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일각에서 이번 ‘삼성 뇌물 사건’이 범죄 입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조직적 관리형 뇌물 사건’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로비 과정이 일상적이고 은밀해 명확한 물증을 특정하기 힘든 한계가 전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선고 형량이 재판부의 관점에 따라 좌우될 확률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참여연대는 지난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긴급 좌담회 ‘이재용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를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뇌물 사건’ 피고인 5인의 선고 결과를 평가했다.
이들은 특검 측이 유죄 입증을 위해 다툴 쟁점이 많아 항소심이 1심 재판만큼 치열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크게 △개별 현안 청탁 사실 기각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 뇌물 무죄 △재산국외도피 특정액 42억 원 감경 △뇌물 약속금액 213억 원 부인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참여연대는 8월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긴급 좌담회 ‘이재용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
① ‘명시적 청탁’ 사실관계 모두 부인 : “재판부 해석에 따라 다를 것”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특검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청탁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면서 삼성그룹 측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은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이재용 부회장과 대통령 독대 전 작성한 대통령 말씀자료, 안종범 전 정책수석의 업무수첩 등 만으론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경영권 승계 작업 추진 사실은 인정해 묵시적 부정청탁만 성립된다고 봤다.
이를 두고 좌담회에선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재판부가 보수적으로 본 것 같다”는 평가가 나왔다. 재판부 관점에서는 “이재용과 박근혜 간에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았는데도 (현안 발생 시) 공무원들이 알아서 움직였다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훈 변호사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과 대통령 간의 의사합치 없이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왜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무리하게 행사했는지를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의 증거 해석에 의문을 표했다. 재판부는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이 이수형 전 미전실 기획팀장에게 보낸 “그럼 홍이 책임지면 됨”이란 문자를 ‘김성민(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잘 설득하면 되지 않겠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해석했다. 이 전 팀장은 국민연금 합병 입장 결정을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등과 김 위원장을 만나 설득을 했으나 김 위원장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설득이 힘들 것 같다’는 이 전 팀장 보고에 장 전 차장이 ‘홍이 책임지면 된다’고 답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내 관념으로는 ‘그 사람이 책임지고 나가면 돼’라고 생각하는게 상식인데 법원은 그렇게까지 보진 않았고 이러면 직접적 청탁이 없는거 아니냐는 결론이 난 것”이라며 “삼성의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을 경우 인사권을 통한 불이익을 줄 것을 바로 연상할 정도로 이재용과 박근혜 간의 의사합치가 이뤄졌다고 봄이 상식에 맞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조직적·상시적 관리형 청탁 사건’ 수사가 흔히 겪는 어려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변호사는 “평소에는 상시적으로 관리되다가 결정적 순간에 긴 설명 없이 기업이 원하는 직무를 해주고, 대부분 윗선에서는 ‘잘해봅시다’ 정도로 큰 틀에서 교감한 후 구체적인 행위는 아랫단에서 구분돼 진행되는 형태”라며 “청탁 자체가 애매하고 청탁과 대가와의 순서나 관계도 뒤섞여 있기에 뇌물죄 적용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②미르·K스포츠재단 뇌물 무죄 : “범죄 구성요건을 따져야”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순실씨 사익추구 수단임을 몰랐으며 전경련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동적으로 참여했다고 봤다. 재단 설립이 청와대 경제수석실 주도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강압적 측면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구체성 면에서도 승마 지원이나 영재센터 지원과는 차이가 있었고 다른 대기업 총수들도 모두 요청을 받고 출연을 했단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04억 원을 뇌물로 인정하지 않았다.
