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이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선동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과 직결 된다. 특히 대중적 선동은 더더욱 그렇다. 소수자 집회 꾼들과 이익집단들, 언론의 몰이에 의해서 주도 된다. 일어난 사안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거나 부정 부패자들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온 나라와 국민 자신들을 길들이는 과정으로 내 모는 것인 줄도 모른체 힘을 행사하는 무리들로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의도가 작용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잘못을 몰아낸다는 이유아래 나라를 어지럽히고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내모는 교활한 양면이 우리사회를 향해서 속이는 힘이라는 사실이다.
현대는 이 군중몰이가 쉬어져 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을 내 몰수 있는 정보화 시대가 뒤 받침되고, 이 같은 문화적 배경은 여론 전달 매체를 통해서 훈련 된 대중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대중몰이가 쉬워져 있는 사회 공간을 의미한다. 더욱이 우리사회처럼 헌정사 내내 데모로 훈련 된 사회 집단은 더욱 몰이에 용이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현대는 너무 우울해 져 있고, 복잡하고 전문화 되고 다변화 된 사회에서 개인의 스트레스는 활화산처럼 어느 순간에 폭발할 수 있는 다중 인격체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는 인간성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사회이다. 게다가 우리사회처럼 문제가 쌓여가는 사회 안의 대중들은 가정, 직장, 사회 곳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구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때 마침 촛불 집회는 불특정 다수들이 거대한 인간 띠를 형성하고 소리를 지를 때, 일순간 속이 시원해지는 마약 같은 순간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쌓인 스트레스나 분풀이를 무차별적인 대중들과 연대 된 환경을 통해서 분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없이 몰아가는대로 대중에 묻혀서 분노를 발산하는 희열을 맛보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나라나 정부를 향해서 공격하는 슬로건이 귓가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 잘못 한 대통령을 잡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진행되는데 귀에 나라를 부정하는 소리가 딱지처럼 들어 않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노리는 것이 이 집회 모두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무서운 방식이다. 현대사회는 바로 문화적 침략형태가 진행되는 지구적 공간인데, 그 방식이 지극히 합법적이고 자연스런 방식 속에서 설득력 있는 이유들을 만들어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무서운 파괴력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 지금의 문제를 덮자는 것이 아니다. 본인은 나라와 사회 문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알리고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 수 천 편의 긴 장문의 글들로 표현해 오고 있다. 뜻 있는 분들은 본인의 글을 통해서 나라 중심의 힘을 갖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들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지명도 없는 공인성의 위치가 되지 못하고, 게다가 우리 나라를 집략 공략하는 그 힘의 근본들을 들추어내고 밝히는 성질의 글이기에 이를 싫어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막힌다 할지라도 나라 문제의 근본에 대해서 우리 온 국민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노력하는 역할은 멈출 수 없다.
오늘은 집회와 관련해서 말하기를 원한다. 특별히 지금 온 통 우리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촛불 집회나 태극기 집회는 모두 위험한 신호가 되고 있음에 대해서 집중 조명해 볼까 한다. 먼저 우려하는 부분은 많은 순수한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립적 성질로 작용되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져서 나타나게 될지 모르는 성질이 이미 담겨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 태동한 이래 각종 데모 집회 형태가 헌정(憲政)출발과 함께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 가지 주요한 사안은 지금에 이르러서 이 집회들은 매우 위험한 상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평화적 시위”, “국민들의 승리” “국민들이 이겼다”라고 당장은 긍정적인 평가들로 위안을 삼고 있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를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인간 세상은 좋고 나쁨이 교차 되면서 그 희비 또한 정답이 없다는 의미이다. 다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너무 슬픔에 잠겨서 절망하지 말고, 너무 좋다고 자만하여 다음을 잊어버리는 인생이 되지 말라는 교훈이 후대의 인간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이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힘들이 이와 같이 우리사회를 혼돈으로 내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와 우리 땅의 시민들이 실험의 대상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왜, 무엇때문에? 오늘 시대는 고도로 인간과 사회를 속이는 힘들이 어떤 목적 방향으로 몰아가는 힘이 주도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의 촛불, 태극기 집회는 매우 위험한 신호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점에 대해서 짚어 볼까 한다.
먼저는 태극기 집회에 관해서다.
태극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태극기는 숭고한 정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국기로써 국가를 상징하는 표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태극기를 홀대하거나 이상하게 부중요하게 하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나 왔다.
