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에서 생겨 난 '신의 한 수'란 것이 인간사에도 존재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죽음마저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입니다. 바둑 대결 중도에 두어진 '신의 한 수'(묘수)는 승패의 마지막 순간에 그 위력이 증명되듯,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뜻도 내용도 모르고 믿음으로 실행해 지킨 '신의 한 수'(예수님의 말씀) 또한 모든 일의 종국이나 세상 마지막 때에 그 진가를 나타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려 오셨지만, 마지막 재림의 예수님은 왕되신 자신을 믿는다 하면서도 자신의 말씀(수)대로 착점(행동)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려 오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에도 이미 무소불위의 왕권을 가졌으나 그 왕권을 사용치 않고 다만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용서는 한시적인 것일 뿐, 영원한 용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하셨고 또,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요한계시록 6:10~11) 하심 같이, 성도들이 생존시에는 원수를 용서하나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 원수 갚아 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속죄 피로 시급히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에는 자신을 미위한 자들을 곧바로 응징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기대치에 벗어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자신이 심판주이심을 간접적으로 나태내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뜻은, 하나님이 세상 만민들에게 자신의 기대치에 벗어나 열매 맺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그 무화과나무처럼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예시(豫示)하기 위함입니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편 42:10) 하심 같이, 사람이 육신의 뼈와 살이 찢길 때 겪는 고통보다, 심령의 말을 무시당할 때 겪는 고통이 더욱 큽니다.
이런 심령의 고통을 겪는 분들이 바로 하나님과 같은 심령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입니다. 부모급에 속한 분들이 자녀급에 속한 자들에게 하는 말씀은 모두 사랑입니다. 이런 정직한 사랑의 말씀을 자녀들이 무시해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은, 곧 부모의 뼈를 꺾고 살을 저미는 일과도 같습니다. 세상의 부모님들이 자식들을 낳고 키워 이런 아픔을 당하는 까닭은, 저들 부모님들이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심령을 그 같이 꺾고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 자가 남(원수)들일 때에는 아낌 없이 법의 철퇴를 가하나, 자녀들일 때에는 심령의 분격 그대로 앙갚음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대로 가슴에 묻어 두기 때문에 이처럼 심령이 찢기고 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령을 그대로 품고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의 심령은 온통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모세보다 더욱 진솔한 하나님의 마음(뜻)을 사람들에게 쏟아부었건만, 저들은 예수님의 말씀(심령)을 무시하는 것으로 끄치지 않고 한술 더 떠 그 말씀을 미워해 죽이기까지 하였고, 이제는 그를 믿는 신자들마저도 예수님의 언행을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일러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해 거역하고, 그 대신 사람의 뜻으로 풀이된 성경말씀, 곧 신학에만 귀기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심령(말씀)을 무참히 난도질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23:29~32) 하심 같이, 이 땅의 신앙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거룩하려 하였으나, 이제는 김일성 일가들처럼 육적인 것으로 부강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7) 하신 말씀에만 안주해 지금의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언행을 무시해 지키지 않은 악행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하신 말씀이 저들을 마지막 날에 심판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의 언행을 따르지 않는 일, 곧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지 않는 그 어떤 부류의 유명 신앙인이든 세상 끝날에는 모조리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하심 같이, 예수님은 복음의 알곡이 맺힐 수 있는 씨앗이 되어 고난의 땅에 떨어져 자신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도들과 성도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이같은 씨앗들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떨어졌더라면, 반드시 예수님과 사도들과 성도들과 같은 열매들이 이 땅에 무수히 맺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신앙인들 대부분이 김일성이 같고 유병언과 같았으니 이 어찌된 일입니까? 예수님께로 태어난 씨앗(믿음)은 고난의 열매만 맺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신학자들이 그 잘난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유전자를 변형시켰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해 자신의 장래를 예견하여야 하고, 또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해 땅에서의 모든 일들(전쟁)의 승패와 또 심판날에 자신에게 주어질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곳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하신 모든 말씀을 근거로 해 인간사의 승패, 곧 산 자와 죽은 자를 결정하십니다. 쏜살 같은 인간 육신 생명의 때는 한판의 바둑 대결과도 같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모든 수(상식)들은 사람들을 죽음과 패배와 고통으로만 치닫게 하는 사단의 거짓되고 흉악하고 잔혹한 수(사고방식)들에 불과합니다.
'신의 한 수'와 같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사단에게 속한 죽음의 사고방식들과의 싸움, 곧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판에서 승리하십시오. 바둑판에 두어진 '신의 한 수'에 대해 상대방이 그 진의를 몰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대응하여도, 수상전(手相戰)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 수(말씀)의 진가가 들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친 자신의 수(말씀)들에 대해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고 훈수하셨습니다. 즉 지금 당장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해되진 않아도, 일이 진행되고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그 말씀(수)의 위력이 짙어지고 강력함이 나타나 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생활(실전)에 적용치 않는 죄악들을 모두 회개하고 이제는 그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착점)시켜 모든 일에 최종 승점이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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