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역 강동원에 열사어머니 ‘애기야, 김장김치 갖고 가렴’
이한열기념사업회, 영화 <1987> 일화 소개
강동원, 수차례 열사묘·고향집 찾아
어머니가 “예쁜 사람” “애기”라 불러
연세대 촬영장 찾아갔을때 만나기도
강, 박근혜정부 시절 “시나리오 달라”
투자자 결정도 전에 열사 역 오케이
묘 참배때 박새가 비석 찾아와 ‘신기’
지난 11월, 가을 김장을 하던 광주광역시 배은심씨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배씨 얼굴이 환해졌다. “아이고, 우리 이쁜 ‘애기’ 왔네.” ‘애기’라고 불린 손님도 환한 미소를 띠었다. 배우 강동원씨였다.
배씨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숨을 거둔 연세대생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다. 강씨는 최근 개봉한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을 맡았다. 강씨는 영화 촬영 앞뒤로 여러 차례 배씨를 만났다고 한다. 영화 초기 기획 단계였던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미 이한열 열사 역을 맡기로 하고,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5·18 옛 묘역)의 이 열사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7> 흥행과 함께 영화 제작을 둘러싼 여러 뒷얘기도 화제로 떠오르면서, 배우 강씨가 영화 촬영을 하며 이 열사와 맺은 여러 인연들도 눈길을 끌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3일 <한겨레>에 관련 일화들을 전했다. 사업회는 “강동원씨가 이한열 역으로 캐스팅된 뒤 수차례 이한열 열사 묘역과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찾아뵀다”며 “촬영 전엔 장준환 감독과 함께 이한열기념관을 찾아 최루탄 피격 당시 이한열 열사가 입고 있던 옷과 유품들도 둘러봤다”고 전했다. <1987> 촬영이 시작된 지난해 6월에는 배씨가 촬영이 진행되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를 찾아 강씨를 만나기도 했다.
강씨는 광주의 배씨 집도 수차례 찾았다고 한다. 지난해 4월 처음 방문했을 때, 배씨는 불낙전골을 차려줬다. 이동을 하느라 점심을 거른 강씨가 맛있게 먹자, 배씨는 “먹는 모습이 참 이쁘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영화 촬영 및 녹음 작업을 마무리한 강씨가 다시 배씨 집을 찾았을 때는 마침 김장을 마친 배씨가 마당에서 직접 기른 배추로 담근 김치를 강씨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배씨는 이한열 열사가 자랐던 광주 고향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이날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글에서 “어머님께서 (아들이 목숨을 잃은 내용을) ‘차마 어찌 보겄냐’ 하시다가도 ‘애기(강동원씨)가 애쓰고 했는데 가서 봐야 안 쓰겄냐’ 하신다”며 “(아직) 영화를 못 보신 것에 대해 강동원 배우에게 제일 미안해하신다”고 전했다.
강동원씨가 영화 기획 초기부터 <1987>에 힘을 보탠 사연도 눈길을 잡는다. 장준환 감독의 단편 <러브 포 세일>에 출연하면서 인연을 쌓은 강씨는 장 감독이 1987년 6월항쟁에 관한 영화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뒤 먼저 “시나리오를 보내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1987> 제작사 우정필름 쪽은 “장 감독이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모니터링 겸 시나리오를 보내주면서 이한열 열사 역을 제안했는데, 강동원씨가 ‘폐가 되지 않는다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가장 먼저 캐스팅됐다”며 “강씨가 자신의 참여로 투자에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 서슬이 시퍼렇던 2016년이었다. 우정필름 쪽은 “강씨가 시나리오의 완성도와 재미, 의미 자체에 공감해 흔쾌히 수락했다”며 “(정치적 불이익에 대한 우려보다는) 본인이 도드라져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훼손되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다”고 전했다.
강씨가 지난해 4월 이한열 열사 묘소를 찾았을 때는 박새가 조용히 묘비 위에 앉아 있다 날아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1987년 7월9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노제에서도 만장 위에 파랑새가 10분 정도 앉아 있다 날아가 사람들이 ‘한열이의 혼이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날도 박새가 찾아와 신기했다”고 전했다.
<1987>은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시작으로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피격까지 6월 민주항쟁 당시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1987년의 시대상을 입체적으로 되살렸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12월27일 개봉해 2일까지 26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서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황금비 남지은 기자