛고을이고, 열양은 줄빛골이며, 창려는 새벽빛이고, 악양의 발음은 요양으로 즐거운 빛, 즉 호양(好陽)이며, 심양의 발음은 센양이므로 곧 선일영휘(仙日永輝)의 仙陽이다. 또한 대련의 옛날 이름은 해성(海城)이므로 대련도 해시(海市)이며, 압록강 하류의 신의주나 단동도 해시이다.
<아리수>와 <패수>의 위치를 두고도 논란이 많은데, 오리의 옛말이 아리이므로, 아리수는 지금의 압록강도 되지만, 오리가 헤엄치며 놀던 모든 물이 다 아리수가 될 수 있어, 북쪽의 바이칼 호수로부터 남쪽의 낙동강에 이르기까지 청동오리가 노는 모든 물은 다 아리수라 말할 수 있다.
서울 한강의 옛날 이름도 아리수이며,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난 알이 떠내려온 경주 남천강의 본래 이름도 아리내이다.
패수, 패강 할 때의 패(貝)는 조개 패(貝)자를 말하는데, 패수는 물이 맑아 조개가 훤히 들여다보니는 물이나는 뜻이므로, 조개의 일종인 재첩이 많이 나오는 오늘의 섬진강도 이런 의미에서 패수라 할 수 있다.
<청천강>은 흰구름 두둥실 흘러가는 하늘의 모습이 맑은 물에 비친다는 뜻으로, 반드시 평안북도에 있는 청천강만을 가리키는 지명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사수(蛇水)는 뱀이 많이 사는 강이란 뜻이 아니라 뱀의 허리처럼 구불구불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물의 모양, 즉 수상(水象)을 나타내는 말이므로 어느 특정한 강만을 찍어 사수(蛇水)라고 보기 어렵다.
4) <부여(夫餘)>는 중천에 걸린 해, 즉 <뿌연 해>할 때의 <뿌연>의 명사 <뿌여>를 의미하며, <벌판>은 <불판>에서 유래되었다.
<부여桓>에서 <부여(夫餘)>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아침에 뜨는 해를 붉은 해, 중천의 태양을 백일(白日), 햇빛에 푸른 기운이 도는 2시 쯤의 태양을 청양(靑陽)이라 부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외양(外樣)을 평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표현방법에 “그 사람 얼굴이 뿌~옇다”, “부~연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고, 귀티가 난다”고 한다. 이는 그 사람 얼굴이 희고, 피부색깔에 윤기가 흐르고 혈색에 생기가 돈다는 뜻이며, <중천에 걸린 해>를 <뿌연 해>라고 말한다.
따라서 ‘부옇다’의 형용사가 명사로 바뀐 말이 ‘뿌여’이다. 고려시대 유행했던 <팔관회(八關會>가 <빨간 해>의 한문표기가 되는 것처럼, <뿌여>의 한문표기는 <뿌>음의 우리식 한자가 없으므로 발음이 비슷한<부>로 되어 <부여(夫餘)>가 된다.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두식 표기이다. 따라서 부여는 중천에 높이 솟아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을 발하는 태양의 중천희백(중천희白)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에 따라 <대부여>는 <크게 뿌옇다>라는 뜻인 <한뿌여>의 이두식 한문표기로서 <한부여(桓夫餘)>가 되므로 중천희백의 가장 밝고도 가장 신(神)그로운 온밝누리한의 눈부신 광명으로 만물을 제도(濟度)하여 영구(永久)토록 길이 빛나는 선일영휘(仙日永輝)의 나라가 대부여의 참된 의미이다.
아울러 <만주벌판>의 원래 이름은 <부여벌판>이다.
<벌판>은 <불판>에서 나왔는데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평선 끝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넓은 평야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고구마를 굽는 불판같이 보여 불판이 벌판으로 되었다..
서라벌(경주), 달구벌(대구), 비사벌(창녕), 한벌(대전), 사백벌(四白伐 : 시베리아)도 다 불판에서 유래된 말이며, 함부르그, 요하네스부르그, 스트라스부르 할 때의 벌그, 부르그, 부르(-burg)도 우리말의 벌건불, 벌건부르에서 유래된 말이다.
