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시는,,,,그리스 신화 아니면 동화(?)에 나오는 교훈적 얘기 한 토막. 아메이니아스라는 청년이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였지만 나르키소스는 그에게 매정하게 대한다. 한번은 나르키소스가 아메이니아스에게 칼을 선물했는데, 아메이니아스는 나르키소스의 집 앞에서 그 칼로 자살하면서 나르키소스가 짝사랑의 고통을 알게 되길 네메시스에게 빌었다. 뒷날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됐는데, 입맞춤을 하려 하다가 그것이 자기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아차린 그는 슬픔에 빠져 칼로 자살을 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수선화라나 뭐라나. 글래서 수선화의 꽃말은‘자기 사랑(自己愛)’이며 곧 자아도취(自我陶醉)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도취(自我陶醉)를 좀 유식한(?) 표현으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였던 네케라는 사람은 정신분석학 적으로 자신의 외모, 능력과 같은 어떠한 이유를 들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이 뛰어나다고 믿거나 아니면 자기중심적 성격 또는 행동을 두고 인격적 장애증상으로 봤고, 심지어 자신의 심신행위에 대하여 성적 흥분을 느끼거나,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환상 속에서 만족을 얻는 사람을 두고 위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따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용어를 썼다.
당시(唐詩) 한 자락 불러오자.
수미산고불견령(須彌山高不見嶺): 수미산은 높디높아 봉우리도 보이지 않고
대해수심불견저(大海水深不見底): 바닷물은 깊어 바닥에 닿지도 않네.
파토양진무처심(簸土揚塵無處尋): 흙을 뒤집고 먼지를 털어도 찾을 수 없으니
회두당착자가저(回頭撞着自家底): 머리 돌려 부딪치니 바로 자신이로구나.
위의 당시(唐詩)맨 아래 소절“회두당착자가저(回頭撞着自家底): 머리 돌려 부딪치니 바로 자신이로구나.”하는 대목에서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성어가 파생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 못 하겠다. 사전적 의미로는 자기의 언행이 앞뒤 모순(矛盾)되어 일치하지 않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만족 할 수가 없다. 도대체 그 진정한 의미는 뭘까? 그런데 문득 깊이 생각하고 자시고 답을 구했다. 그것은 바로 근간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신명나서 벌이는 행각(行脚)들을 보니 시의(時宜)와 유의(有意)가 적절(適切)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파격적(破格的)이라고 할만하다. 뇌물 먹고 쪽팔려 자살한 양반 추도식엘 대통령 신분으로 가셨다고, 전용차도 아닌 버스로 엄마 뵈러 갔다고, 119구급차가 앵앵거리자 길을 비켜 주며 모세의 기적을 재연 하시고, 노타이(no tie)로 구수회의(鳩首會議)를 열었다고, 일이 전부가 아니다 놀아가며 일하라고 시범적으로 공무집행 일주일 만에 휴가를 간다고....이 얼마나 감동적이고 눈물겨운, 그야말로 품행이 방정맞고 모범에 사레가 걸리는 행각이신가.
대통령님의 이와 같은 행각에 벌써부터 우민(愚民)과 기레기들은 난리도 아니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90%대에 이른다며 문비어천가가 아닌 찬가(讚歌)가 삼천리금수강산을 뒤 덮으며 울려 퍼진다. 더하여 드디어 대통령님께서‘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줄이시겠다며 ‘개인 식비와 비품,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사료 값은 대통령 월급’에서 내겠다고 하셨다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그만 비웃음인지? 유쾌함인지 모를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러나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이 따위 대통령님의 방정맞고 사레 걸린 품행은 지능지수 두 자리 수의 저능아들에게는 통 할 것이다.
대통령님은 지금 지독한 자아도취(自我陶醉)에 취해 있거나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걸 한 단어로 표현 한다면 대통령님은 지금‘자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뻑은 곧 민폐(民弊)다.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대통령이 민폐를 쌓는 게 바로 적폐(積弊)가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정신 차려야 한다. “회두당착자가저(回頭撞着自家底): 머리 돌려 부딪치니 바로 자신이로구나.”청와대 본관 초석에 머리 세게 부딪혀 정신이 번쩍 드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