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주도의 명물 감귤사업을 조성하고 도로, 항만 등 국제적인 관광지로서의 입지를 구축
- 현재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임과 동시에 제주도의 특산물로 대표적인 명물은 바로 감귤이다. 우리나라의 여느 지역들과는 달리, 제주도의 귤은 한라봉이라고 매우 크면서도 맛이 일품이다. 이런 제주도의 감귤사업과 관광지 조성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바로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도 정책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같다.
외국인 상대관관산업이 수출보다 외화가득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에 제주도에 들려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의 개발할 결심을 하고, 청와대비서실에 제주도관광종합개발 계획의 입안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국내 신혼여행지에 머물러 있던 제주도에 1천억 원의 투자를 지시한다. 그 뒤에도 1976년에 5백억 원을 투자하였고, 80만 평의 중문관광단지가 들어섰다.
이외에도 5·16도로 개설, 어승생 수원지 건설 등 제주발전에 초석을 다졌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과 제주도의 인연이 깊다.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시절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을 입안했고, 이를 토대로 서귀포시에 중문관광단지가 들어섰다. 또한 먹는 물이 부족했던 제주에 어승생 수원지를 만들어 '수돗물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계획들은 1961년 9월 박정희가 최고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초도순시차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하였을 때 계획되었다.
일정을 연장해가면서 제주도의 실정을 샅샅이 살펴본 후 미개발 자연자원과 민속 등을 자원으로 한 관광개발, 광활한 초원을 활용한 축산, 그리고 따뜻한 기후에 적합한 감귤재배를 진흥시켜 제주도를 개발하고 제주도민의 소득수준을 전국 시 도의 중위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결심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또한 이어 박정희 의장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가진 시국강연회에서 가장 시급한 해상교통의 개선책으로 악천후하에서도 제주해협을 쉽사리 드나들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3만여 명의 도민들에게 제주-부산, 제주-목포 간 대형여객선 투입을 약속하고 제주개발계획을 천명했다.
서울로 돌아오자 마자 내린 박의장의 지시에 따라 조달청은 제주항로에 대형 여객선을 건조, 투입시키기 위해 이를 국제입찰에 붙였다. 입찰 결과 일본의 조선소가 낙찰되고 63년 10월 12일 역사적인 취항을 하게 되었다. 이 배가 바로 제주-부산 간에 취항했던 890톤급의 도라지호이다. 이보다 두 달 앞서 정부는 국고보조로 국내에서 건조된 514톤급의 가야호를 제주-목포 간에 투입, 운항시켰다.
제주와 부산 그리고 목포를 잇는 대형 여객선 취항과 더불어 제주의 관광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기반조성사업의 하나는 62년에 기공해서 63년 10월 11일 개통된 제주-서귀포 간의 제1횡단도로(5.16 도로)의 건설이었다. 이 5.16도로는 제주도의 경제발전과 관광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4시간 30분이나 걸리던 제주-서귀포 간 자동차 운행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시켜 제주도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해상운송에 있어서는 77년 4월, 3천 톤급의 카페리 1호가 취항했다. 두 달 뒤인 같은 해 6월 3천 톤급 카페리 2호가 같은 노선에 취항해 바야흐로 여객선의 대형화, 수송의 대량화, 여객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제주항의 건설은 1962년에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7년부터의 제2차 5개년계획 그리고 72년부터 시작된 제3차 5개년계획에 지속적으로 책정되어 꾸준히 추진되고 있었다.
육상교통과 수송을 위한 도로건설에 있어서는 5.16도로(제1횡단도로) 이외에도 일주도로 중산간도로 및 1,100도로 등 총 4개 국도가 박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되고 재임 중에 개통되어 전국 15개 시 도 중에서 교통망이 가장 잘 발달된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 제주도의 관광지 조성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것이었다.
1964년 2월 연두순시차 제주도에 들린 박대통령은 제주도는 농업여건이 타 지방과 다른 만큼 전국 공통사업인 식량증산은 염두에 두지 말고 수익성이 높은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 특별지시에 따라 1965년부터 감귤 식재붐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1968년부터 제주도는 감귤재배를 농어민소득증대사업으로 책정하여 장기저리자금으로 감귤과수원 조성자금을 지원하게 됨에 따라 1969년부터 획기적인 증식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우리 나라 과수 중 재배면적이 5천ha를 상회하는 5대 과수는 사과, 복숭아, 배, 포도, 감 등이었는데 감귤이 재배면적에 있어 사과 다음인 2위로 껑충 뛰었으며 1975년부터는 생산량에 있어서도 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감귤재배 덕택에 1995년도 농가당 소득은 전국 9개 도 가운데 1위인 경기도보다 5만 5천원이 적은 2,721만 5천원으로 2위였고 농업소득만을 보면 전국 1위였다.
즉, 이 제주도 경제의 밑바탕이 된 감귤산업은 박정희 대통령이 일본에서 감귤나무를 들여오라고 명령을 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1978년에 드디어 제주도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조성이 되면서 관광객 100만 명이 돌파했다. 그리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가 되고 있다. 그 덕인지 제주도에는 50~60대 이상의 장년층에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