장작이 불타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연기가 나다가 일단 불이 붙으면 빨간 불이 되고, 화력이 가장 셀 때는 희고 푸른 색깔의 불꽃을 띄다가, 마지막에 다시 붉은 색을 띄게 되는데, 장작에 불이 붙어 숯이 되기까지 과정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 서산으로 지기까지의 과정과 완전히 일치한다.
가우리는 물론 부여, 발해, 백제, 신라의 모든 왕들의 명칭이 해가 떠서 지는 상태를 각각 나타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5) <발해(渤海)>는 <밝은 해>이다 : 이두문의 묘미.
그렇다면 <발해>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발해(渤海)를 한문으로 풀이하자면, 바다 발(渤), 바다 해(海)로서, 육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바다뿐이니, 바다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나라를 세울 수 있겠는가. 결국 발해는 이두문[이ː두(吏讀·吏頭)[명사] 신라 때부터,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방식, 또는 그 문자. 이도(吏道)2. 이서(吏書). 이토(吏吐). 이투(吏套). (참고)향찰(鄕札).]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이두문이란, 우리말을 그 우리말 발음에 가장 가까운 우리식 음(音)과 훈(訓 : 새김 : 3.전통적으로 어떤 한자에 붙어 있어 그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 단어. 석(釋)3. [‘하늘 천(天)’에서의 ‘하늘’ 따위.])을 딴 한문글자로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을 말한다. 가령, <죽일 놈>을 한문으로 쓰자면<竹一者>로 표기할 수 있는데, 여기서 ‘竹一’은 ‘음(音)’, 즉 ‘소리’를 딴 한문이며, ‘者’는 <놈>에 해당하는 음(音)이 없으므로 훈(訓)을 빌어 ‘놈 자(者)’자(字)를 쓴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어떤 문헌에서 <竹一者>라는 글이 있어서 직역에 의존해서 번역을 한다면, ‘대나무 하나를 든 사람’이라는 웃지 못할 번역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이두문의 이해를 바탕으로 ‘발해(渤海)’을 해석해 볼 때, ‘밝게 빛나는 해’의 줄인 말이 ‘발해’이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과부를 ‘홀로어머니’라 하지 않고 ‘홀어머니’라 부르듯이 ‘밝게 비추이는 달’을 ‘밝달’, ‘박달’, ‘밝게 빛나는 해’를 ‘밝해’, ‘발해’라 부르는 것이 우리말의 독특한 묘미인 것이다. 실제로 순 우리말인 ‘한밝메’를 한문의 새김(訓)을 따서 표기하면 ‘태백산(太白山)’이 ‘대박산(大朴山 / 大博山)’, 혹은 ‘대발산(大發山)’등으로도 불리거나 표기되어진다. 즉 朴, 博이 다 <밝다>의 한문 표기이다. (그러므로 <박혁거세(朴赫居世)>도 순 우리말로 적는다면 <온밝누리>가 될 것이다.)
6) 우리<나라>에서 <나>는 <땅>을, <라>는 <물>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나라>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달나라, 별나라, 하늘나라, 숲속나라 할 때의 <나라>는 무슨 뜻인가?
나=흙(土)이고 땅(地)이며, 라=물(水)이다. 따라서 <나라>는 ‘흙’과 ‘물’의 합성어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동, 서, 남, 북과 중앙의 <五行>을 본 따 만든 가우리의 <오부>는 연나(燕那), 순나(順那), 절나(絶那), 관나(灌那), 계루나(桂婁那)이다. 가우리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명을 성씨 대신 이름자 앞에 붙였는데, 그 단적인 예가 <연개소문>의 우리말 이름인 <연나 갓쉰동>이다.
연나(오늘의 북경지역)에서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갓 쉰 살이 되었을 때 얻은 아이라는 뜻이다.
이에 따라 만약 홍길동이 순나에서 태어났다면 <순나 길동>으로, 성춘향이 계루나에서 태어났다면 <계루나 춘향>으로 부르는 것이 가우리의 작명관습이었다.
