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獨立門)
- 위치 ;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 완공 : 1897년 ( 일제 침략 이전 )
일제 침략 이전에 서울의 北西쪽에 세워진 大門의 이름이 독립문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라면, 南東쪽에 있어야 할 텐데.
독립문, 독립협회, 독립신문에서 도대체 '독립'이라는 단어는 무엇으로 부터의 독립이란 말인가 ? '독립'이라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한국 근현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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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그 태생부터가 위화도 회군이라는 사건으로 북방 中國에 굴종하면서 태동하였고, 임금과 세자가 즉위하면 중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조공(세금)을 바치면서 지속되어온 왕조이다. 20%의 양반 인구가 30% 상민과 50%의 천민(노비,노예)을 지배하면서, 중화(中華)사상으로 공자와 맹자를 섬기면서 600년 동안 유지되어 왔다.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조선왕조는 중국 변방 지역의 식민지에 불과하였을 뿐이다. 요즈음 중국 북서쪽 지역의 위구르 자치국 또는 티베트 자치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president)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president)에게, 미-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중국의 영토)이었다"라고 주장을 하였었다.
중국(明-淸)에서 조선왕조에 사신 일행이 들어오면 어마어마하게 융숭한 환영과 대접을 받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러한 중국의 사신 일행을 맞이하기 위하여, 조선왕조는 중국 사신이 한양에 당도하는 첫 길목에 영은문(迎恩門-환영하고 은혜에 보답한다)을 세우고, 임금이 (왕궁에서 외국의 사신일행을 맞이하지 않고) 직접 영은문까지 나아가 중국 사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황제의 사신에게 인사를 드렸었다. 즉, 중국에게 철저히 굴종한다는 취지로 세워진 상징물이 영은문이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 이렇게 수백년동안 중국에 굴종하는 조선 왕조 국가에 치욕감을 느낀 선각자 들이, 중국(淸)의 속국에서 독립하여 국가 자존심을 되찾는 의미로 독립협회를 결성하고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백성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에 굴종하는 상징물인 영은문을 독립협회 주도로 철거하면서, 그 주변에 새로 만들어 세운 상징물이 독립문이다.
즉, 독립문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수천년 동안 이어온 중국에 대한 굴종으로 부터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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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굴종 새 대통령이 들어서니, 중국 시진핑 주석(president)이 가장 크게 환영하면서 마치 당장 사드(THAAD) 미사일-레이다 시스템을 철거라도 하듯이 환영하고 있다. 시진핑이 지배하는 중국 공산당은, 6.25 한국전쟁에 120만 대군을 파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한반도 통일을 눈앞에서 가로챈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