심지어 여당의 뉴라이틀이 등장하면서 공공성의 배경에서 소홀히 대하거나 지하 케비넷으로 들어가는 듯한 배경들이 연출되기도 했고,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가 중심에서 애국이란 의미 강조가 사라지면서 태극기, 무궁화 등 주요한 의미들이 퇴색되는 듯한 움직임들이 감지되었다.
심지어 종북 좌빨이란 이들을 내 세워서 공공의 행사에서 애국가가 생략 된다거나 태극기 게양을 하지 않는다거나 등, 이러한 배경들을 통해서 여론을 띄었던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들은 그 동안 나라를 주도하는 세력들이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나라 정기가 무너지도록 하는 잘못 된 환경들이 깔리는 것을 방임하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들이 강해지면 정작 행정부와 정부 여당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이유로 적극적으로 태국기 문제나 애국가, 무궁화 등, 소극적이고 방임적인, 그리고 대부분 자국의 기반이 약화 되는 정책을 구사하는 형태가 지금까지 주도 되어 왔던 것은 아니었는가? 묻고 싶은 것이다.
그랬던 자들이 태극기 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나라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혹은 다른 방향으로 몰아가는 다른 나라적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나라를 강조하지만 잘못 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라 의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어떤 자들이 나라의 힘을 잡는가? 그리고 그 힘을 가지고 나라를 운용하는 자들이 누구이며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지? 이 점에 대해서 직시하면서 정말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물들을 찾고 세우는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을 역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또 다시 반기문전유엔사무총장과 같은 유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은 우리와 생각이 다른 분이다. 철저히, 오직 세계화를 위한 실존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는 변질의 한국인들이되어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들의 의식 배경에는 전혀 한국이란 의미가 없다.
있다면 오직 한국을 버리는 탈 한국주의에 심취되어 있는 이들이다. 자국과 자국 민족을 뒤떨어지고 더떨어진 민족주의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이다.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
진정 태극기를 존중하고 나라 사랑하는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들이라면 종북 좌빨로 몰아가면서 태극기를 들지 않는다. 여전히 나라를 대립 구조로 몰아가면서 태극기를 흔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형태의 대립각을 세워가는 운동들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 안에 이미 이데올로기 시대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지구적 배경이 중심 기류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은 더욱 자국 중심의 힘들을 키우면서 한반도를 향해서 돌진해 오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정신 나간 어떤 이들이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면서 기득권을 손에 쥐려고 발악하며 나라를 말아먹으려 하고 있다.
본인도 중국에 들어와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숙사 안에 거의 일 년 동안 태극기를 게양해 놓았다. 이탈리아, 프랑스 젊은 친구들하고 생활하면서도 내 잠자리 이층침대 입구에 게양을 해 놓았다. 잠들기 전이나 잠자고 일어날 때 항상 눈앞에 먼저 들어 왔다.
어느 날 새벽에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사진까지 찍어 놓았다. 이런 마음가짐 없이 오로지 이용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국기는 그 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도 반대 할 수 없고 마음을 모을 수 있는 힘의 상징이기 때문에 오로지 이 점을 필요로 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태극기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을 뿐이다. 그 와 동시에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태극기에 대해 더욱 식상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왜? 태극기를 흔들면서 종북 좌빨이라 하며 국민 편 가르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
본인도 그럼 종북 좌빨인가? 얼마나 국민들이 식상하겠는가? 자국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바른 길을 제시하고,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고자 하여 잘못 된 부분들을 지적하고 바로 잡자는 취지로 숭고한 마음으로 국기를 사랑하고 나라 생각하는 마음을 소유한 국민들이다.
그런데 자신들과 뜻을 같이 안한다고, 잘못 된 마음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신들의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부분들이 들추어 까발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조건 종북 좌빨로 몰아가는 판을 벌리면서 한 손에 태극기를 흔들어 대니 순수한 국민들, 어느 누구라도 점점 태극기를 싫어하게 만들어 버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동의 이유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촛불 집회의 선동문제이다.