<나>가 흙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되었고, <라>가 물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들어보자. <압록강(鴨綠江)>의 우리말 이름은 <아리라>이고, <낙동강>의 우리말 옛이름은 <가라>이다. <오리>의 옛말이 <아리>이므로 <아리라>는 <오리가 노는 물>이라는 뜻으로서 이것을 오리 압(鴨)자, 푸를 록(綠)자를 써 한자로 <압록강(鴨綠江)>으로 표기했다. 서울의 <한강> 옛 이름도 <아리수(水)>로서 <라> 대신 물 수(水)자를 대신 쓴 것이다. <가라>란 큰 물이란 뜻으로 가야도, 가락도 아닌 <가라문명>이라 불러야 정확하다. 오직 일본만이 원음 그대로를 살린 <가라(加羅)>라 표기하고 있다. 또한 정선아리랑의 발생지를 <아우리지(地)>라 부르는데 이는 <두 물이 아루러지는 땅>이란 뜻이다.
그리고 <아무르>강 역시 러시아 말이 아니라 우리말로서, 우리말에<아물거리다>할 때의 <아물>이다. 참고로 함경도 사람들은 <물> 을 <무르>로 <불>을 <부르>로 발음한다. 예를 들어 <불 좀 주시오>, <물 좀 주시오>를 <부르 좀 주세>, <무르 좀 주세>라 하듯이 <아무르>강은 <강 건너편이 아물거릴 정도로 강폭이 넓은> 강을 의미한다.
7) <임나(任那)>와 <지나(支那)>는 그리운 <님의 땅>과 <곁가지 땅>이라는 차이나(China)를 의미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임나(任那)와 지나(支那)를 해석해보자.
임나는 경남지방에 있었던 고대 일본의 식민지라고 일본학계는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가라의 김수로왕에게는 아들 8명이 있었는데, 첫째아들이 태자가 되자, 나머지 칠 형제는 지금의 구주지방으로 건너가 각각 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일곱 왕자들은 고향이 그리워 늘 북쪽 김해지방을 바라보며 <임나>라고 불렀으니, 임나란 그리운 <님의 땅>이란 뜻이다.
한웅거세발한의 신시개천 이래 우리나라에는 연대기적으로 이름을 달리하는 여러 국가가 존재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가우리 즉 꼬레아(혹은 코리아)로 알려졌듯이, 하(夏), 은(殷), 주(周), 진(秦), 한(漢), 당(唐), 송(宋), 명(明) 등 수많은 왕조가 명멸해 갔으나 대외적으로 중국은 차이나(Chine)로 알려져 왔다. 특히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그들 스스로<지나(支那, 脂那> 또는 <진단(震旦 : 치나스타나 cinasthãna : 支那人의 거주지라는 뜻)> 등 서로 다른 한자로 음역한 것을 보면, 분명 당시에는 Chung-Kuo(中國)이라는 말이 생기기 이전이며, 외국에서 널리 알려졌던 Cina 혹은 China 그리고 Thin 혹은[chi’n]을 그 이유도 모른 채, 꺼꾸로 그들 스스로 다른 어휘들로 자신들의 명칭을 음역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신라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을 번역하면서, 그들 스스로 신라를 <본토(本土)>로, 그들 스스로를 <지나(支那)> 표기한 것을 보면, 명확해진다.
<支那>라는 두 글자를 써 놓고, 그들은 <차이나> 혹은 <치나>라고 발음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시나>로 우리는 <지나>로 발음한다.
어찌 되었건 <지나(支那)>는 <곁가지 땅>이라는 뜻이며, 그들 스스로 표현했듯이 <본토>인 <본나(本那)>는 우리를 말하는 것이니, 아무리 땅 덩어리가 좁아도, 마치 바티칸이나, 그리이스 처럼, 정신적문화의 뿌리와 기원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본나>이자, 서두에서 언급한 <가우리>의 의미처럼, 즉 <하늘, 땅, 사람이 합일된 온 누리의 중심>이 되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강한 자부심은 가지되, 오만하거나 경거망동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 written by HolyWaterKim
[출처] <고구려는 ‘가우리’였다>|작성자 울지않는늑대
구당서 고려(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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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그 나라는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있으니, 곧 한(漢) 낙랑군(樂浪郡)의 옛 땅으로서 장안(長安)의 동쪽 5천 1백 리에 있다.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신라에 이르고 서북쪽은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에 이르며, 남쪽은 바다를 건너 백제(百濟)에 이르고 북쪽은 말갈(靺鞨)에 이른다. 동서가 3천 1백 리요 남북이 2천리이다. 그 관직에서 가장 높은 것을 대대로(大對盧)라 부르고 1품에 비견된다. 나라의 일을 총괄하여 주재하는데 3년에 한 차례씩 교체하는데, 만약 그 직위에 적합한 자면 연한의 제한에 거리끼지 않는다.
