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시간과 천년왕국 시간의 차이점
큰 지진이 나면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몇 초간 큰 두려움을 겪고 혼란과 무질서에 처하니 지진이 일어난 곳에 거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 수 있다. 반면 전쟁은 그 두려움이 몇 초가 아니요 결과도 더 끔찍하니 사람들은 전쟁을 더욱더 원치 아니하되 약한 나라의 어제의 설움과 역사를 잊은 어리석은 자들은 큰 나라를 의지하며 전쟁하자고 외친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높은 자는 이미 시작하는 시기를 알고 있으니 내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며 가장 빨리 달아나고 그 뒤를 따라 그 다음 높은 자들과 돈 많은 자들도 때를 알고 도망가되 정작 전쟁하자고 외친 자들은 힘도 돈도 없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외쳐댄다. 그러므로 그들은 썩어질 육을 끝까지 붙들고 거기서 나오지 않는 자들과 함께 소돔성에 갇혀 두려움을 겪으며 끌려가며 결국에는 사망을 맞이한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내려가는 것은 이방인만이 아니요 입술로는 주님을 믿는다 하되 마음은 돈과 세상을 또한 내가복음을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음란함과 교만함이 가득한 그들이 어찌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그 거룩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찾으리요? 설령 보여주신다 하여도 ‘내일 세상에 종말이 와도 나는 오늘 여기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현대전에서는 전방과 후방이 없으니 피난가도 죽고 안가도 죽는다.’ ‘하나님은 여기도 계시고 거기도 계신다.’ ‘영과 혼과 육이 정결하든 정결하지 않든 믿는 자들은 환난 전에 다 휴거 받는다.’라고 거부하며 가만히 앉아있거나 혹은 아버지께서 정하신 피난처가 아닌 자신의 생각에 안전한 북과 동과 서로 발걸음을 옮기니 그들은 자기의 자식들까지 데리고 이방인들처럼 환난에서 두려움을 겪으며 끌려가며 사망을 맞이한다. 반면 영이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자들은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배움이 있든 없든 귀하든 천하든 거룩하신 영의 인도하심으로 이미 환난 전에 피난처로 들어갔고 환난에서도 들어간다.
결국 사람들은 세상나라가 힘과 돈이 없는 백성을 지켜주지 아니함을 이미 겪어 잘 알고 있되 사실은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가 세상의 왕들을 이용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자신이 일으킨 무서운 자연재해들과 3차 세계대전을 마친 후 육신을 입고 나타나 오직 평화만을 외치며 참으로 쉽게 666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다. 그리하여 그 하나된 나라의 왕으로서 다스리기 시작하되 그것은 가짜 평화이니 3년 반을 채 넘기지 못한다. 오히려 평화와 안전을 외치던 그 자가 그때부터 자신이 한 약속을 깨고 144000의 목을 베기 시작한다.
한편 그때에 144000이 전해준 환난복음을 듣고 사망의 수를 자기 몸 안에 넣지 않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룩함이 없으므로 아버지께로 산 제사를 드리지 못하니 사람의 수를 받지 않고 영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과 피난처로 들어가 함께 도망을 다닌다. 그러다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며 원수를 무저갱(핵)에 가두고 복음대로 이 땅에 천국을 이루실 때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으로 살아서 들어간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되 태초처럼 천 년이라는 충분한 시간 동안 자신의 거룩을 이루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낙원이 있는 그 둘째하늘에 시간을 두시고 돌리시고 계시니 이 첫째하늘에 있는 그 누구도 시간에 손을 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셋째별에 거하는 사람들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흘러가는 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영이신 아버지께서는 시간을 창조하셨으니 초월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적인 한계가 있는 시간과 아버지의 영적인 시간을 비교하면 사람의 실제 천 년은 아버지의 하루와 같고 반대로 사람의 실제 하루가 아버지의 천 년과 같다.
어떻게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시간이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에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그 깨달음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바울과 요한과 같은 경험을 했다. 즉 아버지의 은혜를 얻어 그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왔으니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영적인 세계를 다니며 둘째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의 낙원과 아버지의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셋째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그 영혼이 다시 자기의 육체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옆에 함께 있던 사람이 말하길 당신은 꼬박 하루 동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영혼이 육에서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참 이상하군요? 저는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천 년 동안을 다니며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나라를 구석구석 보았으니 천 년 동안 일어난 일을 다 말해줄 수 있는데요!” 잠시 후 그 사람이 다시금 아버지의 은혜를 얻어 그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갔다. 그리고 아까처럼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다니며 오직 하루 동안 아버지와 아들의 나라를 본 후 자기의 육체로 돌아왔다. 하지만 깨어나서 달력을 보니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영적인 존재들 즉 아버지의 빛의 종들과 타락한 어둠의 종들의 시간이 이와 같고 천국에서 천 년이라는 시간도 바로 이와 똑같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현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백성들이 지금과 동일한 천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모든 것이 유황불 못으로 들어가되 의롭고 거룩한 자들은 영원한 셋째하늘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을 이룬 후 거룩한 육체를 입고 있는 형제자매들과 신령한 신부들은 그곳에서 지금과 같은 시간에 매이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천 년의 시간이 그들에겐 하루가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될 수도 있으니 그것은 오직 그들의 마음에 달려있다.
이렇게 지금과 동일한 천 년 동안의 시간이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은 자신의 몸 안에 666을 넣지 아니하므로 살아서 천년왕국으로 들어간 천국백성들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한 육체를 입은 왕들과 제사장들처럼 시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요 어떠한 곳에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거나 혹은 늦게 지나가는 그 느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어디에 놀러 가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고 말한다. 또한 기쁨과 즐거움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이 멈춰졌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앞의 일에 대한 기대가 있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늦게 간다. 육체와 정신에 고난과 고통이 있으면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원하고 원치 않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면 그 시간이 오지 않거나 그냥 지나가버리길 바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옥 같은 시간이라는 말도 한다.
이처럼 천국의 백성들 가운데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다하여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들은 천 년이라는 시간이 오직 하루와 같이 지나간다. 마찬가지로 말씀에 순종해 자신의 거룩을 이루지 아니하고 오히려 낙원과 같이 좋아진 그 세상을 즐기는 자들도 하루와 같이 지나가지만 그 천년왕국의 끝에는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유황불 못(태양)으로 들어간다. 반면 아무런 목적이 없이 세월을 허송하는 자들은 그 천 년이 얼마나 지루하고 길게 느껴지겠는가?
그러나 천년왕국의 끝에는 아버지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 즉 거룩한 자녀들과 아들의 신령한 몸을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경륜의 목적이 다 이루었으니 아버지께서 계신 영원한 본향인 셋째하늘로 올라가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그곳에는 오직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그 영적인 시간만 항상 현재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그 영원한 집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형제자매들과 정결한 몸은 영원한 그곳에서 다른 모든 물질과 공간을 초월하듯 시간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천년왕국의 끝에 시간을 없애셨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는 그 영적인 시간은 영원한 유황불 못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과 영광과 의를 위해 선악을 따르며 불의와 죄악을 범하고도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하므로 끝까지 불순종하고 돌이키지 않은 자들을 위한 그곳에는 기쁨과 즐거움은 없고 오직 고통과 원망만 영원하리니 그 지옥 같은 시간이 항상 현재로 있다. 또한 거기서는 그 영적인 현재의 시간이 빨리 간들 늦게 간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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