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두 개
첫째
필자를 포함한 60대들은 비교적 기회가 원활하게 주어지고 있을 때 사회에 진출하여 본인의 노력 끝에 현재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활한 기회를 잘 이용한 우리들 60대 중에 70년대부터 시작된 차별로 인한 기회 집중 및 박탈 기류에 앞장서지는 않았지만 적극 동조한 무리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이 소싯적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역, 집안, 학벌, 재산, 종교 남녀 등의 차별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 결과로 우리들 상당수는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난 용’들이지만 점점 이런 기대는 사라지고 있지요.
이제 자기들끼리만 일을 처리하는 ‘불통의 정권’은 사라지고 새로 ‘소통의 정권’이 등장하였으니
다시
‘개천에서 나온 용’들을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청년들에게 일단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너희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면 추천하겠다!”
가 아니고
일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둘째
사법고시 합격은 지금도 신분 상승의 지름길입니다.
실제로 필자의 친구들도 도전하였지요.
그런데 합격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의 합격 이면에는 자신을 몇 년간 먹여주고 재워주는 등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뒷바라지한 젊은 여자들의 숨은 노고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합격한 젊은이들의 대다수는 은혜를 잊지 않고 결혼하여 알콩달콩 살아왔지요.
그러나 이런 뻔한 이야기로는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는 자극적이지 못하지요.
드라마와 소설 내용 상당수는 몇 년간 고생고생하며 뒷바라지한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신분상승을 단숨에 이룰 수 있는 돈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여자를 택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드라마와 소설에서만 있는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도 일어났던 이야기이지요.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의 젊은이라고 하다라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에는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이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런 젊은이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딸들과 부모들이 다리를 놓게 되는 것이지요.
대다수는 조강지처를 택하지만 가능해 보이는 이익에 눈이 어두워져 조강지처를 버리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오늘날 높은 지위에 앉아 국정을 농단한 무리들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동안은 공분의 대상일 뿐이었지만 곧 처벌의 대상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