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는데, 어느 날 ‘인구절벽’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좁은 땅에 사람만 많아 가족계획이 필수였던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전이었는데, 이제는 인구가 너무 적어 걱정이란다. 하지만 인구절벽이 그토록 두려운 것이었다면 우리는 왜 인구가 4000만 명도 안 될 때부터 가족계획을 하자고 그 난리를 쳤던 것일까?
인구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올해 1~5월 출생아 숫자는 18만 2400명, 혼인 건수는 11만 9700건이었다. 모두 역대 최저였던 2005년의 같은 기간보다도 낮았다. 이대로라면 올해가 2005년을 넘어서는 역대 최저 출산율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혼인 건수마저 최저인 점을 감안하면 내년과 내후년 출산율은 더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과연 그렇게 무서운 일일까? 자본가 계급과 정부는 인구 5000만 명이 마지노선이라며 인구 절벽에 대한 공포를 유포한다. 하지만 우리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유산자 계급이 아니다. 우리가 노동자이고 농민이며,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평범한 시민이라면 인구절벽 문제를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인구절벽 개념의 창시자는 미국 월가의 금융자본가
인구절벽이라는 개념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Harry Dent)다. 덴트는 2014년 발간한 책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에서 처음으로 이 개념을 제시했다.
덴트에 따르면 인구절벽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여기에 의미를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인구절벽은 소비를 가장 많이 하는 40대 중후반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이기도 하다. 인구가 줄어 생산에도 영향을 미치고, 소비마저 위축돼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게 덴트의 걱정이었다. 한국 또한 덴트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생산가능인구가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속히 줄어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구절벽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시자 덴트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도 있듯이 창시자의 사회적 조건이 그 사람의 생각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덴트는 1950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해리 S 덴트 시니어(Harry Shuler Dent, Sr)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공화당 의장을 지낸 보수적 정치인이었다. 아들인 덴트는 30대 이후 HS덴트투자자문이라는 금융회사를 설립해 성공을 거뒀다. 요약하자면 덴트는 전형적인 보수 색채를 띤 미국 금융투기자본의 일원인 셈이다.
덴트가 미국 보수 금융자본 세력이라고 해서 그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덴트의 우려가 월가를 지배하는 보수적 금융투기자본의 우려, 즉 “인구의 부족으로 세계 경제가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여담으로 덴트에 대한 사소한 험담을 좀 늘어놓자면, 그는 단기 예측 분야에서 쉴 새 없이 틀리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덴트는 2006년 《The Next Great Bubble Boom》이라는 책에서 미국 다우지수가 2008년 말까지 4만 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미국 증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7,000선까지 고꾸라졌다.
이후 덴트는 입장을 바꿔 2009년 《The Great Depression Ahead》라는 책에서 “대공황이 올 것이며 다우지수는 3,900선까지 추락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다우지수는 회복세를 보여 2016년 8월 현재 2만 선 정복을 노리고 있다.
자본의 우려는 노동의 감소가 아니라 소비의 감소
다시 덴트의 인구절벽 문제로 돌아오자. 덴트는 일견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걱정하며 미래에 닥칠 노동력의 부족을 우려한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이는 자본가들의 진심 어린 걱정이 아니다. 노동력이 줄어드는 것을 자본가들이 왜 우려하겠나? 자본가에게는 비장의 무기 알파고가 있다.
실제 미래의 노동 가운데 상당수가 기계로 대체가 될 것이라는 건 이제 상식에 가깝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도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구글은 운전기사라는 직업마저 옛날의 일로 바꿔버릴 자동운전 기술을 현실화하는 마당이다.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출간한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에서 하루 세 시간 노동의 세상을 예상했다. 케인스는 “기술이 진보하면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하므로 생계를 위한 필요 노동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 테고, 마침내 거의 일할 필요가 없어지는 단계(하루 3시간 노동)에 이르게 된다”고 예측했다. 그게 언제였을까? 케인즈가 내다본 하루 3시간 노동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고작 14년 뒤인 2030년이었다.
