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8년 전의 일이다. 교육부 학술연구비 지원심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최종심에 올라온 계획서 중에 기본소득 제도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계획서도 충실하고 연구진 구성도 탄탄한 편이었는데, 전원 경제학자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아주 박한 평가를 받았다. 좌장 역할을 했던 터라 각 심사위원의 비공개 평가점수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른바 진보 성향을 지닌 한 분을 빼고는 만장일치에 가깝게 최하에 가까운 점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의 심사위원 한 분이 해당 주제는 결코 좌파적 의제가 아님을 역설했음에도 다른 심사위원들은 아예 그 연구계획서에 관해서는 언급 자체를 안 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침묵함으로써 무시하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제1야당 대표가 스스로의 평가만큼이나 의회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언급했다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다. 그저 재벌개혁 정도만 연상시킬 뿐 흐릿한 안갯속에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던 경제민주화 패키지 안에 일부 언론에서 좌클릭이라 표현할 정도로 “진보적”인 의제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적 의미는 그다지 없어 보이나 시사적 의미는 매우 컸던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개·돼지” 발언 사건은 지난 며칠간 여론을 뜨겁게 달구다가 당사자의 파면으로 일단락됐다.
기본소득은 일을 하건 하지 않건 재산이 많건 적건 간에 일정한 크기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자는 제안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럽 일각에서 사용한다는 시민소득이라는 용어가 제안의 본질을 훨씬 잘 설명하는 매력적인 이름이라 생각한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일정한 수준의 역량, 즉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사회는 그 역량의 현실적 기초를 보장해줄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가난한 소녀라도 깔창을 생리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분노와 연민에 기초한 공감이 발전해 제도가 되면 무료생리대를 공급하기로 결정한 뉴욕시처럼 되는 것이거니와, 인간이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철학의 초보적인 표현이 기본소득이다.
자유경제원 같은 곳에서는 기본소득을 변형된 공산주의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막상 마르크스 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착취”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것, 따라서 기본소득은 진보적 의제이기는커녕 근본적 모순을 몇 푼의 돈으로 은폐하는 기만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사실 자본가 단체 언저리에서 그처럼 경기 들린 듯 반응하는 까닭은 이미 오래전 폴란드 출신의 경제학자 칼레츠키가 지적한 것처럼, “이마에 땀 흘려야 양식을 취할 수 있으리라”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에 작은 균열이 가는 것도 용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고 정치적 입장으로도 정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본소득과 “개·돼지”의 철학 사이는 막상 그리 멀지 않다.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객관적으로는 딱히 “상위 1%”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공무원이 사석에서 한 얘기로 며칠 만에 초스피드로 파면당하는 것은 결국 “흙수저”나 “헬조선”론이 상징하는 불평등에 대한 한국 사회의 민감성이 인내를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나온 것도 어떤 면에서는 “개·돼지들을 적당히 먹고살게 해줌으로써” 지배계급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안보적 차원이기도 했으니, 유사시에는 기본소득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예를 들어,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요구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기본소득의 의제적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결코 없지만, 요컨대 그 때문에 “경제민주화” 정당과 “금수저” 정당이 확연하게 갈릴 것 같지는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왜 불길하다고 표현하는가? 조만간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때, 기본소득을 공산주의라고 부르며 비분강개하거나 민중 멸시 발언으로 장렬하게 스러지는 이데올로그들 뒤에서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공고한 기득권을 지키는 진짜 1%, 아니 0.1%의 성채에는 짱돌 한 번 맞는 정도의 생채기도 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사드 배치로 나라가 온통 뒤엎어지는 소동 앞에 아무런 적극적 의견도 대안도 없어 보이는 야당이나 고작 우리 지역에만은 안 된다는 의제로 날을 지새우는 여당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예감은 더욱 굳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