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페스티벌? 통맥페스티벌? 치비페스티벌?
곽 흥 렬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파동성명학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대영이라는 분이 쓴 작명서의 제목이다.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범상치 않은 이름으로 하여 절로 눈길이 갔었던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나쁜 이름이 초래할 결과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평생 동안 불리는 것이 이름이기에 절대 함부로 지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름도 하나의 말이고 보면, 그만큼 크고 무거운 것이 말이 지닌 염력念力이 아닌가 한다.
일본 작가 에모토 마사루 역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말의 보이지 않는 힘을 설득력 있게 펼쳐 놓았다. 이 책은 물에게 말을 들려주었을 때 물이 반응하는 놀랍고 신비스러운 현상을 담아내어 세간에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무생물인 물에게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에게서이랴. 아니 꼭 사람의 이름에서뿐일까. 무슨 행사의 명칭을 붙이는 일에도 항시 허투루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태 전인 2013년,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철인 칠월 중순 대구 두류공원에서 ‘제1회 국제치맥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었다. 그 행사의 명칭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처음 누구의 안案으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으되, 이름을 만든 분 참 어지간히도 지각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일단 지어져 불리기 시작하고부터는 웬만해선 바로잡기가 어려운 것이 이름 아니던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귀에 익어지게 되면 아무런 의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언중의 생리며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애당초 지을 때부터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치맥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적이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다. ‘치맥’은 볼 것도 없이 치킨과 맥주, 이 두 단어의 줄임말일 터이다. 여기서 치킨은 왜 영어를 쓰고 맥주는 왜 우리말을 사용해 합성하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왕에 영어 단어를 쓰려면 치킨chicken과 비어beer의 머리글자를 따서 ‘치비’라고 하든지, 아니면 순우리말인 통닭과 맥주를 합성하여 ‘통맥’이라고 하든지 둘 중 어느 한쪽으로 통일을 시켰어야 마땅할 것 아닌가.
이런 예는 비단 치맥의 경우만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휴대폰’이라는 말도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휴대폰은 마땅히 ‘핸드폰’으로 쓰든지 아니면 ‘휴대전화’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것도 언어의 오염현상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대구에서 치맥페스티벌이란 국적 불명의 이름을 딴 행사가 열리고 있는 데 반해, 전라북도 전주에서는 ‘가맥축제’라는 우리말식 이름의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가맥’이란 ‘가게맥주’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정감이 가고 보다 품격이 느껴지는 이름일지 조사를 해 본다면, 아마도 열 사람 가운데 여덟아홉 명은 후자 쪽으로 대답이 모아지리라.
대체 누가 대구 두류공원에서 통닭 뜯고 맥주 마시며 즐기는 한여름 밤의 축제 이름을 ‘치맥페스티벌’이라고 함부로 지었는가? 앞으로는 이 명칭도 ‘통맥페스티벌’로 하든가, 아니면 ‘치비페스티벌’로 고쳐 쓰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기왕 어느 한쪽으로 통일을 시키는 김에 ‘페스티벌’이라는 영어 대신 국어인 ‘축제’로, 그리고 그 앞에 행사의 성격을 규정짓는 말도 ‘치비’보다는 ‘통맥’으로 바꿔서 ‘통맥축제’라고 부르는 편이 보다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