사실 자본가들도 노동의 부족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기계화의 경험을 통해 노동력의 부족을 대체할 수단을 충분히 갖췄다. 그렇다면 그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 진다. 그들은 덴트의 두 번째 우려, 즉 가장 왕성하게 소비를 해 줄 40대 소비자의 감소를 두려워한다. 자기들이 만든 물건이 1930년 미국이 겪은 대공황 때처럼 팔리지 않는 것을 걱정하는 셈이다.
소비의 감소는 부의 재분배로 해결 가능
대공황을 두 눈으로 겪었던 케인스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케인스도 기계화가 진척되면 노동자들의 일자리고 줄고 소득이 감소해 공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 문제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문제는 너무나 쉬운 과제였다.
케인스는 단언했다. “일자리 감소? 그게 왜 걱정인가? 그건 너무 쉬운 문제다. 기술이 발달해 사회적 풍요가 늘어나면, 그 풍요를 잘 나누기만 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이기 때문이다”는 게 케인스의 견해였다.
생각해보자. 기술의 진보로 일자리가 줄어든다? 정확히 말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자체가 걱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 소비가 감소하는 것이 걱정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기술 진보로 획득한 사회적 부(富)의 총액을 사회 구성원에게 골고루 나눠주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본가 계급이 인구절벽을 고민하는 근본적 이유는 사회적 부를 골고루 나눌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술의 진보로 얻는 부를 모조리 자기들의 수중에 넣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부를 전부 자기 호주머니에 몰아넣으면, 자본가가 생산하는 물건을 사 줄 사람이 사라지고 온 국민이 일자리를 잃어 거지꼴이 될 텐데!
더 많은 경쟁을 원하는 자본가
정부가 지키려는 인구의 마지노선은 대략 5000만 명 선이다. 이 정도 인구가 적정한지 아닌지는 학자들의 연구 과제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본가들은 인구가 늘어 보다 많은 노동자들이 경쟁하고,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 주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단어는 ‘승리’다. 서점에 가보면 베스트셀러 책 제목 대부분에 ‘이기는’이라는 형용사가 들어간다. 이기는 습관, 이기는 대화, 이기는 선택, 이기는 글쓰기, 이기는 직장인, 심지어 이기는 음식도 책으로 나온다. 인구가 바글바글한 상태에서 한국 사회는 민중들에게 “그저 경쟁을 통해 이기면 되잖아”라고 강요한다. 이게 바람직한 세상일까? 우리의 자녀들이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경쟁해서 승리해야 해”를 다짐하는 세상이 올바른 세상일까?
올해 한국의 인구는 5157만 명이다. 한국 경제의 골디락스(경제가 가장 좋은 때)로 불리는 1988년 인구는 4245만 명이었다. 지금의 인구는 그때보다 912만 명이나 많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인구가 2060년 4396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 정도 인구라면 1992년 수준이다. 그런데 이 인구가 정말로 부족한 숫자일까?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는 한국의 적정인구로 ‘4000만 명대 초반’을 고수한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가 살기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시절 경쟁이 지금보다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인구 4200만 명이 적정 인구라면 한국 사회는 지금처럼 연간 45만 명씩만 늘어나도 큰 문제가 없다.
경쟁이 아니라 공생, 여유 있는 삶과 적정한 분배, 이런 것들이 보장이 되면 출산율은 자연히 높아진다. 만약 이런 사회가 됐는데도 출산율이 계속 떨어진다면 그때에는 정말 진지하게 인구절벽을 고민을 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를 유지할만한 적정 인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문제의 선후를 분명히 하자. 지금은 인구절벽이 아니라 보다 경쟁 없는 사회, 보다 사람이 살만한 사회, 보다 분배가 제대로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에 처음 당선됐을 때 그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였다. 우리가 인구절벽을 고민하는 자본가 계급에게 해 줄 수 있는 진지한 충고도 이것과 비슷하다. 문제는 인구절벽이 아니다. “문제는 분배야, 이 바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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