우리 현대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헌정사 내내 데모로 점철 된 나라가 아닌가? 지구상 그 어디에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본인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서 누차에 거쳐서 지적하고 설명하고자 해 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처음부터 우리의 주도로 안 되어 왔다는데서 부터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즉, 길들여져 온 민주주의이다. 이와 동시에 이웃에 지구상에서 가장 침략의 욕구가 강한 일본이란 나라가 우리나라를 겨냥해서 작용하고 있는 침략적 성질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들과 다른 노선의 거대한 중국이 우리 곁에 놓여 있다. 이 세 나라의 힘은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힘의 각축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우리가 원하지 않는 변화를 일으키는 부담이 되는 기류이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서 우리를 둘러싼 역학구도라 명명한다.
이 같은 배경은 처음부터 우리 한반도를 둘러싸고서 맴 도는 거대한 회오리였고 작용하는 힘이다. 작용하는 힘이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방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단히 안 좋은 악조건이다. 동시에 일본의 침략적 배경은 온갖 계책으로 작용되는 힘으로 우리사회를 유린하는 파괴적 에너지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우리사회는 우리만의 환경을 지속하며 주권 국가로써 기반을 확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데모는 우리사회를 지금 같은 상황으로 몰아 온 파장이었다. 일본도 60년 대 까지 데모 사회 유형이 나타났지만 일단락이 되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이 같은 길을 보였다.
오로지 우리 한국 사회만 70년 동안 나라 헌정사 내내 데모 사회로 흘러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한 가지 주지해야 할 점은, 데모가 여러 유형별로 드러나고 적용되면서 진화 되어져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학생 데모와 노동자 중심의 데모 유형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유형별로 다루고 정립을 해서 우리사회로 하여금 생각하고 자각할 수 있도록 심도 있게 다루고 사회 진정한 유익 방향으로 일깨우기를 원한다. 초기 중기는 학생데모가 중심이었고, 경제발전을 이룩한 이후 노동자 중심의 데모가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이 데모 유형은 기존의 모든 방식들을 뛰어 넘고 집어 삼켜버리는, 즉 공권력을 조절하는 힘으로 발전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사건들은 시발점이 되었다. 심지어 여기에는 나라 안의 이미지가 좋지 못한 단체들 조차도 이 촛불 집회 방식으로 접근을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여당의 종북 좌빨 몰이는 정작 북한의 영향력을 숨어서 행하는 자들의 위치를 묻혀 버리게 했다는 사실이다. 즉, 이 같은 사회적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점이다.
시민운동, 또한 사회가 잘못 되었을 때 국민들이 항거하는 순수한 시민운동은 반드시 필요하고 나라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건강한 사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집회 형태는 다음을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순수를 가장한 그 어떤 힘들이 작용되는 거대한 힘이 군중의 힘을 잘못 된 방향으로 일깨워가는, 즉 사회 전복(顚覆)을 유도하는 배경이 작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질서 있고 평화스럽게 진행하는 수준 높은 시민운동이라고 조작하는 힘이 잠시 그것을 속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소위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는 준비 된 자들이 국민들을 추켜세우면서 더욱 불을 지피는 우리사회에 대한 파괴적 에너지인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이 촛불은 다른 도구로 공격 받는 폭도들로 변하게 될 것이다. 아니 폭도들로 몰아가는 힘이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는 것이다.
언제 명령이 떨어질 것인가? 시기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그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도기에서 천사처럼 촛불이 그 역할을 하는 것 뿐이다.
나라 찾고자 모든 것을 버린 위대한 독립군들조차도 폭도나 테러로 몰아가는 마당에 이 촛불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그것은 국민들을 속여서 목적을 이룩한 자들이 돌변하여 그 같은 국민들을 때려 잡는 통제의 힘으로 작동을 할 것이다.
이 때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억울하다고 하면서 폭동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네 번 째 단계에서 폭도나 테러 문제로 연결 되는 세계적 추세와 직결되는 사회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촛불 속에 이상한 구호들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촛불이 정말 자국과 자국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도모하는 순수한 시민운동이라면 그 어떠한 형태로든 나라를 전복하는 배경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원칙적인 면에서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힘을 쥐어주는 것은 독립적이고 주권 국가에서 나라의 힘과 발전 방향에 매우 위협이 되는 배경이다.
이는 현대판 침략 배경이 국민들을 선동하는 파괴적 힘의 배경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나라를 전복 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힘들이 국민들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감언이설이다.
우리 5,300만 명의 국민들이 자신이 주인이라고 하면서 힘을 행사하려 한다면 침략을 하려는 일본 편에서는 그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내가 주인인데 대통령 당신이 뭐냐? 라는 식의 나라 환경은 침략의 나라가 노리는 그 대상 국가의 사회 환경이 되어 주는 것이다.