김성진 변호사는 “제3자 뇌물죄에서 제3자 성격은 성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재단을 최순실이 지배하든 누가 지배하든 (재단 출연이)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이면 요건이 된다. 범죄구성요건 아닌 요건으로 무죄를 만드려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돈을 주라는 말을 분명히 했고 이 부회장은 재단에 돈을 내지 않으면 대통령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돈이 전달됐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 박영수 특검 |
대통령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금전을 지급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피해자에게 뇌물공여죄가 성립된 대법원 판례(2016도19659)를 들었다. 김 변호사는 “(강압이 있었다는 건) 구성요건 적 고려가 전혀 아니”라며 “승계작업에 대한 협조를 기대하고 돈을 지급한 이상 대가관계는 인정된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들도 다 냈는데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는 쟁점에 김 변호사는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삼성엔 대통령 권력행사가 필요한 점이 있었고 이 재단에 돈을 안내면 자기가 기대하는 대통령의 우호적인 직무행사를 기대할 수 없어 돈을 냈다. 대통령 권한행사와의 음흉한 대가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변호사는 삼성이 최씨가 재단 설립에 관여한 사실을 몰랐다는 지적에 대해 “과연 몰랐을까”라고 반문했다. 영재센터와 재단 출연금 지급이 시기적으로 비슷함에도 영재센터 출연금만 뇌물로 인정된 것이 상식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2015년 3월 혹은 6월부터 삼성 측 피고인들이 정유라씨와 최씨의 존재를 파악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은 독대 시 재단과 영재센터 출연을 동시에 요구했다. 이 변호사는 “재단과 최씨의 관계를 몰랐다고 보는게 상식에 맞을까 생각해야 한다”며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퉈질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③재산국외도피액 78억 원 → 37억 원 : 법정형 절반 토막낸 핵심 쟁점
재판부가 특정된 재산국외도피액 78억 원 중 37억 원만 범죄로 인정한 점도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삼성이 말, 말 수송 차량 등을 구매할 때 이를 최씨에게 증여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삼성은 허위예금거래신고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송금한 금액도 재산국외도피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김성진 변호사는 “예금거래신고서를 쓸 때 소유권 이전 의사가 있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며 “정유라가 탈 말을 사기 위해 나갈 돈인지, 정상적인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소유권 이전 여부는 내심 의사에 불과한데다 승마단 소속 선수의 독일 전지훈련을 하는데 돈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허위라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뇌물의 경우 부당이익이 제공되면 족하지, 그 이익이 소유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면서 “뇌물로 주기 위해 예금 신고를 했다면 그것은 허위가 아닐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산국외도피액 감경은 항소심에서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을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평가도 수차례 제기됐다.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한 근거였다. 도피액이 50억 원 이상을 경우 10년 이상 혹은 무기 징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심 판결은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인정하는 동시에 도피액수를 50억 원 이하로 낮추면서 법정형을 절반 이상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도피액이 50억 원 이하일 경우 법정형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가능하다. 좌담회에서는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변호인단을 전원 교체하고 유죄를 다 인정하면서 선처를 호소할 경우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④ 최순실 주기로 한 213억 원 뇌물 무죄 : “최순실 게이트 안 터졌으면 줬을 돈”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최씨에게 주기로 약속한 용역 계약 금액 213억 원은 뇌물 금액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용역계약서에 표시된 금액은 용역계약에 소요될 잠정적인 예산을 추정한 것에 불과”해 “확정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근거다. 삼성전자는 2015년 8월26일 최씨 소유 회사 코어스포츠와 213억 원을 지급하기로 한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전까지 77억 9735만 원을 대금으로 지급했다.
패널들은 “이 사태가 터지지 않았으면 약속금액을 안 줬겠느냐”고 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김성진 변호사는 “최순실씨가 요구하는 대로 (삼성이) 다 줬는데 계약서에 써놓고 확정적인 게 아니라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까지만 (돈을) 줄 것이라는 문자메시지를 근거로 삼았는데 그건 내심 의사에 불과하다. 내심 의사 가지고 처음에 만든 약속, 합의를 완전 부정하는 이상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상훈 변호사는 ”가액은 확정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 판례에 따르면 직무권한과 금전 교환을 두고 양 당사자 간 합의만 이뤄지면 충분하지 금액에 대한 확정적인 합의가 있어야 죄가 성립되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상훈 변호사는 ”액수가 미상일 경우 ‘액수 미상의 뇌물 수수’, ‘액수 미상의 배임’ 등으로 혐의가 인정된다“며 ”뇌물 금액이 크게 날아간 게 선고 형량이 낮게 나온 이유 중 하나인데 항소심에서 상당히 많은 반박이 있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김 변호사는 “형법에는 뇌물 공여 의사표시죄가 있다. 양 당사자가 의사만 합치하거나 한 당사자가 의사를 표시해도 뇌물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서 “항소심에서 이런 취지로 죄명을 변경해서 대비하면 이 부분 무죄받을 가능성이 확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