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입구를 겹겹히 둘러 싼 경찰을 보면서.. 문하나 막으니 철벽이구나 생각이 든다. 이제 저런 폐쇄된 곳에서 나와 청와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할까. 조선궁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백성을 굽어 내다 보게 되어 있는 곳. 경복궁과 합쳐져서 왕궁같은 인상을 받지 않을까? 그곳에서 독재의 야심마저 탄생 되는 것이 아닌지..
조선의 입장으로 보면 오백년 왕궁의 터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사저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사저와 집무실은 지금의 용산 미군 기지를 완전 철수 시키고 그곳에 두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지금의 청와대는 순방한 대통령이나 귀빈들의 영빈관으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나머진 공원으로 조성하여 개방 하면 된다.
백악관을 보면 하얀색 건물 주변으로 온통 녹지로 조성되어 있고, 주변은 공원이다. 아무나 쉽게 백악관에는 들어가진 못하지만, 주변 공원은 자유롭게 다니면서 사저 역시 편하게 볼 수 있다. 청와대도 산자락에 기어 들어가 있지 말고 누구나 자유롭게 그 앞에서 집회하고 언론과 여론에 쉽게 노출 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되었다면.. 일각에서 주장하는 6시간 59분 59초 동안 사라졌던 웃기지도 않은 상황 마저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남북이 대치되는 현상황에서 보안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탁 틔은 곳에선 오히려 테러를 저지르기 쉽지 않다 그만큼 노출이 되니까. 또한 안전장치 역시 완벽하게 해 놓으면 된다. 보안 보다 더 우선시 되는 것은 대통령의 자리란 어떠한 위험과 위협에 처해있어도 시민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수면위로 드러나야 되는 자리다. 그것이 대통령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야심이 있는 자가 들어가면 독재자가 되고 자기 멋에 취하는 자가 들어가면 도취자가 되게끔 막혀 있는 공간처럼 여겨진다. 청와대를 옮기자.. 틔여 있는 곳으로.. 한발자국만 나와도 시민들과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소통하는 곳으로 말이다.
밑의 글은.. 청와대에 대한 기록이다. 참고하시라.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1960년 8월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명명으로 제1공화국의 대통령 관저명 ‘경무대(景武臺)’로 불려오다가, 그 해 8월 13일 제2공화국 대통령으로 윤보선(尹潽善)이 선출되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개명하였다. 이 명칭은 대리석으로 된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이궁(離宮)이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26년(세종 8)에 창건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으로 후원에 해당하는 이 지대를 경무대라 하였다.
북악산 산록에 위치하여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이 경무대는 어영(御營:조선시대, 인조반정 뒤에 조직한 군대의 하나)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으로서, 또는 친경(親耕)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울안에는 원래 융무당(隆武堂)과 경농재(慶農齋:조선 말엽 경복궁의 뒤뜰에 있던, 각 도의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못됨을 알아보던 집)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 후 1927년 일제에 의하여 헐리고, 일본인이 조선총독 관저를 건립하였다.
이곳을 제7·8·9대 조선총독이 관저로 사용하였고, 광복이 되어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지(Hodge,J.R.)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한국정부로 이관되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동시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통령 관저명으로 사용하였다. 이승만(재임 1948∼1960) 대통령은 6·25전쟁의 피난시절을 제외하고 1960년 4월까지 초대·2대·3대 대통령으로 보낸 12년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4·19혁명에 의한 하야와 함께 이화장(梨花莊)으로 옮겼다.
경무대라는 이름은 3·15대통령 부정선거 등 독재와 비정(秕政)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1960년 8월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