침략을 행사하는 배경들은 자신들이 노리고 있는 나라 환경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 그것이 성공을 했다 싶을 때 이용을 했던 국민들을 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촛불집회의 국민들이 테러나 폭도들로 몰아가는 네번 째 단계의 우리 사회 환경이 되는 것이 아닌지 매우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 지금도 숨어서 악용하는 자들이 움직이고 있고,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 되었다 싶을 때 서서히 발톱들이 드러나기 시작 할 성질, 이것이 선동하는 시민운동의 위험성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 문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의 인물을 세워서 무언가 목적을 추구해 가는 배경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데서부터 진정한 문제 해결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사회는 문제의 인물을 세워놓고 국민들로 하여금 잡게 하는 틀을 만들어 가는 파괴의 힘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본래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글을 맺도록 하자!
분명히 박대통령은 잘못 했다. 대통령 본인이 무지 했던 것이고, 잘못 된 목표에 심취되었다는 것이고, 아버지 보다는 나라와 국기를 바로 세우려 하는데 온 힘을 쏟았더라면 아버지도, 자신도 사는 가문이 되었을 것이고, 돈에 욕심과 수많은 잘못 된 방식으로 접근을 했다는 점이고, 주변에 잘못 된 사람들을 거두었고,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방법을 잘못 운용한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사회 문제는 사람이나 방법의 부재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와 사회에 대해서 힘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을 선동으로 해결해 가려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쌓아간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힘으로 뭉치는 국민들은 확실히 알고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사악한 욕구와 목적을 가진 소수자들의 계책에 의해서 움직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인간들의 감성은 힘든 현실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의 응어리를 갖고 살아간다.
지상 그 어느 나라가 이런 문제없는 인간들이 있는가? 어느 가정을 가도 문제를 앉고 산다. 더욱이 지금 우리 한국사회는 매우 어려운 시기이다. 그렇다면 나라적으로 국민적으로 뭉치고 결합해서 해결해 가려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피터지게 싸우려하고 서로 물고 뜯으려 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욕심으로 가득 찬자들이 득실거린다. 이 힘이 나라도 민족도 상관없고 오직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자리 자치하고 자신들 밥그릇 확장에만 목을 맨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잘못 되어 온 기반 자체를 갈아엎어야 할 것이다. 다시 기존의 미일의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로 돌아간다면 다음 단계는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일들이 눈앞에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통제 문제가 심각하게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갈 것이고, 이때는 촛불 집회 국민들이 폭도들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때는 평화, 질서라고 추켜세웠던 전문가들이나 여론들이 처단하라고 소리 지르는 앵무새들이 될 것이다.
태극기 집회를 주도했던 무리들은 활개를 치면서 태극기를 불사르고 찢고 짓밟는 폭력자들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어두운 면들을 직시하지 않고 계속 속임수에 끌려가는 세월만 계속 이어진다면 말 그대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본인은 선동하는 자들의 말과 얼굴들을 보았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전혀 국가와 민족이란 의미는 없었다. 오로지 쟁취하고 쟁투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갖고자 하는데 만 의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끝까지 투쟁적으로 임해야 할 것을 독려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이들은 상관이 없었다.
다음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가? 아무나 대통령 되겠다고 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이가 세계 눈치 보면서 얼마나 나라를 더욱 낭떨어지로 밀어버리는 역할을 하게 될지?
근본적으로 나라 문제를 바라 볼 줄 모른다면 신년 새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모습을 버리고 잃어버린 부분을 되찾고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재무장하는 벽두새해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자면 선동하는 환경들을 속히 중단하고 어떻게 많이 무너진 나라 환경들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아서 새롭게 시작하는 미국과 트럼프를 상대하고, 일본의 다음 단계를 내다보고 어떻게 분쇄할 것인지? 중국이 사드 문제로 우리를 어떻게 몰아갈 것인지? 예상하며 대처하는 나라적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2017년이 보기에는 어려움이 몰려 올 것 같지만, 우리에게 희망의 해로 발돋움하는 새 역사가 다가오기를 바란다. 지혜롭고, 깨끗하고, 결단력 있고, 나라를 모으는 힘을 행사할 줄 아는, 일본보다 더 교활하고, 미국보다 힘의 근원을 알고, 중국보다 더욱 깊은 대통령이 세워지는 희망의 해가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