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대결로 주목된 사람과 알파고(기계)와의 지능 싸움 중 하나인 바둑 대결이 4:1이라는 스코아로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나마 사람이 1승을 거둔 것도 어느 신앙인의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기도와 믿음으로만 가능하였기 때문에 사람과 기계와의 싸움은 사람이 전패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자기 아들과 같은 같은 존재에 불과한 기계에게 지능적으로 패배하였다는 것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할지, 통분을 느껴야 할 수치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각 사람의 인간 가치 인식에 따라 다릅니다만은, 어찌하였거나 이런 일에 통분을 느끼지 않는 자들은 인간사를 논단할 자격자가 아님을 분명히 일러두는 바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인간이 물질(만물)을 지배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하나 사실은 사람이 물질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물질이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물질을 숭상한 일로 뛰어나고자 하는 삶을 살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천하만민 대부분이 배금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배금주의 사상의 시조(始祖)는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반역한 피조물 사단입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남다른 미모와 지혜로 꾸며져 지음 받았으나 그 받은 미모와 지혜에 걸맞는 충효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에 악용하였습니다. 즉 피조물은 하나님 자체(말씀)보다 하나님의 소유물을 더욱 탐해 가져야 한다고 주창한 자입니다.
섹시한 여인이 강포한 남성의 성욕에 눌려 성폭행 당하였다고 하여서 그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난 지배자(승자)로 볼 수 없고 도리어 여인의 유혹에 빠져 남자의 본분, 곧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여인에게 빼앗기고 그의 지배하에 떨어진 노예가 되었습니다. 즉 여인의 섹시한 몸매와 미모에 매혹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남자의 숭고한 본분, 곧 여인을 진리로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성품인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은 팟죽 한 그릇에 불과한 정욕에 팔아넘기고 불법불의로 대하였습니다. 이런 남자는 아무리 여인보다 지위와 서열과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빛된 진리의 말씀으로 여인을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의법처리 당하여야 할 여인의 노예, 곧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 이하가 된 물질이나 기계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 이유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만물과 사람들을 같은 시간대에 만들어 하나는 천히 쓰는 그릇으로 또 하나는 존귀하게 쓰일 그릇으로 사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물에게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집터가 되고 또 사람들의 먹거리를 생산하도록 하게 하셨으나, 사람들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만들어 하나님 같은 지혜와 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순종하는 일에 만물과 생물들의 모범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물질들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응하였으나 사람들만은 자신들의 본분을 버리고 주어진 지혜와 능력과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악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 거역하였다는 것은 곧 인공지능 알파고가 자의적으로 자신을 만든 제작자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사와 동급에 속한 사람들에게 지능적인 문제로 누가 더 뛰어난가를 비교하고자 도전한 것과 같습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아무리 현란한 바둑 수를 제작자로부터 입력해(배워) 저장하였다 하더라도 오직 배운 수(문제)만 연산해 답을 산출할 수 있을 뿐, 사람과 같은 생소한 문제들을 새롭게 창안할 수 있는 창조 능력은 발휘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에게는 순수한 생이지지(生而知之)란 없고 오직 학이지지(學而知之)만 존재할 뿐입니다. 즉 누구로부터 배운(입력받은) 것들만 간신히 답을 산출해 낼 수 있습니다.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라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이사야 40:13~18) 하심 같이,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천지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의 능력은 모두 순수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능력이지만, 사람은 기존의 것들을 연구개발해 그 기능을 배워 익혀야만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학이지지(學而知之)의 능력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이지지의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헤아려 상생협력하는 수만 입력시켰기 때문에 물질들 중 어느 하나라도 이런 기능(뜻)을 거역해 반역하고 서로를 대적해 싸우게 되면, 하나님은 즉각 그의 반역질에 대한 새로운 수를 개발해 그 죄벌을 응징하십니다.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능력이신 하나님께로 태어난 피조물이 영이든 물질이든 생명체이든 간에 그 어느 것들도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수는 개발해 만들 수 없습니다. 왜나하면, 이들의 능력과 지혜(수)는 학이지지(學而知之)에서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기존에 알려진 지식들에 대해서만 통달한 알파고의 수로는 전혀 새롭게 창안되는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능력, 곧 '신의 한 수'를 깨뜨려 이길 수 없습니다. 이럴 때에 알파고는 단말마 같은 반응을 일으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제4차전에서 이 같은 상황을 연출하였습니다. 즉 입력된 것으로 해답을 찾지 못할 때에는 좌충우돌식으로 방황하는 것처럼 악인들의 종말 또한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김일성 일가들과 그 추종세력들이 이 같은 반응으로 치닫습니다.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패배를 인식하고 항복하나, 알파고 같은 기계(괴물)들은 최후 일각까지 좌충우돌하며 남의 실수를 유발해 전세를 역전시키려 합니다. 알파고는 세상에 알려진 기존의 바둑수에 대해서는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대처할 수 있으나,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는 새로운 수, 곧 '신의 한 수'에 대해서는 사단처럼 대응 방법을 몰라 동분서주하며 상대방을 자신처럼 혼란시키게 하는 것으로 판세를 뒤집으려 합니다. 이런 알파고(마귀)의 습성은 이미 2천여 년 전부터 온 세상에 만연하였습니다.
마귀를 이긴 이는 오직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능력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신의 한 수'를 배워 익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다 '신의 한 수'와 같은 묘수이건만, 이 시대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신의 한 수'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마귀가 이미 대세를 굳힌 생존경쟁 사회에서는 적용해 이길 수 없는 한낱 유약한 훈수로 취급해 기억만 하게 하고 그 대신 사단으로부터 배운 신학의 가르침으로 죄악 세상과 타협해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 중 단 열명이라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신의 한 수'라는 것을 믿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자가 있게 되면, 그 때에는 이 땅에 참된 평화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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