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TV토론에서 안철수 후보는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면서 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가 4차 산업혁명을 중점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무지가 드러납니다.
4차 산업혁명은 쉽게 말해서 융복합 최첨단 기술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장에서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나라로 독일이 꼽히는데, 독일에서도 그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아디다스의 로봇 공장입니다. 인건비 때문에 독일에서 공장을 접고 해외에서 생산하던 아디다스가 로봇 공장을 만들어 독일에서 생산을 재개했다고 한 때 떠들썩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자리 감소를 가져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는데 당연히 기업이 채용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기 마련이지요. 현재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이 폭넓게 논의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국 기업은 노동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실업자가 폭증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니 국가는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받고, 국민에게 복지나 기본소득을 제공하여 상생을 이룬다는 개념의 접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철수가 4차 산업혁명을 열심히 이야기하면서도 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어떻게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합니까? 기존 일자리마저 줄어듭니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겠다는 정부는 대신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받아 복지를 강화해 사회 안정을 이루어야 하는데, 안철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합니다. 이러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뭐다? 기업은 노동력을 줄이고 이윤을 극대화하여 실업자는 폭증하는데 정부는 방관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런 걸 속된 표현으로 "노답"이라고 합니다. 안철수의 공약이 지금 "노답"이에요. 4차 산업혁명을 주요 공약으로 이야기할 거면 "큰 정부"로 복지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거든요. 결국 뭐다? 안철수는 4차 산업혁명이 뭔지 제대로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차라리 무지한 것이 낫습니다. 알면서도 이렇게 떠들었다면 자본가의 탐욕에 날개를 달아주어 "헬조선"을 더 심하게 만들겠다는 고의를 드러낸 것이므로 훨씬 사악해집니다. 적어도 그 정도로 사악한 사람은 아닐 거라고 믿기 때문에, 결국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안철수가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무지하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선진국은 모두 "큰 정부"로 회귀하는 중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끝판왕 미국조차도 트럼프가 들어서더니 기업인을 불러다 대놓고 쪼인트를 까는 게 작금의 트렌드입니다. 그런데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자본가에게 자유를 허하려는 안철수의 공약은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완전히 어긋납니다. 이 또한 사악한 고의보다는 무지의 결과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요.
그런 식으로 "작은 정부"를 지향한 정권이 바로 이명박근혜였습니다. 그 결과는 다들 보셨지요? 실업률은 IMF 시대에 육박합니다. 청년실업률은 실질적으로 33%로 집계됩니다. 청년 셋 중 하나는 백수인 세상입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최저임금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수두룩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입니다. "작은 정부"의 결과가 이것입니다. 안철수가 원하는 세상이 이런 건가요? "노조 생기면 회사 접는다"는 말까지 돌고 있는 자본가 출신으로서 안철수는 이 문제에 대해 본인의 무지인지 고의인지 분명히 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추신. 문재인 후보는 공공일자리 확대로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큰 정부"의 방향을 택했습니다. 안철수가 이를 비판하면서 "그리스행 특급공약"이라고 표현했더군요. 그리스가 공공일자리(공무원) 확대로 그 모양이 됐나요? 반대로, 부패한 정부가 자본가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면서 그 모양이 된 겁니다. 2년 전에 그리스 문제와 관련해 쓴 글이 있습니다. 그리스를 언급하려는 안철수 같은 "자본가"에게 꼭 필독을 권합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5762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