구당서 고려(고구려) 본문 이미지 2
교체하는 날에는 혹은 서로 공경하여 복종하지 않고, 모두 군대를 이끌고 서로를 공격하여 이기는 자가 대대로가 된다. 왕은 단지 궁문을 닫고 스스로 지킬 뿐 제어하지 않는다. 다음을 태대형(太大兄)이라고 하는데 정2품에 비견된다. 대로(對盧) 이하의 관직은 모두 12등급이다. 지방에는 60여 성에 주(州)와 현(縣)을 두었다. 큰 성에는 욕살(傉薩) 한 명을 두니 도독(都督)에 비견된다. 모든 성에는 도사(道使)를 두니 자사(刺史)에 비견된다. 그 아래에는 각기 요좌(僚佐)가 있어서 일을 나누어 관장한다. 의상과 복식은 단지 왕만이 다섯 가지의 채색을 사용하며 흰 비단으로 머리관을 만들고 흰 가죽으로 작은 허리띠를 두르는데 그 관과 띠에는 모두 금으로 장식을 한다. 관직의 지위가 높은 자는 푸른 비단으로 관을 만들고 그에 버금가는 자는 붉은 비단으로 하고는 새의 깃털 두 개를 꽂고 더불어 금, 은으로 장식을 한다. 저고리는 통소매를 하고 바지는 통이 크며, 흰 가죽으로 띠를 하고 누런 가죽으로 신발을 만든다. 백성들은 갈(褐)을 입고 고깔(弁)을 쓰며 부인들은 머리에 건괵(巾幗)을 쓴다. 바둑과 투호의 놀이를 좋아하며, 사람마다 축국(蹴鞠)에 능하다. 음식을 먹을 때는 변두(籩 豆)와 보궤(簠簋) 및 준조(罇俎)와 뇌세(罍洗) 등을 사용하니 자못 기자(箕子)의 풍습이 남아 있다. 그들이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산과 계곡에 의지하여 모두 띠 풀로 집의 지붕을 이는데 단지 절과 신의 사당 및 왕궁과 관청 등은 기와를 사용한다. 민간에는 빈곤하여 초췌한 자가 많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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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모두 긴 구덩이를 만들고 아래로 숯불을 지펴서 방을 따뜻하게 한다. 밭농사와 누에를 치는 것 등은 대략 중국과 같다. 법률은 모반이나 반역을 한 자가 있으면 곧 군중을 모아 횃불을 가지고 다투어 불사른 뒤 온몸이 모두 불에 데어 살이 문드러진 연후에 머리를 베고 가속은 모두 적몰한다. 성을 지키다가 적에게 항복을 하거나 싸움에 임해서 패하여 달아나거나 또는 살인이나 겁탈한 자는 참수하며 물건을 훔친 자는 12배로 갚게 하며, 소나 말을 죽인 자는 노비로 삼는다. 대체로 법을 시행하는데 있어 엄격하게 하기에 범하는 자가 적으며 또한 길에는 떨어져 있는 물건도 줍지 않는다. 그 풍속에 음사(淫祠)가 많으니 영성(靈星)의 신과 해의 신 그리고 가한신(可汗神)과 기자신(箕子神) 등을 섬긴다. 도읍 동쪽에 신수(神隧)라고 하는 큰 동굴이 있는데 10월이면 언제나 왕이 몸소 제사를 지낸다. 습속에 서적을 좋아하여, 문지기·말먹이꾼의 집에 이르기까지 각기 큰 거리에 커다란 집을 짓고 이를 국당(扄堂)이라 부른다. 자제들이 혼인하기 전까지 밤낮으로 여기에서 글을 읽고 활을 익히게 한다. 서책으로 오경(五經)과 사기(史記) 한서(漢書),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손성(孫盛)의 진춘추(晉春秋) 옥편(玉篇) 자통(字統) 자림(字林)등이 있으며 또한 문선(文選)이 있는데 이것을 매우 좋아하여 중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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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고건무(高建武)로 바로 앞선 왕 고원(高元)의 배다른 아우이다. 무덕(武德:618-626) 2년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4년에 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고조(高祖)가 수(隋) 말기에 사졸들이 그 땅에 많이 묻힌 것을 생각하여 5년에 고건무에게 글을 내려 이르기를 “짐은 보배로운 명을 삼가 받들어 임금으로 온 세상에 임하였으니 천지인(天地人)의 신령에게 공경으로 따르며 만국을 평안히 할 것이오. 하늘 아래로 두루 사랑을 고르게 하여 어루만져 기르니 해와 달이 비치는 곳에는 모두 잘 다르셔져 편안한 것이요. 왕은 이미 요수(遼水)의 왼편을 도맡아 다스리고 대대로 번복의 땅에 거처하며 정삭(正朔)을 사모하여 받들고 멀리서 조공의 직분을 좇아왔소. 그런 까닭에 사자를 보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성을 펼치니 짐이 매우 가상하게 생각하오. 