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지난 대통령 선거 이틀 뒤였다. 2012년 12월21일 한진중공업 노조원 최강서가 자살했다. 이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운남, 한국외대 노조위원장 이호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윤주형,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 박정식의 죽음이 이어졌다. 왜 노동자들은 대선 직후 자살했을까? 노동자들 죽음의 행렬을 초래할 만큼 선거가 중요했나?
하지만 다음 선거를, 5년 뒤를 기약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않았다. 지금 당장 조금의 미약한 훈풍이라도, 그 어떤 여지라도 기대했던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작 그 선거로부터 건질 것이 가장 적었던 노동자들이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선거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선거 국면에서 정리해고 철폐와 비정규직 폐지를 외치며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노동자들의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여전히 배제된 자들인 노동자들에 대한 제도정치권의 외면은 결국 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 9일,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최강서를 생각했다. 그의 유서를 생각했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 박근혜가 대통령 되고 5년을 또 … 못하겠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촛불들의 이른바 ‘시민혁명’은 과연 노동과 만날 수 있을까?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됐을 때 조그만 기대조차 무너져 목숨을 버려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줄까? 가장 먼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그 체제의 귀퉁이에서 가장 먼저 절망했던 사람들 말이다.
단지 죽은 자들만이 아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시민들이 다음 선거를 기다리고 있을 동안에도 이 사회의 거리거리에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박 정권하에서 가장 먼저 탄압당했고, 가장 먼저 떨쳐 일어났다. 이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되어 거리로 나섰고,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지 한 달 만에 쫓겨나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비슷한 처지의 11개 군소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여 ‘노조파괴, 민생학살, 박 정권 퇴진을 위한 노동자 공동투쟁’을 만들었고, 박근혜 퇴진을 가장 먼저 외쳤다.
아마 박근혜 탄핵이 최종 결정되면 정치적 민주주의로 족한 사람들은 거리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 거리에 남아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여기 있을 것이다. 한국의 협소한 정치적 민주주의가 담아내지 못하는 노동, 민중생존권, 반제국주의의 문제들을 두고 싸워야 하는 이들은 그다음 닥쳐올 질서잡기의 역풍을 고스란히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촛불은 최강서를 기억해줄까? 촛불 안에 있는 다양한 차이들, 특히 여성, 청소년,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도 포용할 수 있을까? 촛불엔 아직 박근혜를 향한 분노 말고는 공통분모가 없다. 시민혁명이라는 거대 담론 뒤안에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 목소리조차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있다. 이른바 시민혁명의 주체는 여전히 비어 있다. 그리고 시민혁명의 주체는 대문자 ‘시민’이 아니라 이제 다양한 사회적 주체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렇게 시민이 다양화하고 분기해서 자신들의 사회적 이해를 드러내고 그것의 연합 속에서 조직되어 ‘사회정치적 동맹’을 만들어 나갈 때, 이 사회는 단지 권력의 우두머리 하나를 교체하는 것 이상의 것들, 사회를 재편하고 헌법을 다시 쓰는, 말 그대로 새로운 민주주의 혁명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는 대통령 탄핵을 두고 “로도스가 저기다, 뛰어내려라”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가 가야 할 로도스는 아직 시계 제로다. 그 섬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