바야흐로 이제 천하가 편안하여 화락하고 세상이 잘 다스려지니 패옥과 비단이 한껏 왕래를 하고 도로는 막히는 곳이 없소. 이제 한창 화목함을 펼쳐 초빙의 호의를 영원히 도탑게 하고 각자의 강역을 보존하니 어찌 훌륭하고 아름답지 않겠소? 단지 수나라 말년에 군사가 이어지고 환난이 얽어지니 전투로 공방을 치르던 곳에는 각자 자신의 백성들을 잃었으며, 마침내 골육들이 어그러져 멀어지고 가족들이 나뉘어 갈라지게 되었소. 해가 많이 지났다지만 홀아비와 홀어미들은 가슴에 맺힌 한을 풀지 못하였소. 이제 두 나라가 평화롭게 왕래하여 간격이나 차이를 둘 이유가 없기에, 이곳에 있는 모든 고려인 등은 이미 영을 내려 찾아 모아 놓았기에 얼마지 않아 곧 보낼 것이니, 그곳에 있는 이 나라의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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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놓아 돌려보내 줌으로써 어루만져 기르는 방안을 힘써 다해 인의로써 용서해 주는 도리를 함께 널리 펴야 할 것이오.”하였다. 그리하여 고건무는 중화 사람들을 모두 수색하여 모으고 예의로 인도하여 보내니 속속 이르는 자가 1만의 숫자가 되므로 고조가 크게 기뻐하였다. 7년에 전형부상서(前刑部尙書) 심숙안(沈淑安)을 파견하여 가서 고건무를 상주국 요동군왕 고려왕으로 책봉하고, 아울러 천존상(天尊像)과 도사(道士)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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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늘어선 별들에 대한 태양과도 같으니 존귀함을 낮추실 이유가 없으며, 머리를 숙이는 것은 번신의 강역과 같아짐을 말하는 것입니다.”하니 고조가 이에 그만 두었다. 9년에 신라와 백제가 사신을 보내 고건무를 송사하여 이르기를 길을 막아서 조정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서로 더불어 틈이 있으면 누차 서로를 침략하였다. 조서를 내려 원외산기시랑 주자사(朱子奢)가 가서 그들을 화해시켰다. 건무가 표를 올리고 사죄하며 신라와 더불어 사신을 마주하고 회맹(會盟)할 것을 청하였다. 정관(貞觀) 2년(628)에 돌궐의 힐리가한(頡利可汗)을 격파하니 고건무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고 하례하였으며 아울러 피봉받은 강역의 지도를 올렸다. 5년에 조서를 내려 광주도독부사마 장손사(長孫師)를 파견하여 가서 수나라 때 전사한 군사들의 해골을 거두어 매장하고 고려가 세운 경관(京觀)을 허물었다. 건무는 그 나라가 정벌당할까 두려워하여 이에 장성을 쌓으니 동북의 부여성(夫餘城)으로부터 서남의 바다에 이르니 1천여 리가 되었다. 14년에 그들의 태자 환권(桓權)을 들여보내 예방하고 아울러 토산물을 바치니 태종이 후하게 대접하고 노고를 위로함에 있어 매우 지극하였다. 16년 서부대인 개소문(蓋蘇文)이 관직을 거머쥐고 왕을 범하려 하자 여러 대신들이 고건무와 더불어 논의하여 그를 주살하고자 하였다. 일이 누설되자 소문이 이에 부병(部兵)들을 모두 소집하여 사열을 펼친다고 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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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성의 남쪽에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 놓았다. 여러 대신들이 모두 와서 보게 되었는데 개소문이 병사들을 부려 모두 살해하지 죽은 자가 1백여 명이었다. 이어 창고를 불사르며 왕궁으로 달려 들어가 건무를 살해하고 건무의 아우인 대양(大陽)의 아들 장(藏)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스스로 자리에 올라 막리지(莫離支)가 되었는데 중국의 병부상서 겸 중서령의 관직과 같은 것이니 그로부터 나라의 정치를 마음대로 하였다. 개소문의 성씨는 천씨(泉氏)이며, 수염이 많은 얼굴에 매우 준수하고 형체가 걸출하였다. 몸에는 다섯 자루의 칼을 차고 있기에 좌우에서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하였다. 항상 그의 부하에게 땅에 부복하게 하고는 그를 밟고 말에 오르며, 말에서 내릴 때도 역시 그렇게 하였다. 길을 나설 때는 먼저 호위대를 풀어놓고 길을 인도하는 자가 길게 호령하여 길 가는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는데 백성들은 두려워 피하며 모두 스스로 구덩이나 골짜기로 뛰어든다. 태종이 고건무의 죽음을 듣고 그를 위하여 애도식을 거행하고 사신에게 부절을 주어 조문하게 하였다. 17년에 자리를 이은 왕인 장(藏)을 봉하여 요동군왕 고려왕으로 삼았다. 또 사농승 상리현장(相里玄奬)을 파견하여 새서를 지니고 가서 고려를 말로 타일러 신라를 공격하지 말도록 하였다. 개소문이 상리현장에게 말하기를 “고려와 신라는 원한으로 틈이 진 지 이미 오래오. 예전 수(隋)나라 왕실에서 침략해 올 때 신라가 기회를 타고 고려 5백 리의 땅을 약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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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땅과 성을 돌려주지 않으면 이번 싸움은 아마도 그칠 수 없을 것이오.”하였다. 그러자 상리현장이 이르기를 “이미 지나간 일인데 어찌 뒤쫓아 논할 것인가?”하였으나 개소문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태종이 시위하고 있던 신하를 돌아보며 이르기를 “막리지는 그의 주인을 해치고 대신들을 모두 살해하였으며 형벌을 시행하는 것이 구덩이에 파묻고 함정에 빠뜨리는 것과 같을 뿐이니 백성들은 더욱이 자칫하면 번번이 죽임을 당하기에 원한과 고통을 마음에 담아두고 길거리에서는 눈짓만 하고 있다. 무릇 군사를 출정시켜 백성을 위로하고 반역자를 문죄하여 토벌하는데는 모름지기 그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왕을 시해하고 백성을 학대한 구실을 내세우면 패퇴시키기 매우 쉬울 것이다.”하였다. 19년 명을 내려 형부상서 장량(張亮)을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總官)을 삼아 장군 상하(常何)등과 강(江), 회(淮), 영(嶺), 협(硤) 등지의 강한 병사 4만 명과 전선 5백 척을 통솔하여 내주(萊州)로부터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다. 또 특진영국공 이적(李勣)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總官)을 삼고 예부상서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을 부관으로 삼아 장군 장사귀(張士貴) 등과 보병과 기병 6만 명을 통솔하여 요동(遼東)으로 향하게 하였다. 양군이 세력을 합하게 하고, 태종은 친히 6군을 거느리고 가서 합류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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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월에 이적의 군대가 요수를 건너 나아가서 개모성(蓋牟城)을 공격하여 빼앗고 포로 2만 명을 노획하였으며 그 성에 개주(蓋州)를 설치하였다. 5월에 장량의 부장 정명진이 사비성(沙卑城)을 공격하여 빼앗고 그곳의 남녀 8천여 명을 노획하였다. 이날 이적은 요동성으로 군대를 나아가게 하였다. 태종은 요택(遼澤)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지난날 수나라 군대가 요수(遼水)를 건넜으나 그때는 하늘이 돕지 않아 종군하던 사졸들의 해골이 산야에 두루 흩어져 있으니 진실로 애석하고 탄식할 일이다. 백골을 덮어 주는 도의는 참으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니 명령으로 모두 거두어들여 매장하도록 하라.”하였다. 국내성(國內城)과 신성(新城)의 보병과 기병 4만 명이 와서 요동을 도왔으나 강하왕 도종이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되받아쳐서 크게 격파하고 1천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태종은 요수를 건넌 뒤 조서를 내려 교량을 철거하게 함으로써 사졸들의 결의를 굳게 하였다. 태종은 요동성(遼東城) 아래에 이르러 사졸들이 흙을 져서 구덩이를 메우는 것을 보았다. 태종이 그 중 제일 무거운 것을 나누어 친히 말 위에 실었다. 시종하던 관리들이 송구하여 어쩔 줄을 모르다가 다투어 흙을 지고 성 아래로 옮겼다. 이때 이적은 이미 군사를 거느리고 요동성을 공격하였다. 고려는 우리에게 포차(抛車)가 있어 3백 근의 돌을 1리 밖까지 날린다는 것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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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두려워하여, 성 위에 나무를 쌓아 전투누각을 만들어 그것으로 날아오는 돌을 막게 하였다. 이적이 포차를 벌려 놓고 돌을 쏘아 그 성을 공격하니 맞는 곳은 모두 무너졌다. 또 충차(衝車)를 밀어 그 누각에 부딪치니 기울어져 넘어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태종이 친히 갑옷 입은 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이적과 합세하여 그 성을 에워쌌다. 조금 뒤 남풍이 매우 맹렬하기에 그 서남쪽의 누각에 불을 놓을 것을 명하였다. 불길이 연이어 성중(城中)을 휩쓰니 가옥들이 모두 타버렸다. 전사들이 성에 오르니 적들이 크게 무너지고 불타 죽은 자가 1만여 명이었으며, 그들의 날랜 군사 1만여 명을 포로로 하고 그 성을 요주(遼州)로 삼았다. 처음에 태종은 정주로부터 매 수십 리마다 봉화대 하나씩 설치를 명하여 요동성까지 이어지게 하고 태자와 약조하기를 요동을 정복하면 봉화를 올릴 것이라 하였다. 이날 태종은 봉화를 올리게 하여 변방의 요새안으로 (소식을) 전했다. 군대를 백애성(白崖城)에 자리하고 공격을 명하였다. 우위대장군 이사마가 쇠뇌의 화살에 맞자, 태종이 친히 피를 빨아 주었다. 장군과 사졸들이 이를 듣고 감동하여 격려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성은 산에 의지하고 물가에 임하여 사면이 험하고 가팔랐다. 이적이 당차(撞車)로 부딪치니, 돌과 화살이 성중에서 빗발같이 쏟아졌다. 6월에 태종이 성의 서북쪽에 이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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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손벌음(孫伐音)이 몰래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며 이르기를 “신이 이미 항복을 원하였으나 그 중에 두 마음을 품은 자가 있습니다.”하므로 조서로서 기치(旗幟)를 하사하여 이르기를 “반드시 항복할 것이면 이것을 성 위에 세워라.”하였다. 손벌음이 성 위에 기치(旗幟)를 세우니 고려는 당의 군사가 성에 오른 것이라 여기고 이에 모두 항복하였다. 당초 요동이 함락될 적에 손벌음이 항복을 구걸하였다가 다시 후회하니, 태종이 그의 언행이 반복한다고 노여워하여 성 안의 사람과 물건들을 전사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허락하였다. 항복을 받기에 이르자 이적이 태종에게 “전사들이 분발하여 앞을 다투며 화살과 돌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노획물을 탐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이제 성을 거의 빼앗았는데 어찌하여 다시 그들의 항복을 허락하여 까닭 없이 장군과 사졸의 마음을 저버리십니까?”하였으니 제께서 이르기를 “장군의 말이 옳다. 그러나 병사를 풀어놓아 살육하게 하고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포로로 삼게 하는 것은 짐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장군의 휘하에 공이 있는 자는 짐이 곳간의 물건으로 상을 줄 것이고, 장군에게서 이 성 하나를 살까한다.”하였다. 마침내 항복을 받아들이니 남녀 1만 명과 병사 2천 4백 명을 노획하였다. 그 성에 암주(巖州)를 설치하였으며 손벌음을 암주자사에 제수하였다. 우리의 군대가 요수를 건너자 막리지가 가시성(加尸城)의 700명을 보내 개모성(蓋牟城)을 지키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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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이 그들을 모두 사로잡으니 그 사람들이 모두 군대를 따르며 스스로 공적을 세울 것을 청하였다. 태종이 이르기를 “그 누가 너희들의 힘을 사용하고자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너희들의 가족들은 모두 가시성(加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